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구나 아는 사실이 불편한 이유.

by 몽접

나에게는 원칙이 있다. 누구와 비교하는 그 순간 내가 불행해진다라는 원칙이다. 사실 이 원칙을 가지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20대는 대학으로 바빴고 20대 후반에는 취업으로 바빴고 그러다 보니 누구는 어딜 취직했다 아니면 어느 대학원을 갔다 이야기를 들으며 난 늘 하는 말이 " 장학금으로?"라는 말을 했다.


우리 집 원칙은 대학을 들어가는 그 순간은 무조건 내가 다 해결해야 하는 구조라서 내 시선에서 질문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그러면 어떤 친구는 "응 장학금" 아니면 어떤 친구는 "아니 부모님" 이렇게 나뉠 때 나도 모르게 '좋겠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이때부터 나는 조금씩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서른이 되면서 직장에 대한 회의감을 넘길 수 없어서 사표를 써야 했다. 사람들은 멀쩡한 대기업을 왜 그만두냐고 했고 친구들은 2년째 공부하고 있는 누군가를 이야기하며 배부른 이야기라며 말렸지만 내게는 알 수 없는 갈증이 있었다. 그래서 매년 사표를 내면 내 사수는 " 편지야? 매년 쓰게?" 라며 사표수리를 해주지 않으셨고 그럴 때마다 "좀 해주세요"라고 하면 "그냥 버텨"라고 하셨다. 그렇게 어렵게 다녔지만 결국은 내가 버티지 못해 나온 건 그때 한 친구가 나에게 "너 그러지 말고 나와, 너는 너의 일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

이 친구도 멀쩡한 회사를 나와서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유럽을 여행하며 자신을 찾아야 답이 나온다며 답 없는 여행을 다니고 있었는데 난 그게 부러웠다.


생각해 보니 쉽게 살아진 적 없는 내 삶에 그리고 쉰다는 동사를 해 본 적 없는 내 삶이 나는 안쓰러웠다. 그래서 난 쉬기로 했다. 하지만 3개월도 못 가서 다시 재취업을 해야 했고 그때 재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를 만나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축하한다고 했고 나는 이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딜 가나 일은 많고 그러다 한 해가 흘렀을까? 친구들과의 모임에 자주 가지 않아서 들볶이다시피 해서 간 강남에서의 모임에서 친구들은 각자의 자랑을 했다. 뭐 자랑이지 않을 수 있는데 가방에 집안 자랑이 한 참 늘어지는 건 자신에 대한 이야기임은 틀림없다.


그중에서 내가 부러워할 수 있는 친구는 지금은 소설가로 활동하는 친구였다.

친구들은 이 친구에게 "야 너는 그냥 글만 쓰고 돈 벌어서 좋겠다"라고 했는데 나는 "글 쓰는 게 쉽니?"라고 했고 다른 친구들은 "재능으로 하는 거야 쉽지"

그때 소설가 친구는 "야 힘들어"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비교를 했다.

'부럽다'


친구들은 소설가 친구에게 얼마를 벌었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상황이 부러웠다. 글로 밥을 먹고살 수 있는 그 상황이 부러웠다.

그리고 비교가 되었다.

나는 뭐지?

같은 국문과를 다녔고 같은 책을 봤는데, 그래 내 능력이 없는 거지..라고 결론을 내리니 맘이 울컥했다.


우리 엄마는 말씀하셨다.

남과 비교하는 그 순간 답이 없다고, 그냥 비교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며 자기답게 살면 되는 거라고.

말이 쉽지 그게 어디 쉬운가.


명품을 들고 다니는 친구도 부러운 적이 없었는데 소설가 친구가 부러워서 잠시 잠깐 나와 비교를 했다.

각자 사는 길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니 인생이겠지 한다.

그래서 지금 이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나는 작가인가?라는 물음에 많은 글을 쓰고 날린다.

퇴고를 하고 또다시 지우고 다시 글을 쓰고 후회는 없다. 다만 그 능력은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금쪽이 동료가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