만월

by 박순영

영서는 현관문을 열며 깜짝 놀란다. 아무리 사촌간이라고 해도 본 지 한참 된 경혜가 잔뜩 지친 모습으로 서있었기 때문이다.

"언니, 웬일이야?"

"야, 말도 마라. 이럴줄 알았으면 택시탈걸..."하면서 경혜는 절뚝거리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걍혜는 나이 50이 다 돼서 이혼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고 둘은 20년을 아이도 낳지 않고 심플하게 둘만의 삶을 즐겼고 그러다 남자가 후두암으루 먼저 세상을 떴다.

뒤늦게 그 얘기를 전해들은 영서는 모른척 할수 없다는 마음에 메시지로 위로의 말을 건넨 기억이 난다.

그렇게 경혜는 나이 70에 혼자 돼서 그 후로 기나긴 노년을 혼자 보내고 있다


"너 요즘도 글 쓰니? "

하며 경혜는 영서가 내온 커피를 마시며 물어온다.

"글쎄 안팔리네. 이것저것 쓰긴 하는데.."

"저기.."하면서 경혜는 한참을 물끄림 영서를 쳐다보더니 힘겹게 이야기를 꺼낸다.

"너 시간 날때..."

영서는 순간 좋지 않은, 불길하기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석연치 않은 조짐같은 걸 느꼈다.

"그래도 바빠요 "라며 영서는 본능적으로 방어선을 쳤다.

그러자 경혜는 커피가 아직 반쯤 남아있는 커피잔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너, 변호사좀 아는 사람 있어?"라고 물어왔다.


아는 변호사가 하나 정도 떠올랐지만 안다고 하면 귀찮은 일이 생길거 같아서 영서는 "아뇨"라고 대답을 하였다.

"내가...집이 두채잖아. 근데 애는 없고"

그때 영서는 눈치를 챘다. 재산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구나 싶었다.

"니 형부 재혼이었잖아. 그러니까.."

그말에서, '전처 자식들이 자신의 재산을 상속할 권리가 있는지 '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해서 영서는 '인터넷 상담'도 많고 알음알음하면 변호사 한두명은 나오게 돼있으니 찾아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경혜는 "니가 좀 찾아봐"라고 하였다.

이 여자봐? 내가 자기 종인가?

"언니두 참...언니 재산을 왜...언니가 해요" 영서는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다.

영서의 똑부러지는 거절에 경혜는 더이상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이제 우리끼리 챙기면서 살아야 하는거 알지?"라는 말을 내뱉았다.

이건 또 뭔 소린가...

요즘 사촌간에 , 것도 외사촌과 가깝게 지내는 집안이 얼마나 된다고,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 시간 날때..아니, 운전은 하지? 하겠지"라며 경혜는 커피를 다 마시고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갈 기세다.

영서는 경혜가 얼른 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고 그것이 자기 표정이나 얼굴에 드러나길 바라기까지 하였다.

영서가 어릴때, 경혜에게는 고모가 되는 영서 모친은 자주 어린 영서를 데리고 홀로된 올케, 그러니까 경혜모친의 집에 자주 가서 영서를 재우고는 하였다. 그때 외사촌들과 제법 가깝게 지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릴때 이야기고 서로 사는 격차가 별어지면서 왕래가 뜸해졌고 영서가 짧은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모친에게 돌아오자 친척들은 모녀를 싸잡아 무시하기까지 아였다. 하기사 남자복이 없기로는 영서나 그 모친이나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그중에서 '위하는척 하면서 깎아내리기 선수'는 단연코 경혜였다.


그런 경혜가 새삼 이제부턴 친하게 지내자, 아니, 서로 챙겨줘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자 영서는 크나큰 거부감이 들었다. 이 사람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그러는데"너 부업좀 해라"라며 경혜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외숙모, 너 연락 안하지?"

그 외숙모란 경혜에게는 작은엄마가 되는 어른이었다. 그녀도 팔자가 기구해서 나이 50에 사별하고 혼자 긴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나 ,작은 엄마 자주 봐. "라며 경혜는 난데 없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영서는 이 여자가 무슨짓을 하나 싶다.

