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 난 군대를 다녀왔다. 내가 있었던 부대는 전방이었다. 군대는 내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뭐 남자들끼리 살을 부대끼며 살아보니 이런 곳이 있구나 했지만 공대생으로 살았던 터라 다르지 않았다. 딱히 모나지도 잘 나지도 않아서 내 인생에서 찐따로 살지 않았던 구간이 군대에서였다.
아, 군대에서는 정말 평범하게 살았다. 엄마는 자주 편지와 먹거리를 보내 주셨고 아들 하나 있다는 걸 팍팍 티를 내주셨기에 고마웠다. 딱 거기까지 그래서 군대에 있으면서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로망은 없었다. 딱 하나 있다면 이 "띠딕띠띠딕" 이 소리 안 듣는 거였다. 그래서 실컷 자는 것 빼고는 없는 생활이 로망이었다. 잘 살았다. 사회에 나온 나는 어떻게든 취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학교 졸업이 힘들었다. 학교에서는 갑자기 졸업에 대한 조건이 까다로웠다. 그래서 결국은 1년을 지옥으로 보내고 겨우 졸업을 하고서나도 남들과 다르지 않게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디 보자, 내가 갈 곳이"
그렇다. 광 클릭을 했다. 지원한 곳이 100곳이 넘는다. 하지만 연락이 없다.
뉴스를 틀었다.
"오늘도 많은 청년들이 취업의 문턱에 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채용을 할 의지가 없다에 90퍼센트 이상을 보였는데요, 이유는 경기침체라고 합니다. " 이런 내가 갈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래서 대기업에서는 블라인드 그러니까 대학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한다는데요, 김기자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김기자: 네 많은 회사에서 도입을 준비 중이며 그간 대학 서열이 중시되던 문화를 깨보고자 노력을 했지만 되지 않았던 많은 노력들을 이번에는 반드시 성립시켜야 한다는 분위기인데요, 그래서 제가 알아보았습니다.
구직자" 저야 그러면 너무 좋죠. 저는 경기도 학교인데요. 솔직히 우리나라 서울 4대 문 들어가야 겨우 취업하는데 저희 같은 학교는 솔직히 다 떨어지잖아요. 그런데 왜 서류에 합격하고 면접에서는 질문도 안 할 거면서 면접심사에 부르는지.. 앞뒤가 안 맞아요. 너무 서러워요"
모자이크가 된 화면에서 신랄하게 대화가 오고 갔다.
아나운서 "김기자 그럼 우리 사회가 이제 대학 서열화 이런 거에서 좀 자유로울까요?"
김기자" 글쎄요. 다음 화면 보시겠습니다"
구직자"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과외를 했습니다. 지금은 그래서 s대를 다니고 있고, 솔직히 저는 저를 위해서 쏟은 돈이 억이 넘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는데 블라인드 채용을 하면 억울할 것 같고요. 그럼 전 뭐가 되죠? 같은 선을 넘을 거였으면 돈도 안 쓰고 그냥 갔죠? 이건 차별입니다"
아나운서" 이런 말을 들으면 또 그렇네요"
김기자"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사교육이 극과 극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음 화면 보시죠"
구직자" 저는 구직을 하려고 지금 4년째인데 안됩니다. 뭐가 문제지?라고 계속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학교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대학을 편입을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실제로 제 친구는 편입을 해서 취업에 성공한 친구도 있어요. 블라인드 채용요? 거짓말인 거 같아요"
아나운서" 저게 만약 사실이라면 블라인드는 의미가 없지 않나요?"
김기자"그렇죠. 그런데 또 우리 사회가 사교육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사실입니다"
점점 흥미진진했다.
구직자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저는 지금 6년째 히키코모리입니다. 그냥 사회가 싫고 밖이 싫어요. 집이 편하고.."
아나운서" 아하.. 그렇군요.."
김기자"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월요일 생각해 봐, 리포트 여기까지입니다"
그렇게 뉴스를 보고 나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다시 구직 사이트를 보니 내게 연락이 온 게 없다.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엄마 일을 도우며 구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은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하시며 본업에나 충실하라며 목대를 울리셨다.
그리고 이주일이 지났을 무렵 연락이 왔다.
-@@회사. 당신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오후 2시 서당 빌딩 3층에서 봅시다. 미팅이니 최대한 깔끔한 복장으로 와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너무 떨렸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나는 이 기회를 놓지 않기 위해 준비를 했다. 대학 졸업한다고 사 주신 양복을 준비했고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대충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리고 그날 본 게임을 하러 갔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다들 전화기를 들고 뭔가를 하고 있었고 각자의 일에 미쳐 있어 보였다.
