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어린 시절 많이 먹었던 음식이 고등어였다. 5일장이 열리면 엄마는 3바퀴를 돌고서 맨 마지막 오후 떨이가 될 즈음 가셔서 고등어를 몇 마리를 사셔서 우리에게 구워주셨다. 때로는 프라이팬에 때로는 연탄불에 구워주셨는데 비릴법한데 너무 맛있어서 개눈 감추듯이 먹었다.
된장국에 김치 그리고 고등어가 있으면 밥 두 공기를 먹고 엄마는 그동안 굶었냐고 웃으시며 뼈를 갈라 주셨고 껍질을 좋아했던 나와 속살을 좋아했던 여동생 극과 극이었던 두 자매를 위해서 접시에 나란히 주셨고 아버지는 고등어 머리를 드셨는데 어린 눈에는 보기 힘들어서 눈을 감았지만 아빠는 어두육미라시며 드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자식을 위해서 포기를 하신 듯하다. 엄마는 왜 안 드시냐고 물어보면 비려서 안 드신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설거지를 앞두고 우리가 남긴 고등어 살이 있으면 엄마는 드셨고 그걸 뒤에서 봤을 때는 일부러 남기기도 했다.
겨울에는 생선 반찬이 많았다. 고기도 맛있지만 생선이 주는 담백함이 좋아서 아빠는 어쩌면 고기보다 생선이 더 비싼 것 같다고 하셨고 흥정을 잘하시는 아빠는 본인이 깎을 수 있는 가격까지 흥정을 하시면 집에 오셔서 다 같이 먹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과메기'였다.
과메기가 쫄깃쫄깃, 혹은 쫀쫀이라는 표현을 해야 하는데 아빠가 제일 좋아하시는 생선이었는데 이때 엄마는 조미되지 않는 김과 초장 그리고 약간의 기름장을 준비하셨고 물미역을 함께해서 한상을 거하게 해서 먹었는데 사실 과메기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몇 번이나 권하셔서 먹었는데 김과 같이 먹었던 탓일까 비리지 않아서 맛있게 먹어서 과메기를 먹으면 겨울이 다가오고 있구나 하고 가늠할 뿐이었다.
이렇게 우리 집은 과메기와 고등어를 먹으며 겨울을 보냈고 거기에 무를 많이 사셔서 생무를 먹으며 저녁에 입가심을 했는데 군것질을 잘하지 않았던 집에서 '무'는 효자 역할을 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건강을 정말 잘 챙긴 삶이었다.
지금은 혼자 사니 고등어 먹는 일은 정말 힘들다. 그래서 어쩌다 생선구이집을 지나치다 보면 고등어라는 글자가 보이면 가끔 들어가서 1인상을 먹는다. 그러면 그때 엄마가 구워주신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등어에서 나오는 기름에 바삭해서 오물오물 씹으며 식사를 마친다. 쓸쓸하기 짝이 없는 식사지만 그래도 추억을 채웠다는 생각에 괜히 배부름이 두 배가 된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엄마에게 집에 가면 고등어를 구워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엄마는 당연하다고 하셨는데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평소 손목을 많이 쓰셔서 지금은 파스로 버티시는 엄마에게 무리한 부탁이다. 하지만 내 욕심은 엄마에게 또 부탁을 드린 거다. 하지만 그 맛은 정말 그립다.
옆에서 아빠는 언제 오냐고 물으셨고 나는 늦지 않게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고등어를 많이 사놓을 테니 꼭 오라고 하시며 건강을 걱정하시며 끊으셨다.
그래, 이렇게 고등어는 내게 친구였으니 엄마가 내게 주신 친구 고등어 오늘도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