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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은 엄마 , 생일

by 몽접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가 쏟아지는 카톡에 알게 된 생일이라는 날은 내게 불편한 진실이다.

어렸을 때는 생일이라면 엄마가 맛있는 걸 해주셨다. 이를테면 우리 집에서 가까운 면 공장이 있어서 "몽접아 국수집에서 소면으로 3천 원 치 좀 사와라" 하면 냉큼 사 와서 기다리면 엄마는 춘장을 직접 볶으시고는 맛있는 야채를 넣으시고는 땀을 뻘뻘 흘리시며 "아이고 이게 되려나?" 하시며 웃으시며 "우리 몽접이가 좋아하는 짜장면이다' 하시면서 만들어 주셨다. 후식으로는 당연히 수박을 주셨다. 그리고 내가 평소 좋아하던 책을 덤으로 주셨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귀신같이 사주셨다. 그날은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고 1이었을 때 엄마는 암으로 수술과 방사선으로 힘든 삶을 사셨고 내 생일에는 힘겹게 전화를 하시며 축하한다고 하셨는데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는 생일이 무슨 대수냐고 했고 엄마는 "네가 너 살리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알면서..." 하시면서 엄마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그때 알았다. 내 생일은 우리 엄마 생일이라는 걸.


나는 태어날 때부터 미숙아로 태어났다. 거기다 장협착증으로 태어나 엄마를 괴롭혔다. 병원에서 수술까지는 거의 3개월이 걸렸고 너무 미숙아라 몸을 키워야 한다고 해서 지금은 건강보험이 잘 되어 있지만 그때는 아직 그렇게 발달이 되어있지 않아서 엄마는 결혼 때 받은 금반지부터 있는 것 없는 것 다 팔아서 서울대병원에 입원을 시키고도 일 년을 병원 신세를 지며 엄마를 괴롭혔다. 그렇게 난 자랐다.


생일일 되면 뭉클해진다. 어릴 때는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으며 "잘 먹겠습니다" 하고 즐겁게 보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이 더운 날에 나를 낳으시고 살리겠다고 그렇게 다니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면 나는 앞이 까마득하다. 그래서 그런가 언젠가부터 내 생일에는 엄마께 밥을 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간솔하게나마 아침을 해드리는데 직장에 있으니 해 드릴 수 없어서 요즘은 쿠폰을 보내드린다. 그리고 꼭 아침을 거르지 마시라고 하며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드린다.

엄마는 뭘 이런 걸 보내냐고 하지만 글쎄..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보내고 싶어도 보내드리지 못하니 난 후회를 덜 하고 싶다.



그래서 더 늦지 않게 뭔가를 더 해드리고 싶은 게 자식의 마음이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외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엄마가 해드린 게 없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니 할 말이 없구나"라고 실제로 돌아가시고 물건을 정리하는데 내가 선물로 드린 양말과 속옷은 거의 쓰시지 않고 돌아가셨다. 그것뿐만 아니라 거의 새것인 물건들이 많아서 우리는 정리를 하면서 "뭐 이래 아끼셨데" 하면서 울면서 정리를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난 엄마에게 "엄마 아끼지 마셔, 그냥 쓰셔"라고 하고 꼭 드시라고 한다.

생일은 그렇다. 언젠가부터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내는 시간이다.

하루 24시간 엄마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다 보니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감사해요, 엄마.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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