살짝 나는 그들이 되어서 합격을 한다면 나도 저들처럼 바쁘게 일하고 점심의 여유를 즐기겠지 하는 마음에 붕 떠있었다.
그때였다.
"김민철 씨"
한 남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네"
"이쪽으로 오시죠"
아주 조용한 분위기였다.
직함도 없는 방에서 "여기 무슨 회사인지 알고 오셨죠?"
나는 홈페이지에서 본 걸 이야기했다.
면접자는 "저는 상무 김선길입니다"
나는 "네 반갑습니다"
김선길은 "그래요., 여태까지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셨더라고요"
나는 "네"
면접자는 "성실하시네요"
어디 가도 듣는 이야기다.
나는 "살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면접자는 "우리 회사는 규모가 100명이 넘는 직원에 인센티브 빵빵하고 자기 한 만큼 벌어가는 회사죠. 그리고 회사 복지는 뭐 다니신다면 체감이 되실 거고.. 다니시게 된다면 언제부터 가능하시죠?"
나는 "내일부터도 가능합니다"
면접자는 "마음이 바쁘시네" 슬쩍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이어 면접자는 "말씀 잘하세요. 그러니까 화술이 좋으세요?"
이건 답이 어렵다. "글쎄요.. 편의점을 하면서 사람을 많이 대응을 해서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상대방, 그러더니 "그럼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상대에게 설득할 수 있으세요?"
이것도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학교 조 발표에서 그런 경험을 해 봤는데 어떤 설득인지는 모르나 그게 사실이라면 끝까지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어진 질문 "그럼 실패한다면 뭔가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면 핑계 일 것 같고 제가 핵심을 잘못짚었거나 공략을 잘못했겠죠. 젠더나 나이 등등"
고개를 끄덕이는 상대방은 "그래요, 그럼 우리 잘해봅시다. "
그렇게 성사된 면접은 한 시간을 꽉 채웠고 나는 한 주 뒤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이 출근이 내 인생 3번째 찐따를 만들 줄 몰랐다. 인생은 검은 연기다.
"안녕하세요, 전 민철 씨 전담 이영애입니다. 연예인 이영애와 이름이 같아서 아마 잊어버리기는 힘들 겁니다" 환하게 웃으며 안경을 올리는 여자는 딱 봐도 우리 엄마 나이다. 나는 꾸뻑 인사를 하고 "제가 무엇부터 하면 될까요?"
이영애는 "아니 인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마음이 급하시네"
자리를 연결해 주었다.
내 자리는 입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이고 서랍에는 각종 문기류와 컴퓨터 한 대 그리고 현대에서 쓰일까 싶은 전화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일단 앉아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난 주식회사명으로 들어왔는데 이런 여기는 텔레콤이다. 그것도 텔레콤에서도 하부 구조에 있는 회사이다.
이영애는 나처럼 처음 온 사람을 훈련시켜 주는 전담사였고 그날 내가 앉을 의자는 일주일 동안 훈련을 마치면 일을 할 곳이라고 했다.
나는 3층에서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이미 합격자들이 앉아 있었다.
나 포함 6명이다.
이영애는 목소리를 높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날이 춥죠. 저는 @@ 텔레콤에 훈련사 이영애입니다. 제가 훈련 그러니까 트레이닝 역을 맡은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죠. 저도 처음에는 여러분들처럼 이곳에 앉아서 연습하고 연습이 끝나면 가서 회사에 넉넉한 수입을 챙겨 드리고 월급을 받았죠. 세월이 이렇게 빠릅니다. 여러분들은 아주 어려운 면접에서 합격하신 겁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 이미 다른 텔레콤에서 일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주위를 둘러보니 딱 한 명의 여성이 손을 들었다.
이영애는 "인콜인가요? 아니면 아웃콜인가요?"
여자는 "저는 둘 다입니다"
이영애는 "아주 좋은 인재네요"
이영애는 "인콜은 우리가 전화를 걸어요. 아웃콜은 우리가 전화를 받는 걸 말하는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통신사에서 파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판매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4대 보험도 되고 일주일에 5일을 일하며 야근 수당도 있는 회사이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하루에 70통의 전화를 받거나 내가 걸어야 하고 그날 그 콜수를 채우지 못하면 주말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하고 성과급이 없다는 거다. 점점 험해지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첫째 날부터 마음이 뒤숭숭하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둘째 날 나는 점심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리고 나머지 6명과도 친해지기 위해 이야기를 준비했다. 6명은 누구랄 것 없이 한 팀이 되어 말이 잘 통했다.
