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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Mar 25. 2022

마음이 외로울 때, 매콤 달달 오징어볶음.

사람마다 소울푸드가 있을 것이다. 난 오징어 볶음을 정말 좋아한다. 구워도 먹고 볶아서도 먹고. 최근에 친구가 유럽으로 이사를 갔다. 아예 남편을 따라갔다. 가기 전 밥을 먹으면서 "내가 남편 따라 외국에 다 가고 참 별일이다" 하면서 친구는 한숨을 쉬었다. 



난 "잘 된 거네, 공짜로 살고" 그렇다. 남편에게 회사는 집도 주고 차도 주었다. 하지만 친구는 낯선 타지에서 아는 사람 없이 자기가 뭘 하고 살겠냐며 한숨이 꺼져라 내쉬었다. 난 자주 연락할 테니 우울해하지 말라며 이야기했다.


사람이 살고 있던 고향을 떠난 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본인도 남편과 끝없는 토론을 했는데 남편은 같이 가길 원했고 본인은 그냥 서울에 남고 싶어 했다. 가봐야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고아처럼 살 것 같아서, 하지만 남편은 부인이 해주는 아침을 먹고 싶다고 우겼고 결국은 양가 부모님들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설을 이야기해서 가기로 한 것이다. 친구는 결국 지난주에 갔다. 



대학 때 늘 밥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속사정도 이야기하던 친구였는데 그렇게 떠나고 나니 맘이 허전했다. 메일을 보내고 잘 지내라고 했는데 맘이 놓이지 않았다. 난 허전한 마음에 커피만 들이켜고 집에 도착해서 뭘 먹을까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대략 보름 전에 사놓은 오징어가 냉동고에 있었다.

난 해동을 해서 오징어 볶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였다. 고3 수능을 앞두고 마지막 모의고사를 쳤다. 예상 밖으로 가장 못 쳤다. 그래서 난 엄청 속상했고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성적표를 엄마에게 보여 드리고 나도 모르게 "나 대학 못 갈 것 같은데"라고 어이없이 웃었다. 엄마는 늘 성적에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 해주신 게 오징어 볶음이었다. "딸 오징어 볶음 먹자" 난 "싫어"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게 맵고 칼칼해서 아마 우리 딸 속은 풀어줄 것 같은데" 


옆으로 봐도 고추장에 고추에 올려진 영롱한 색깔이 내 눈을 끌었다. 그렇게 한 숟가락을 먹었는데 어찌나 맵고 달고 칼칼한지 "엄마 물" 엄마는 물을 주시며 "맛있지?" 난 "응" 안 먹겠다고 하고서는 그 자리에서 소면과 함께 한 그릇을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 스트레스 풀렸어" 


엄마는 "모의고사 좀 못 치면 어떠니, 그런 것 가지고 스트레스받지 말어. 수능 잘 치면 되는 것을." 역시 엄마는 방목이다. 아빠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시험이라는 게 원래 오를 때 있고 내려갈 때 있지 일희일비하지 말어라" 참 이런 집도 없을 거다.



그때 생각이나, 난 오징어를 쓱쓱 썰면서 고추장에 고추에 설탕 꿀 대충 버무려서 볶음을 해서 먹었다.

내가 해도 대충 간은 맞아서 그 자리에서 아, 매워하면서 먹고 나니 허전함이 좀 풀렸다.







맘이 허전하면 먹는 음식이 오징어볶음이다. 집 근처 오징어 볶음 전문점이 있다. 거기는 너무 매워서 마요네즈를 준다. 가끔 난 마요네즈에 먹기도 한다. 그럼 입이 달큼해져서 오징어를 많이 먹는다. 중국 교포 아주머니는 "아가씨 진짜 오징어 좋아하네" 하시며 웃으신다. 민망하지만 어쩌겠는가, 좋아하는 음식이 오징어인데. 겨울이면 마른오징어를 구워서 먹는다. 씹으면서 하루를 정리하며 이렇게 사는 거지, 하면서 속으로 삭힌다. 아침에 울리는 "마른오징어 팝니다" 확성기 소리가 짜증은 나지만 어떨 때는 반가워 가서 냉큼 사서 집에 보관해 두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간혹 친구들이 훅 들어오면 언제든 마른오징어를 구워서 준다. 질겅질겅 씹으며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화도 눌릴 수 있다. 기특한 녀석이다.


오징어 볶음은 씹으면서 풀고 매워서 땀 빼면서 풀고 이런 기특한 이중적 장치는 아마 얼마 없을 듯하다.

친구에게 이 음식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가버린 친구, 친구에게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국에 들어오면 해주겠다고 했다.



마음이 외롭고 허전하면 먹는 오징어는 늘 나에게 위로를 한다. 씹어 그리고 삼켜. 그게 인생이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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