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없다.

by 몽접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없다. 이 이야기는 대학 때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어쩌라는 거야,라는 심정으로 들었다. 대학 때 내 성격은 좀 까칠한 성격이고 말없이 사는 성격이라 혼자가 편했다. 누구와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린다거나 폰이 없어서 불편한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혼자 사는 내가 궁금했는지 나에 대해서 참 호기심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호기심조차도 관심이 없었다. 방학이 되면 휴대폰 정지 신청을 해서 몇 안 되는 친구는 메일을 통해서 연락을 했고 정말 친한 친구는 집으로 연락을 했다. 그랬다. 그러다 한 친구와 술을 마실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성공하는 삶을 그리는 친구였다. 그런데 자신은 자신이 없다며 한국을 떠나 유학을 가야겠다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나는 그런 결정을 응원하며 친구와 함께 실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응원을 했다.

친구는 여자로 혼자서 워킹비자를 받아서 떠나야 했다. 나는 웃으며 잘 될 거라 이야기했고 친구는 맨땅에 헤딩이 쉽겠냐고 어쩌면 자신은 오렌지농장에서 오렌지 먹어보지도 못하고 노동에 시달릴 수 있다며 웃으며 말하는데 괜히 눈물이 나서 그날은 정말 웃다 울다를 반복했다.

그랬다. 그때 친구가 그랬다.

"몽접아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어"

나는 웃으며 "그래"

친구는 내게 조언을 해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들으며 "내가 그렇게 깨끗하지 않은데, 그리곤 내 성격이 그냥 혼자가 편해서 그래"

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은 "친구들이 너하고 연락하려면 얼마나 불편한데.ㅋㅋ 그리고 사는 게 말이야 나도 너와 똑같은 나이지만 나는 너보다 어려운 사건을 더 겪어보니 그렇더라, 별거 없어. 그냥 너무 맑게 살지 말고 때론 더럽게도 살아"

김치전을 먹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친구는 어려운 형편에도 한국으로 편지를 보냈고 나는 그 편지에 다시 답장을 하고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온 친구는 정말 달라졌다. 자신감과 배짱이라는 단어를 들고서 뭔가를 해야겠다며 100여 곳이 넘는 곳에 이력서를 지원했고 본인이 원하는 곳에 결국은 취직을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물론 중간에 연애에서 뼈아픈 시련도 있었지만 친구는 노련하게 이겨냈고 나는 그 나쁜 놈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또 웃으며 흘려보냈다.


그리고 지난주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이제 아이들과 전쟁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전상태라고 하면서 남편과도 갈등이 있어서 사는 게 늘 답이 없다며 웃는데 나는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어"라고 했더니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그때가 황금기였다"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너는 지금도 멋있어"라고 했다. 그 말에 난 진심이었는데 친구는 "오 역시 이제는 좀 흐려졌어"라고 되받는 친구에게 내 어린 모습이 그렇게 강직해 보였는지 물었더니 친구는 대나무 같은 성격이 아슬아슬해 보였다고 했다.

그 대나무가 부러지면 회복이 어려우니 차라리 잡초처럼 살기를 바랐단다.

그렇지만 저렇게 눈썹을 휘날리고 다니니 어쩔 수 없다 싶어서 학교에 놀러 가면 괜히 그냥 툭 툭 던지며 하는 말들이 친구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럤다고 했다.

난 괜히 그 말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역시 친구는 나보다 현명했다.


난 친구에게 "지금은 많이 흐려졌지..." 하지만 친구는 "넌 멀었어"라고 또 웃으며 받는 친구에게 곧 밥을 먹자며 약속을 잡았고 집으로 가는 길 그 말을 잊을 수 없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없어,라는 말에 나는 괜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하긴 엄마도 그러셨다. 나에게 그건 고집이고 아집이 될 수 있으니 꼭 돌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엄마는 경계를 하라고 하셨다.


때로는 자신을 잘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이렇게 직언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부자로 느껴질 때가 있다.

어제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괜히 웃음이 났다. 추운 겨울, 따뜻한 말들이 오고 간 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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