이영애 팀장은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며 설명을 했다.
"자 여기 보시면 우리 회원들의 등급이 5등급으로 나눕니다. 초보. 중금. 고급. VIP VVIP, 여러분들 생각에는 기준이 뭐라곤 생각하세요?"
다들 답이 없자 호명을 시작했다.
"우리 여명님?"
남자다.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통신사를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가 아닐까요?"
이영애는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요 , 얼마나 오래 사용헀는가도 중요한데 얼마나 많은 상품을 사용하는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맨 윗자리에 계신 분들은 저희 상품을 모두 다 사용하시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끄덕이며 이해를 했다.
다음 질문이 있었다.
"그럼 상위 등급으로 가는데 얼마의 비용이 들까요?"
나는 손을 들었다.
"한 상품마다 여기 보니 대략 15만 원 정도 들어가는데 일 년에 15만 원이니 분기별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영애는 "맞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VVIP 외 분들이 우리 상품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다들 그러세요, 지금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런데 막상 써보시면 좋다 하시거든요,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각 상품마다의 장점과 단점을 암기하시고 콜을 받거나 콜을 하실 때 설명을 하셔서 상품 구매를 유도하시는 일입니다"
어느덧 점심시간 "자 그럼 점심 드시고 다시 만나겠습니다"
우리는 다들 말이 많았다.
"아니 저는 이런 회사인지 몰랐어요. 분명 주식회사라고 하지 않았어요?"
여명이 말했다.
나도 말했다."저도 그렇게 알고 왔는데 이건 뭐, 그런데 면접 때 그러시더라고요. 뭐 설득할 수 있느냐?"
젊은 여자가 말을 했다. "아 저 지민이고요, 보통 이런 텔레콤 회사는 텔레콤이라고 하지 않아요. 왜냐면 지원률이 굉장히 낮아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 들어갔을 때 그렇게 들어갔는데 이렇게 통신사였어요. 거기서 이콜 아웃콜을 받았는데 거기는 심지어 인터넷으로 상품도 받아서 실시간 채팅상담도 하는 곳이라 정말 힘들었어요.
여기는 그래도 그냥 전화만 하면 되는 구조라 편하다고 보시면 돼요"
지민이라는 여자는 이미 많은 걸 알고 왔다.
옆에 앉은 또 다른 여자 수진은 "맞아요. 저도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통신사는 편하다. 그나마. 그런데 여기 시험치 죠?"
이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들었더니 마지막날에 시험을 쳐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때 지민이라는 여자는 "그렇긴 한데 거의 붙여줘요. 왜냐면 암기는 순간이고 막상 현장에서 잘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이영애는 들어왔다.
"점심 맛있게 드셨나요?"
우리는 "네"
라고 답을 하고 다시 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인터넷 상품과 TV상품을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너무 바쁘니까 카톡으로 다 하시잖아요. 그래서 우리 임무가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야기하시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니 믿겠습니다. "
그렇게 시작된 교육은 정확히 일주일이 되었다.
정말 시험을 쳤고 결과는 다음날 알려주었다. 나는 합격을 했고 정말 떨어지는 사람은 없었다.
기뻐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어벙벙하게 있을 때 이미 내 앞에는 전화기와 내 사수인 최진영이 준 100개가 넘는 전화번호가 있었다.
진영은 "이건 전화번호인데 인골이 없으면 아웃콜을 하셔서 가입을 유도하셔야 해요. 수업 때 배우신 그대로 하시면 되고 만약에 회원님이 그만하시고 싶다고 하시면 무료 2달을 체험하시게 해서 유도하세요"
이렇게 시작된 내 사회생활은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
누가 누구에게 전화하는지도 모르게 시간은 갔고, 점점 나는 나를 잃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한 달이 지났다. 월급은 들어왔지만 기타 보너스는 없었다. 하지만 지민이라는 여자는 보너스가 50만 원이라고 좋아했다. 인골에서 회원을 유치했다고 한다. 같은 기수끼리라고 술을 사겠다고 해서 껴서 앉은자리에서 우리는 비법을 풀어 달라고 했지만 그건 비밀유지라며 웃으며 그렇게 자리를 마무리했다.
엄마는 어떻게든 버티라고 했다. 하지만 말이 통신사이지 거의 욕을 듣는 자리 나 다름없었다.
여기서도 나는 찐따였다.
