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사진관이다. 예전 사진관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카메라가 없어서 엄마 아빠는 특별한 날에는 아름다운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으셨다. 그날은 아주 특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나는 긴 머리라 엄마가 머리를 땋아 주셨다. 그리고 엄마는 옷장을 열어서 가장 맵시 나는 옷을 입으시고 아빠는 엄마와 색깔이 같은 양복을 입으셨고 생각을 하면 가난의 티가 묻어나는 색깔이었지만 부모님은 그렇게 한 해 한 해 찍어내는 사진에 행복해하셨다. 우리 자매는 그렇게 찍는 사진에 흥미가 없었지만 엄마 아빠는 늘 사진관 아저씨에게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사진을 찍으셨다.
큰 사진을 찍어서 거실에 걸어두고 손님들이 오시면 한 번씩 말씀하셨다.
"아니 저번 사진보다 낯빛이 더 좋아 보여, 보정했어?"
그럼 우리 엄마는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래도 이렇게 찍어두면 아이들에게 추억이라서 우리 집만의 추억이죠" 하며 델몬트 주스를 꺼내오셨다.
그럼 손님들은 "좋다, 우리 집도... 어디서 찍었어?"
그럼 아빠는 "있잖아 우리 동네 사거리에서 좀 오른쪽으로 아, 그래 바로 보이기는 어렵고 속옷 장사 하는 골목에서 끝머리 3번째 가게 아름다운 사진관."
그럼 아저씨는 "아 거기, 그런데 아직도 해?"
라고 물어오면 아빠는 "그럼 , 거기가 역사가 많아. 우리 어머니 영정 사진도 찍었고 아버지 영정 사진도 찍었고 휴,.. 그리고 보니 세월이 시간이 많네... 우리도.."
갑자기 침묵이 흐르면 엄마는 "그렇죠.. 여보 우리도 영정 사진을 거기서 찍을까 봐"
그럼 아빠는 "그러지.."
사실 아름다운 사진관은 아주 나이 많은 아저씨가 고집으로 운영하는 사진관이었다. 그래서 부인은 그만두길 바라지만 어렸을 때 사진에 미쳐서 어려운 시기에 카메라를 구매하시고 사진사가 되었다고 하셨다.
학교 졸업이나 입학식이 되면 사진을 찍어주시고 그렇게 연차를 쌓으시다가 입상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되어서 자기만의 사진관을 여는 게 평생의 꿈이었다는 아저씨는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셨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관에서 그곳은 이제 명소가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혹시 건강은 어떤지 물어보고 어쩌다 문을 닫으면 걱정하는 사진관이 되었다.
내가 졸업을 할 때는 사촌오빠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 건 좋아했지만 사진에 찍히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저 그랬다. 그렇지만 오빠는 "자 웃어' 하며 나에게 포즈를 취하게 헀고 나는 어색하게 포즈를 취해서 몇 장의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현상을 하고 오빠는 내게 "잘 나왔다" 하며 건네어주었을 때 나는 피식 웃으며 "에이 이게 뭐야" 하며 어색한 내 표정에 괜히 심통을 부렸다.
그럼 엄마는 "우리 몽접이 잘 나왔네" 하면서 사진첩에 고이 넣어두셨다.
난 내심 우리 집에도 카메라가 있었으면 했다. 그럼 사진관에 가지 않아도 되고 오빠가 이렇게 찍어주지 않아도 되니 언제든 찍어서 어색한 포즈를 취할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막상 카메라를 마련하고 그렇게 많이 찍었지만 나는 나를 찍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건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둬야 할 것 같다. 그냥 그 어색한 표정으로 찍었던 사진들이 솔직했다고 그래서 이제는 웃으며 본다.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 그리고 영혼을 잡아두는 사진 그래서 그럴까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카메라 나도 대학 때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카메라를 샀다. dslr 도 사고 로모도 샀다.
로모는 예전 남자친구가 워낙 좋다고 해서 로모를 샀는데 처음에 필름만 많이 날렸다. 지금은 그래도 대충은 나온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카메라에게 넘긴다. 그래서 나도 일 년에 한 번 하는 연례행사, 사진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