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마 트라우마를 아시나요?

by 몽접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장마가 심하게 왔다. 사람들은 재앙이라고 했고 어르신들은 살다 살다 이런 장마는 없었다고 다들 말씀을 하셨다. 동네 슈퍼집 할머니는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고 무속신앙에 심취하신 어르신들을 굿을 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는 우리 집에서 50분 거리에 있었고 가파른 언덕에 있었다. 학교를 올라가서 다리가 굵어진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렇게 학교를 다녔는데 그날이었다. 친구 한 명이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그 친구에 대한 소식은 수많은 루머를 낳았다. 하지만 아무도 정확한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한 달 후에 우리 지역은 재난지역으로 정해지고 우후죽순 아이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부럽다고 했고 누군가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언제였을까, 살금살금 시간이 가고 더위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내 옆짝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파서 안 나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서 뭔가 심상치 않아서 친구집을 가게 되었다. 친구와 늘 만나던 골목길을 들어서서 거의 다 도착을 해서 명패를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심상치 않아서 친구와 늘 가던 슈퍼 할머니께 여쭈어 보러 갔다. 그때였다. "아니 다 지난 사람 왜 찾아!! 그 집 무너진 지가 언제인데!!" 나에게 화를 내시는 할머니가 무서워서 뒷걸음질을 치는데 숨이 찼다. 그리고 무작정 집으로 뛰어갔다. 그렇다. 친구는 그 장마에 집이 무너져서 죽었다.


학교에서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금지되었고 나는 그 사실을 알고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은 매우 슬퍼하면서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겠다고 담임 선생님께 여쭤봤지만 담임 선생님께서도 모르신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헤어졌다.


뉴스는 연일 재난지역 선포를 하고 난 그 뉴스를 보면서 밥을 먹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사람이 살면 별일을 겪는다고 꼭 눈물을 참고 밥을 먹으라고 하셨지만 한숨을 쉬셨고 아빠는 비가 문제이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며 결국은 그날은 펑펑 울면서 잠을 잤다.

꿈을 꾸었다. 친구와 같이 우유를 마시면서 그네를 타는 꿈을 꾸었는데 친구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어서 난 이게 꿈이 아니길 바란다고 이야기를 했던 장면을 기억하며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이제는 놓아주라고 하셨다.


그해 여름은 나에게 지옥이었다. 하나 둘 친구들이 나오지 않으면 불안했다. 다행히 어떤 친구는 집을 복구한다고 나오지 못했고 어떤 친구는 할머니와 둘이 사는데 할머니와 보수공사를 해서 할머니를 모셔야 해서 못 나왔고 어떤 친구는 정말 집을 지어야 해서 다른 사람 손을 빌리기에는 형편이 어려워서 아버지와 집을 짓는다고 못 나왔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여름 하면 나는 내가 겪은 재난지역 선포가 떠오른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난 여름에 태어났지만 여름을 싫어한다. 겨울을 제일 좋아한다. 더움에 장사 없다고 정말 싫어한다.

올해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늘 시험대에 서 있는 기분으로 여름을 준비하지만 지구 온난화에 인간은 얼마나 초라한지 모른다.


물이 고여서 침수되는 지역은 늘 침수가 되고 무너지는 집은 늘 형편이 어려운 지역이고 반복되는 뉴스를 보노라면 답답하다. 그래서 그런가, 올해는 장마로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있으려면 지나치길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생일은 엄마 ,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