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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Mar 25. 2022

자존감을 높여주는 상사

내 사수는 매우 엄격했다. 그래서 늘 별명이 호랑이었다. 한마디로 프로 중에 프로였다. 난 그 프로와 처음 일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다들 하는 말이 "힘들지? 파이팅" 남의 속도 모르고 웃는 그들이 싫었다. 늘 넘치는 일에 업무에 커피로도 해결이 안 되니 난 나 자신이 너무 무너지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그렇게 혹독한 한 달이 지나서 상사는 내게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난 당연히 내가 사는 거라 생각하고 급히 지갑을 챙겼다. "무슨 커피.." 상사는 "내가 사야지" 하시며 "뭐 마실까?.." 난 그냥 "전 오렌지 주스" 그렇게 주문하고 사 주신 음료수에 감사의 표현을 했다.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너 열심히 하고 너 대우받을 만해서 사주는 거야" 이런 대답에 익숙지 않아서 난 당황했다. 



대기업을 다닐 때는 늘 혼났다. 적어도 1년 차까지는. 그래서 늘 죄송합니다를 입에 붙이고 살아서 내 사수는 "죄송합니다"가 닉네임이니? 하고 웃으셨는데 그때의 내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그래서 난 대기업을 다녀도 기쁘지 않았다. 좋은 건 어딜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이 좋아하시다는 것 이 둘 빼고는 없었다. 그래서 난 늘 사표를 썼다. 



하지만 분기별 사표를 사수는 받아 주지 않으셨고 늘 나에게 "연애편지 좀 그만 써"라고 웃으며 넘기셨다. 질긴 싸움 끝에 마지막 사표 수리 때는 "그래 알았다. 못 버틴 게 너의 몫이라면 어쩔 수 없지" 라며 쓴 소주를 드시며 "이직할 곳에서는 버텨라" 라며 짧은 조언을 해주셨다. 생각해보면 그나마 나의 사수는 인간적이셨다. 



여기 이직한 이곳에서 처음 만난 나의 호랑이 사수는 완벽주의자라는 소문이 났다. 그래서 난 숨이 막혔다. '아 또'라는 나의 자조 어린 한숨이 나왔다. 완벽주의자라면 나의 실수는 허용이 안된다라는 전제가 들어가는 건 기본이라는 생각이 깔려서 늘 난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니며 적고 외우고 다녔다. 


사수는 물었다. "뭘 그렇게 적어?" 난 "제가 다 기억을 못 해서요" 사수는 "그래 열심히 하니 좋네" 이렇게 은근히 중간중간 칭찬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사수와 6개월 정도 일을 하고 큰 프로젝트를 맞게 되었다.



그때 사수는 팀원들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신입이 주제를 맡는다"라고 선언을 했다. 난 순간 당황해서 "제가요?"라고 되물었고 사수는 "응" 난 다시 "저 신입인데.." 사수는 "너 할 수 있어" 이렇게 시작된 큰 프로젝트는 독일 연구원들과 합작을 하는 프로그램이라 내가 일단 독일어를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난 출근 전에 독일어 학원을 나갔고 따로 공부를 하느라 하루에 3시간도 못 자고 일과 언어를 공부해야 했다. 그렇게 한 달을 준비하고 인문학 프로젝트의 당일 난 너무 떨려서 물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연구원장님을 비롯 각계각층의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미팅이라 자리가 커졌고 난 사회도 보고 연구내용도 발표도 하고 정말 정신없이 오전 오후까지 쉼 없이 달렸다. 그리고 오후 5시에 끝난 자리에서 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들 자리를 정리하는데 멍하게 앉아 있는 나에게 호랑이 사수는 "잘했어,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하는 것이고 너라고 늘 맨 밑에 있지는 않아. 언젠가는 너도 후임이 들어오면 가르쳐야 하니까 경험은 필요한 거였어. 잘했다." 어깨를 누르며 힘을 주는 사수에게 "감사합니다"하면서 난 펑펑 울었다.



그 이후 호랑이 사수는 내게 굵직한 프로젝트를 지시했고 난 물론 실수도 있었고 우당탕 었지만 그럴 때마다"넌 잘하고 있어"라고 응원과 먹을 것들을 사 와서 지지를 해주셨다.

연구원장님이 고개를 갸우뚱할 때마다 "몽 연구원 할 수 있을 겁니다"하고 한 표를 행사하시기도 하셨다.

그래서 난 그 호랑이 사수가 내 자존감을 높여줘서 직장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는데 자존감을 높여주는 상사를 만난 내가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수는 결국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자신의 이미지가 별로라고 고개를 갸웃하지만 옆에서 본 난 그 호랑이 계속 유지해도 될 것 같다고 웃었다. 그랬더니 자신은 싫다고 이야기를 하시며 "남의 속도 모르고"하시며 쓴웃음을 지으셨다. 



지금은 호랑이 사수에게 일을 배운 연구원들이 굵직한 업무를 맡으며 하고 있고 연구원장님도 그러신다. "호랑이 사수 밑에서 일한 연구원들에게 맡겨 봐"라고 하신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올려주는 사수를 만나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난 행복했다. 지금도 행복하다. 호랑이 사수에게만큼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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