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집에서 키우는 애완용 강아지를 보고 개팔자가 상팔자네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만큼 강아지의 생활이 편해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강아지도유모차를 타고 다니고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먹는 시대이다. 심지어 강아지를 위한 오마카세도 등장해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진짜 강아지가 대우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강아지들이 대우받으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아서 길거리를 떠도는 강아지도 많고 학대받는 강아지들도 많다. 소수의 대우받는 강아지가 강아지의 전반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내가 모든 강아지들이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군대였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부대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종교활동을 갈 수 있도록 법당과 교회가 있다. 법당과 교회에는 매주 스님들과 목사님이 오셔서 종교활동을 진행해 주신다. 나는 사회에서부터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군대에서도 기독교를 다녔다.
우리 교회 앞에 눈 항상 집을 지키듯이 교회를 지키는 강아지 2마리가 있다. 이 2마리의 강아지는 우리가 교회에 오는 날이면 항상 달려와 반겨주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강아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매주 교회를 가면서 강아지들을 보다 보니 금세 강아지들과 친해졌다. 그렇게 매주 교회에 가 강아지를 보던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강아지들의 주인은 목사님 이시다. 하지만 목사님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만 부대에 오신다. 그렇다면 평일에는 누가 이 강아지들을 관리하느냐였다. 그 생각을 가지고 강아지를 보니 2마리의 강아지 모두 말라서 갈비뼈가 휑하니 보였다.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강아지들은 평일에는 방치된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며칠뒤 작업 때문에 교회에 내려갔을 때 나는 강아지들의 밥그릇을 보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밥그릇에는 사료 대신 벌레들이 있었고 배설물도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실제로 이 강아지 들은 목사님이 오시지 않는 평일동안은 방치됐던 것이다. 심지어 이 강아지들은 사슬로 만들어진 목줄을 차고 있어서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했다. 강아지들이 정말 불쌍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 예배를 드리는 날에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혹시 평일에는 강아지를 누가 관리 하냐고 물어봤다. 목사님께서는 평일에는 부대간부들한테 시간 되면 챙겨달라고 말했다고 하셨다.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한 생명을 키우면서 시간 되면 챙기라는 말을 그렇게 아무런 책임감 없이 하는 게 맞는 건가? 나는 화가 났지만 천천히 내가 본 것들을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목사님 평일에 아무도 얘네들 관리 안 해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전혀 몰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간부들이 챙겨주는 줄 알았어”라고 나는 목사님에게 말했다. “ 목사님 부대 간부들도 바쁘고 일이 많은데 강아지 챙길 시간이 어디 있어요? “ 너무 하시는 거 아니냐고 데려오셨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나한테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본인이 강아지들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고 하지만 정작 사과받을 대상은 내가 아니라 강아지들이었다. 나는 목사님께 지금이라도 강아지들을 잘 챙겨줄 방법을 생각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 결과 지금은 우리가 평일에는 돌아가면서 강아지를 챙겨주고 사료와 강아지 집등을 새로 고치는 것은 목사님께서 해주시기로 했다.
나는 동물학대나 방치는 티브이에서만 나오고 내 주변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내 주변에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내 작은 관심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개팔자가 상팔자네”라고 하는 말이 나올 만큼 강아지들이 살기 좋은 시대가 온 것은 맞다. 하지만 모든 강아지 들어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오히려 소외되는 강아지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책임을 가져야 한다.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칭하는 시대 그만큼 우리는 그들의 대한 책임이 있음을 인지했으면 한다.
3월23일은 국제 강아지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