자기 재산이 남편 전처 소생들에게 넘어가는걸 막는 방법을 대신 알아보라고 하더니 이제는 뜬금없이 외숙모 이야기를 꺼내면서 눈물까지 보이고 있다.

"아,그래요"라며 영서는 이제 그만 경혜가 가주기만을 바란다.

"너 운전 하니 못하니?" 그녀가 티슈를 뽑아 눈을 꾹꾹 누르며 묻는다.

저게 왜 저렇게 궁금할까? 참으로 뚱딴지같은 여자라는 생각이 영서를 스쳐간다.

"하긴 하는데 지금 차가 없어서..."

"중고, 얼마면 사니"

영서의 말을 자르면서까지 경혜가 끼어들며 눈을 반짝인다.

"왜요? 차 사주려고?"영서가 농으로 한마디 던진다.

"그게 뭐 어려워. 한 500이면 경차 사니?"

영서는 올가미같은 것에 걸려드는 느낌이 들어 대답하기가 싫어진다. 이 여자는 왜 온걸까...난데없이 나타나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가...



"너도 이제 나이가 있잖아"

그말에 영서는 '그거였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냉소가 번져간다.

그런 그녀의 변화를 감지했는지 경혜는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언니, 나 지금 급한 원고 있는데"라며 영서가 노골적으로 가라는 눈치를 주자 경혜는 그제서야 마지못해 소파에서 일어나 갈 채비를 한다.

"변호사는 내가 알아볼게요.. 근데, 다른 건 싫어"라며 영서는 차마 경혜가 내뱉지 않은 부분을 서둘러 거절한다.

그런 단호한 영서의 태도에 경혜는 '어, 내가 방해했구나'라며 황급히 하이힐에 발을 쑤셔박는다. 그리고는 현관을 나가는 그녀를 보면서 영서는 다짐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엔 미리 전화하고 와요. "라고.

그리고는 바로 현관앞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준다.

경혜는 당연히 영서가 정류장까지 배웅할것이라 예상했지만 영서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꾸벅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버린다.


거실에 들어선 영서는 볓번이나 헛웃음이 나온다. 어이가 없어...

비록 이혼력이 있어도 영서는 지금이라도 남자가 나타나면 충분히 연애도 결혼도 할수 있는 나이고 그럴 작정이었다.그런 영서를 두 노파가, 경혜와 외숙모라는 두 여자가 돈푼좀 주고 부리겠다는 것이다. 노년기엔 병원이나 응급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니 영서에게 운전기사 노릇을 하라는 것이고 자신들에게 돈이라면 충분히 있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주면 되지 않냐는 식이었다. 다시말해, '우리 몸종 노릇을 하면서 너도 우리처럼 혼자 늙어라,라는 얘기였다. 두여자 , 영서모녀를 얼마나 무시했던가.

그녀 둘이 아직 한창인 영서에게 자신들의 무료하고 기나긴 노년 뒤치다꺼리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고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이럴때 쓰는 말이 '안봐도 비디오'였다. 경혜의 전화였다..영서는 수신거부를 눌러버린다. 그러나 경혜는 고집스레 계속 걸어오고 마침내 영서에게 차단당하기에 이른다.


영서는 한동안 손을 놓았던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이 생겼으니 이걸 놓치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리고는 느리게 부팅되는 노트북 액정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부팅이 다 되고 영서가 문서창을 띄우는데 띵동, 하고 알람이 들려온다. 폰과 연계시킨 노트북 메시지 창에 빨갛게 메시지수신 표시가 돼있다. 경혜가 아니었다. 그였다....윤동민.

헤어진 지 1년만에, 딱 1년만에 처음으로 그가 영서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잘 지내냐고....

순간 영서는 자기도 모르게 울컥해서 그의 메시지를 읽고 또 읽는다. 한참을 그러다 영서는 한자한자 조심스레 답문을 쓰기 시작한다.. 이번에 실기하면 안된다는 심정으로.

휘영청 눈부신 달빛이 키보드위를 바삐 움직이는 그녀의 손등위로 쏟아져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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