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by 박순영

기석은 이번에도 식장에 나타나지를 않는다. 벌써 두번째다...

신부 영주의 부모는 오지 않는 예비 사위를 기다리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식장을 떠나버리고 여기저기서 하객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번씩이나 바쁜사람 오라가라 장난도 아니고"라는 그들의 소리는 신부 대기실 영주에게까지 들려온다. 이 결혼을 접어야 하나..



결국 그날밤 영주가 모든걸 무르기로 결정하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 기석으로부터 메시지가 온다. 집앞이니 잠깐 나오라고.

그래, 한번은 봐야겠지,하는 마음에 영주는 잠옷위에 패딩 하나를 걸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그제서야 기석은 자기차에서 내린다.

"아냐. 그냥 차에서 얘기하자. 어디 갈데도 없고 이 시간에"라는 영주의 말에 기석도 수긍을 하고 둘은 나란히 기석의 차 앞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거래처 사람으로 안 지 2년만에 둘은 연애라는 걸 시작했고 이러다 결혼으로 가지 생각했다. 그리고는 별탈없이 상견례며 택일까지 하고 턱시도와 드레스까지 다 정해놓고는 정작 예식일이 되면 신랑 기석이 식장에 나타나지릉 않는것이다. 그게 벌써 두번째다. 지난번에는 영주가 거짓으로 둘러대서 간신히 부모를 설득했지만 이번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끝내자"라고 영주가 말하자 기석이 "한번만..자신이 없어서 그래. 내가 가장이 되고 가정을 끌어간다는게. 애 아빠가 돼서 애를 책임져야 한다는게"라는 말에 영주는 발끈 화가 치민다. "누가 혼자 하래? 내가 있잖아!"라며 영주는 답답한듯 자기 가슴을 손으로 탕탕 친다. 그러자 기석이 영주의 두손을 꼭 쥐며 "한번만...다음엔 꼭...그래, 내가 잘못한거 알아. 너희 부모님한테 면목도 없고..하지만 한번만 더 기회를 줘"라는 기석의 말에 영주는 또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 삼세번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두번씩이나 파투난 딸의 결혼에 영주부모는 기석의 '기'만 들어도 치를 떨었지만 영주는 기석이 '가정을 일구는데 겁이 나서 그랬다'며 간신히 설득을 하였다. 그리고는 어렵게 세번째 택일을 하고 예식이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날 기석의 대학 동창이라는 종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가끔 셋이 밥도 먹고 하는 사이라 격의가 없다면 없는 사이였고 서로의 연락처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영주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앞 레스토랑으로 종환을 만나러 나간다...

영주는 입이 떡 벌어져 할말을 잃는다. 아니, 마치 할 얘기를 다 잊어버린 사람처럼 머릿속이 하얘진다...

'우리 서로 사랑합니다'라는 종환의 말이 거짓말만 같다. 기석과 종환이 서로 사랑한다니...그러면..그래서, 결혼을 망설였구나 싶자 영주는 호흡이 가빠오며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더니 삐질삐질 식은땀까지 흐르다 정신을 잃는다.


영주는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의식을 찾는다. 자기 팔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링거를 보던 그녀의 시선은 저만치 어깨를 늘어뜨린채 서 있는 기석에게로 향한다. 종환이 쓰러진 영주를 이곳으로 데려온 뒤 기석을 부른 모양이다.

"아니지?"라며 눈물이 그렁해서 묻는 영주의 질문에 기석이 그녀의 링거꽂은쪽 손을 꼭 잡아준다.

"미안해...내 마음을 나도 어쩔수가 없어"

"그래서..예식장에 안 나타난거야? 당신 게이라서?"라는 영주가 소리치자 옆 침대 환자며 보호자들이 힐끔거린다. 진풍경이라도 벌어진 양..

그때 응급의가 오더니 '잠깐의 쇼크였다며 이제 괜찮으니 퇴원하라'고 말을 한다.

