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언'이라는 민기의 여자 이름을 듣고 현희는 응? 하는 얼굴이 된다. 분명 한국 사람은 아니라는 얘긴데 그래도 외관상으로는 영낙없는 한국인이다.
어리둥절해하는 현희에게 민기가 '베트남'이라며 알려준다. 아 그렇구나 하며 현희는 애써 침착을 가장한다.
민기는 첫 결혼에 실패한 뒤 아이 하나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전처가 키우고있다. 그뒤 민기는 사업에만 몰두하다보니 어느새 40중반이 되었고 그의 재력을 보고 '달려드는'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는 눈도 주지 않고 솔로를 고집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나 결혼해'라며 대학동창인 현희에게 전화를 걸어와 현희는 온라인 발주를 넣다 말고 깜짝 놀랐다.
이혼후 오랜 기간 홀로 있어 아마도 전처에게 미련이 있나보다,라고 여겨온 현희는 은근 자기와는 안될까, 가끔 머릿속에 그려보곤 하였지만 스무살 교정에서 만나 25년가까이를 친구로 지내다보니 그것도 우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가 결혼한다니 왠지 그를 '뺏기는'느낌이다.
"저녁살게. 인사도 시키고"라면서 민기는 얼른 자기 여자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눈치다. 현희는 옷장을 열고 가장 반듯해보이는 정장을 차려입고 화장도 연하게 하고 차를 몰고 대학로로 향했다. 이따금 민기와 만나던 그 레스토랑으로.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응언'이라는 여자를 소개 받은것이다. 그녀는 첫눈에도 서른이 채 안돼보여 현희는 얼마전 읽은 뉴스기사가 퍼뜩 스쳐간다. 다문화의 경우, 현지애 애인이 있으면서 그를 데려오기 위해 위장결혼을 하고 일찍 이혼한다는..그런 경우가 아닐까, 은근 걱정이 되지만 차마 내색을 할수가 없어 그저 민기가 미리 시켜놓은 정식세트를 먹는 시늉만 하는데 현희가 우려하는 부분을 알아차렸는지 '서른 둘'이라고 민기가 응언의 나이를 먼저 알려준다. 서른도 안돼보이는데 그래도 서른둘이면...그래도 민기와 띠동갑이라서 현희의 우려는 가시질 않는다. 좀더 나이 먹은, 니 나잇대를 골랐어야지,라는 눈빛을 보내자 민기는 그것도 알아차리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라며 디저트를 시킨다.
"저, 한국이 너무 좋아요. k팝,k드라마, 너무 좋아해요"라며 응언이 서툴지만 알아들을수는 있는 정도로 말을 한다. 다들 저렇게 접근한다는데....현희는 응언이란 여자의 뒷조사라도 해야 하는게 아닌가싶다. 그러고 있는데 민기가 주문한 조각케익과 커피 석잔이 디저트로 세팅된다. 그걸 먹는 동안도 현희는 '이결혼 꼭 해야 돼?'라고 눈빛으로 여전히 민기에게 묻고 있다. '다시 생각하면 안돼?'라고.
"언니 이뻐요"라는 말에 현희는 응언이 '이 문장을 어지간히도 연습했구나'라고 느낀다.
'응언씨는 하는 일 있어요"라고 현희가 묻자 "간호사"라며 민기가 대신 대답을 한다. 그나마 '전문직'이라는게 현희의 우려를 조금은 가시게 한다. "어쨌든 축하해"라며 현희가 민기를 의식해 함박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리고는 그들의 결혼식날까지도 현희는 참석여부를 고민한다. 그러다, 다 그런건 아니겠지,하고 현희는 얼마전 일부러 아울렛 매장에서 산 원피스를 차려입고 자기 차에 오른다. 그러나 주말이라 강남까지 길이 너무 막혀서 예식시간에서 20분이나 지난 후에야 겨우 도착해 발레파킹을 시키고는 3층 예식홀까지 뒤어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꽉 차서 그걸 기다리느니 뛰는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올라간 예식홀에서는 말끔하게 빼입은 민기와 청초하게 아름다운 응언이 본식을 끝내고 이미 결혼행진을 하고 있다. 저여자 이쁘긴 하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현희는 열심히 박수를 쳐댔다. 그런 현희와 민기의 눈이 마주치자 민기가 조금은 어색하게 웃어보인다.
친구들 사진까지 다 찍고 뷔페홀로 가니 이미 음식이 바닥났다. 현희는 어느정도 예상한 터라 그냥 집에 가서 먹지 뭐,하고는 돌아서는데 뒤에서 응언이 "언니, 미안해요 , 음식이 없어서"라고 제법 또박또박 우리말을 한다. 그동안 한국어가 일취월장한 응언에게 현희는 적잖이 놀란다."괜찮아요"하는데 다른하객과 인사를 나누던 민기가 와서 "넌 안먹어도되지? 다이어트 중이잖아"라며 짓궂게 웃는다.
그리고는 한달후, 민기와 응언이 갈라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직접 전해들은게 아닌 건너서 들은 이야기였다. 내 그럴줄 알았다,라는 생각에 현희는 어서 빨리 민기를 만나 사정을 들어야겠따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했어 이혼"이라고 말하는 민기는 한달새에 바싹 여윈 느낌이다.
"그럴 필요없어. 요즘 이런 사례가 너무 많대"라고 현희가 위로하자 민기가 물끄러미 현희를 쳐다본다. 그러다 힘겹게 말을한다.
"너..너때문에"라는 그말에 현희는 어리둥절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마음이 접히질 않았어 너에 대한"
그런 민기의 말에 현희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다 뜨거운 커피에 혀를 데고 만다.
"무슨 얘기야. 우린 친군데"
"응언이 신혼여행에서 그러더라. 지금이라도 무를수 있으면 무르라고"
"그여자 거짓말 한거야. 그런경우, 100프로,"
"아니, 우리 혼인신고도 안했어. 일단 살아보자고 하드라고. 서로 잘 맞나도 살피고. 그러니 이혼도 아니지, 그냥 헤어진거야"
그말은 그러면 한국국적에 부여되는 영주권 시민권 모두 응언은 따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이 지레짐작과 편견으로 그녀를 보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왜 그랬어...내 말도 들어봤어야지 그럼"
"그렇게 됐다..."
그말에 현희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 자리를 뜬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그녀는 곰곰 생각해본다. 오누이처럼 여겨온 민기와 자신이 가능한가와 응언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해서 그녀는 중간에 차를 돌려 다시 민기와 마주한다.
"그러지 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아직 한국에 있으면 붙잡아. 혼인신고도 하고. 애낳고 살아. 다 그렇게 살아. 나, 남자 생겼어"라고 현희가 거짓말을 한다. 그 말에 민기가 잠시 당혹해하더니 생각을 고르는 눈치다. "미안해. 그런 마음 품고 있던거..."라고 그가 힘겹게 입을 뗀다.
"얼른가!"라며 현희가 등을 떠밀자 민기는 그제서야 응언을 놓칠세라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간다.
"하나님, 저 둘이 꼭 맺어지게 해주세요"라며 현희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한다. 그리고는 남은 레몬차를 반쯤 마시고 까페를 나서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응언과 민기의 결합을 축복하는 그런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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