어느덧 5개월이 흘렀다. 나도 이제 제법 익숙하다.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칼퇴근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봤더니 이런 칼퇴근을 하지 않고 밤 9시에 퇴근하는 사람도 있단다. 거의 가족이 있는 직장인들은 그렇단다. 먹고사는 게 힘드니 그렇다는데 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돈을 모았던 경험은 군대라 군대에서 번돈도 엄마 반찬 가게에 많이 써버려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여보세요, 상담사 김민철입니다"
받은 사람은 할아버지셨다. "어 나야, 나 누군지 알지?"
나는 너무 당황해서 "무슨 일로 전화하셨을까요? 도와 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니 내가 그 통신사를 20년 넘게 사용했는데 통신비가 15000원이나 나왔어. 이거 사기 아니야? 거의 공짜로 해도 감사합니다 해야 하는 판국인데 , 내 친구는 다른 통신사를 나와 같은 년도 그러니까 10년을 사용하니까 공짜를 많이 주던데 여기는 그런 것도 없어. 아니 내가 화딱지가 나 안나?!!" 이미 화가 많이 난 할아버지는 "그리고 내가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너 공부 어디까지 했어? 어디서 웃으면서 전화를 받아. 내 번호가 뜰 거 아니야, 그럼 대충 감이 안 와? 아 화가 나실 법하다"
나는 "네 죄송합니다. 일단 화를 조금만 누르시고 제가 알아보니 10년 이용하신 건 맞으시고 지금 내시고 계신 통신비는 최저이십니다. 더 이상 낮은 비용은 없으시고 저희 통신사를 통해서 TV이용료도 최저이십니다"라고 말했더니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욕은 "그러니까 공짜 말이야 공짜!!"
나는 "저희 정책상 공짜는 없으시고 최저 요금제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할아버지는 "야 너 누구야!! 아주 돼먹지 못한 놈 같으니 너 욕 들어볼래?"
나는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은 산업 안전 보건법에 따라서 사용자에 내용이 녹음인 되고 있습니다. 후에 어려움을 겪으실 수 있으시니 조금만 화를 푸시고 이야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녹음해 녹음하라고 이 쌍놈의 새끼야"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때 나타난 이영애 팀장은 "김상길 고객님 이영애 팀장입니다. 지금 불편을 호소하시는 부분들 저희가 접수해 드렸습니다. 추후 송달해 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거짓말처럼 전화를 끊었다. 이영애 팀장은 비품실로 나를 불렀다.
"민철 씨 우리 일이 그래요. 감정 노동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런 분들 이야기 다 들어주면 이콜 아웃콜 수 다 못 채워서 월급 삭감인 거 아시죠? 오늘 하루는 그냥 잊어버리시고 파이팅 하세요" 나를 다독이며 가는 이영애가 싫었다. 이후로도 나는 컴플레이 전화를 받았다. 나도 같이 공지를 하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날은 공지로는 안 되는 날이었다.
"띠리리링"
"안녕하세요. @@ 텔레콤 김민철입니다"
"야 , 너희 엄마 예쁘더라"
갑자기 심장이 내려앉았다.
"고객님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 녹음 됩니다"
"아니 너희 엄마 예쁘시다고"
"고객님 원하시는 내용이 무슨 내용일까요?"
아랑곳하지 않은 고객은 "너희 엄마 내가 사랑해도 되니?"
너무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순간 "저기요 끊을게요"
그렇게 끊어버렸다. 이건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역시나 어김없이 이영애 팀장이 나에게 왔다.
"아니 그렇게 끊으시면 어떻게 해요?"
"다 들으셨잖아요"
이영애 팀장은 지지 않고 "우리 일이 그래요, 아시잖아요. 지금 5달, 아시면서!!" 음성이 올라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저 그만두겠습니다. 저도 버틸 만큼 버틴 것 같습니다."
이영애 팀장은 "그럼 스스로 사직서 쓰고 가세요, 본인 과실입니다. 아시죠?"
나는 "아니 그런 전화도 웃으며 받는 사람은 누구며 그런 걸 엎으라는 회사는 제정신입니까?"
이영애 팀장은 "그럼 회사가 만만합니까?"
나는 지지 않고 "알겠습니다. 제 마지막 월급 챙겨주시고 제가 사직서를 쓰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3일을 채우고 나왔다.
찐따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생각해 보니 이때도 난 찐따로 살았다. 감정소비통으로 살면서 말이다.
그 누군가에게 말해야 하는데 내가 되어서 그 사람들의 감정을 소비해 주는 정작 내 감정은 숨겨야 하는 그런 사람, 이게 찐다지 뭐가 찐따이겠는가 그래 난 여전히 찐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