그길로 병원을 나온 영주는 기석이 한사코 바래다 준다는걸 뿌리치고 앱으로 택시를 부른다. 그리고는 기다리다 문득 생각난듯 "그럼, 다음번엔 식장에 온다는것도 다 거짓말이었네?"라고 묻자 "너도 사랑해..."라며 기석이 대답한다. 양성애....라고 영주가 읊조리는데 저만치 콜한 택시가 서서히 다가오는게 보인다.




"분명해. 기석씨였어."

여고동창 미선의 연락을 받은건 그로부터 한달뒤, 겨울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겨울신부를 꿈꾸었던 영주는 결국 기석과의 결혼을 포기해야 했고 '타고난 성향인데 내가 어쩌랴'하고는 겨우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일에 몰두하려고 노력할때였다. 그런데 미선이 대학 후배 결혼식에 가서 본 신랑이 기석이라고 말을 하는것이다.늦게 가서 먼발치에서 봤지만 기석이 틀림없다고 한다.

그소리에 영주는 '그사람 게이야..아니, 바이 섹슈얼'이라고 하자 미선도 입이 떡 벌어지며 설마,한다. 그러더니 잠시 뜸을 들인 뒤 미선이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너 당한거 아니니?"라고 . 그말에, 아...그럼..하고 미선에게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모르게 미선과 헤어져 방향도 잡지 못하고 무작정 걷던 영주는 기석에게 연락하지 않은게 꽤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닐거야,하면서 영주는 기석에게 전화를 걸지만 , 차단되었다는 자동응답이 흘러나온다. 그러자 이럴경우를 대비라도 했다는듯이 영주는 기석의 친구 종환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자 한참후에 그가 받는다.

"영주씨..."

"당신들, 짜고 거짓말한거야?"

영주가 속사포처럼 쏘아대자 종환은 한참 침묵하더니 "지금좀 보죠"라고 한다.



그렇게 영주와 종환은 차도 시키지 않은채 까페에 마주 앉았다.

"기석이 그자식이 하도 부탁을 해서.."

"뭐라고 하든가요?"

"당신이 너무 잘해줘서 마음 아프게 할수는 없다고..근데, 이젠 아무 감정도 느낄수가 없다고"라는 말에 영주는 할말을 잃는다.

"그래서 게이라고, 아니, 양성애자라는 말까지?"

"그게 다 영주씨, 덜 다치라고 "

그말에 영주는 종환의 뺨을 후려친다. 그러자 까페 주인이 황급히 다가와 둘다 얼른 나가라고 소리를 친다.

그렇게 까페에서 쫓겨난 둘은 초봄에 내리는 밤눈을 맞으며 우두커니 길거리에 서있는다. 그제서야 영주는 기석이 자신과 헤어진 지 고작 한달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을했다는걸 깨닫게 된다.

"그럼 양다리였나요?"

"나머진...기석이한테 물어봐요"라며 그가 자리를 뜨려는데 영주가 강하게 그의 팔을 낚아챈다.

"따로 여자가 있으면서 나를 속인거냐구 묻잖아!"라는 그녀의 외침에 종환의 눈빛이 흔들린다...그러더니 그가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와서 속삭이듯 그녀에게 묻는다.

"나는...안돼요 영주씨?"

영주는 종환의 난데없는 고백에 정신이 아찔하다...그리고는 그녀의 몸이 휘청인다. 그런 그녀를 종환이 재빨리 잡아준다. 미쳤어 온통...하고는 그녀는 종환의 손을 뿌치리고 마침 다가오는 빈택시에 무작정 올라탄다. 택시가 그상태로 한참을 있는걸 보면 그녀는 목적지조차 말하지 못하는 거 같다. 종환은 눈내리는 봄밤속을 걸어가며 두어번 택시에 시선을 던진다. 뒤늦게야 영주를 태운 택시는 어둠을 가르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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