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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Mar 23. 2022

그 돈 받으려고 그 일하는 거야

벌써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픈 상처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사실 대기업은 꿈도 꾸지 않았다. 남들 재수 삼수한다고 하니 나도 그럴 거야,라고 생각하고 노량진에서 컵밥 먹어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난 다른 건 몰라도 공부는 즐기면서 하는 편인데 뭔가, 회사에 들어간다는 정해진 외우는 암기식 공부는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하루에도 열두 번은 그냥 때려치우자라는 말이 나왔다. 친구는 나에게 "야 그게 쉬우면 대기업이야?" 라며 컵밥을 먹으며 책을 보는 친구와 난 으쌰 으쌰 하며 공부를 했고 우리는 사이좋게 합격을 했다. 합격을 하니 막상 어안이 벙벙했다. 뭐지? 친구는 그날 자기가 쏘겠다며 맥주에 치키에 한없이 먹고서는 앞으로 우리는 탄탄대로라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딱 거기까지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여유였다.



첫날부터 만만치 않았다.

신입 교육부터 시작은 거의 헬모드였다. 두루두루 인사하기 바빴고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거의 랩으로 말하는 사수에게 난 "저기 좀 적으면서 하면 안 될까요?"라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이야기를 했고 사수는 "빨리빨리" 라면서 난 무조건 답이 "네"였다.

그렇게 휘리릭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난 밥을 먹었고 그렇게 신입 교육이 끝나고 어느덧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난 내일이 없었다. 오늘을 사는 사람이었다. 좀비처럼 살았다. 늘 잠이 부족해서 살았고 그 잠은 커피로 대충 때웠다. 그리고 난 바쁘게 돌아가는 일 속에서 전쟁처럼 살았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바이어 미팅이 잡혔는데 내가 하는 미팅이 아니었다. 난 주로 영어를 미팅으로 하는 참석에 자리를 해서 자료 백업을 하는데 그날은 러시아 미팅이 잡혔다. 그 바이어 미팅의 주제를 맡은 나보다 한 기수 높은 미팅의 주임이 아프다고 못 나오겠다는 통보를 하 것이다. 사수는 전화를 받자마자 화를 냈고 우리 팀에서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물론 아무도 그 이야기에 손 든 사람이 없었다.



정적이 흐르고 눈치를 보는 그때 내 앞자리 사수가 "너 러시아 교환학생이었지?"라고 나에게 지목을 했다.

난 "그건 대학교 때 1년밖에 안 했는데요" 그건 정말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때 부장님은 호랑이가 되어 "응 그래 그럼 자네가 맡아서 해, 자, 사수에게 내용 전달 지시받고 회의실로 와" 

급하게 돌아가는 일에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이건 아닌데' 난 속으로 정말 울고 싶었다.

난 사수에게 "저 못하는데요" 사수는 "다 못해, 그런데 너 1년 있었으니까 대충은 할 거야, 자 가자"



억지로 들어간 미팅에서 난 정말 촌스러운 발음으로 대충 했다. 러시아 미팅 참석자는 알아 들었는지 내게 "당신 러시아 초보자이네"라고 물었고 "난 그렇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는 사수는 "뭐라는 거야?"라고 내게 물었고 난 "저보고 초보자냐고 묻는데요?" 순간 얼굴이 굳은 사수는 "아니라고 해"라고 말을 했다.

이미 말했는데 돌릴 수 없고 난 순간을 넘기자고 최선을 다해 미팅을 마무리 지었다.

결과는 한 달 뒤에 나온다고 했다. 결국 그날 펑크를 낸 직원은 어쩔 수 없이 욕을 먹었고 , 난 그 자리에서 나오자마자 다리가 풀렸다.



회식이 있었다. "자 다들 고생했다" 하며 사수는 술을 돌렸고, 난 "저 이제 못하겠어요" 사수는 "뭘?"

"저 외국어 미팅 빼주세요" 사수는 "야 너 그 돈 받으려고 일하는 거야, 인생 하루 이틀 사니?"

순간 침묵이 흘렀다. "아니 전 영어인데.." 하는데 사수는 "다 그래, 나도 그랬어. 하다 보면 늘어, 아침에 회화학원 들려서 와" 난 "잠도 부족해요"

사수는 다시 "다시 말해줘, 그 돈 받으려고 일하는 거라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리고 사수는 "세상에 공짜 없어, 러시아 미팅 때는 미안했다. 그런데 어쩌냐 사람이 없는데"

난 "아니에요"


사수는 "그래도 너 덕분에 한 고비 넘겼으니 넌 값을 한 거야"

내 어깨를 꾹 누르며 "잘했어" 하며 사수는 그렇게 술을 드셨다.

난 눈물이 나서 잠시 화장실을 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자리, 사수는 "왜 회사생활이 어려워?"

난 "네" 사수는 "다 그래, 그런데 어딜 가도 힘들어"

난 "로맨스는 없네요"

사수는 껄껄 웃으며 "로맨스 있지, 지금 우리 이렇게 웃으며 털어내잖아, 그리고 우리 한 팀이잖아. 그러면 된 거지"

그런가?


그렇게 술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데 사수는 내게 말했다. "넌 너의 가치를 증명했어, 그럼 된 거야"

난 그 말에 또 울었다.

이제는 너무 오래된 일, 갑자기 그 말이 생각이 났다. 그 돈 받으려고 그 일 하는 거야. 

너무 무서운 말이었지만 당연한 그 이야기가 난 슬프고 화나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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