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을 관통하고 있다. 휴대폰에 뜨는 겨울 온도는 나에게 기습적이다. 갑상선 저하증에 손과 발이 남들보다 현저하게 차가운 사람에게 겨울은 슬프다. 갑상선 저하증 약통을 들고 다니면서 약을 먹는데 이틀 동안 다 뒤졌는데 없어서 오늘은 아침부터 병원에 가서 읍소를 하고 비건강보험으로 약을 받아서 겨우 한숨을 돌렸고 나오기 전 잊어버릴까 봐 저녁에 놓아둔 핫팩 4개를 뜯어서 두 개씩 양쪽에 두둑하게 장전을 하고 움직였다. 지금 내 자리는 의자쿠션 밑에 핫팩이 있고 카디건에 또 핫팩이 있고 머그컵에 뜨거운 물, 이렇게 해도 발이 차서 결국은 양말 두 개를 신고 겨우 버티고 있다.
어렸을 때는 어떻게 겨울을 버티었을까? 나는 손이 많이 가는 딸이었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나에게 "몽접아 이리 와봐" 하시면서 긴 머리를 땋아주셨고 당신이 직접 뜬 목도리를 목에 걸어 주셨고 두꺼운 코르덴 바지를 입혀주셨고 그것도 모자라 내복도 입었다. 엄마는 특히나 내복을 사실 때 정말 깐깐하게 고르셨는데 항상 내 키는 크고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넉넉한 사이즈를 내게 입으라고 하셨고 마지막은 장화를 신으라고 하셨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양말을 두 켤레를 신고 장화는 발목까지 오는 장화였는데 빨간색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그려진 장화였는데 그 장화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은 장화였는데 꽤 예뻐서 친구들이 구경을 해서 나는 친구들에게 신어보라고 했던 기억이 아주 뚜렷하다.
학교를 다녀오면 엄마는 뜨거운 보리차를 주셨고 보리차를 다 마시면 보리차의 온기가 가슴 깊숙이 전해져서 살짝 잠을 자곤 했었다. 그리고 밥 먹자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면 개다리소반에 뜨끈한 된장찌개가 올라와 폴폴 올라오는 하얀색 김을 보면서 두부에 밥을 비벼 먹으면 꿀맛이었다. 아빠는 뜨거운 음식에 같이 앉아서 먹는 이 순간이 아주 따뜻하다시며 행복하다고 괜히 미소를 보이셨다. 그런 아빠는 괜히 딸 손이 찰까 싶어 당신의 손바닥에 내 손을 얹어 놓으셨다. 엄마도 다르지 않으셨다. 일을 마치시고 밥까지 준비하셔서 바쁘실 텐데 나에게 춥지 않냐고 물으셨고 행여나 감기라도 걸리면 엄마는 열이 나서 힘들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에는 울면서 나를 키우셨다.
어릴 때는 몰랐다. 그래 나는 겨울을 엄마의 손바닥에서 컸다. 지금은 나이가 들고 혼자 살면서 그 소중함을 이제야 알고 괜히 눈물이 났다. 자주 가던 국숫집 사장님은 내게 효녀라고 말하면 엄마는 그냥 미소만 보이셨고 자주 가던 삼삼이 슈퍼집에서 콩나물을 사면 그 슈퍼집 할머니는 엄마 말씀 잘 들어라 하시며 덤으로 껌을 주셨고 자주 가던 짜장면집에 가면 덤으로 주시던 군만두는 일품이었다. 일 년에 두 번 가던 미용실은 엄마 딸임을 알고서도 나에게 공주라고 불러주셨다. 그게 불편해서 머리만 잘랐지만 나는 엄마이기에 가능했던 지나칠 수 없었던 많은 추억을 만들며 겨울을 버티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알고 그러셨을까? 엄마의 겨울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자주 스웨터를 선물해 주셨고 외손녀인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그리고 깐깐한 입맛을 잘 맞추는 엄마의 음식솜씨를 내심 만족스러워하셨다.
내가 드리는 계란 프라이를 아주 좋아하셔서 늘 첫 번째 음식으로 드셨다.
이렇게 추울 때 외할머니께서는 돌아가셨다.
겨울은 내게 많은 추억이 있고 생각이 있는 계절이다.
난 엄마의 손바닥에서 겨울을 지냈다.
감사합니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