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연락을 하셨다. 요즘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이리저리 알아보니 또 갑상선이 문제다. 지긋한 갑상선. 다시 병원을 가서 약을 올리고 최대한 쉬는 것으로 하고 이것저것 차려 먹으라고 의사 선생님은 거의 경고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시고 나에게 부탁이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혼자 살면서 음식에 욕심도 없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으니 내가 자초한 일이기도 한다.
최근에 엄마는 나에게 목소리만 들으시고 걱정을 하시며 회사를 당분간 쉬는 게 어떠냐고 하셔서 난 한번 쉬면 또 쉬고 싶어서 안된다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시더니 지난주 아빠와 함께 오셨다.
평소에는 아빠차를 타시고 오시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고 오셨다.
강변 버스터미널에 마중을 갔다.
터미널에 가는 일이 요즘 많이 줄었다.
내가 어딘가를 가지 않으면 가는 일이 없어서 괜히 기다리면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게 설레기도 하고 부모님은 어떻게 오실까 싶어서 약간의 설렘도 있고 한 차가 돌아서 나가면 다른 차가 들어와서 채우고 "차 갑니다"라고 운전사 분이 외치시면 급하게 뛰어가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니 어느덧 도착하실 시간.
그렇게 급히 화장실을 다녀오고 난 기다렸다.
엄마 아빠는 내리시며 나를 찾으셨고 나는 "엄마"라고 하고 손을 들었고 두 분은 웃으시며 내리셨다.
이런 두 분 다 손이 무겁다.
나는 또 뭐 하러 들고 왔냐고 잔소리를 했는데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다 이게 보약이다 하시며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하시며 나는 택시를 타도 괜찮다고 했는데 굳이 지하철을 이용하겠다고 하시는 두 분을 모시고 집에 도착, 보따리 하나하나 푸는데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하나는 쑥떡이다.
진짜 좋아하는데 어릴 때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날짜를 잡아서 뒷산에 가서 쑥을 뜯으셨다. 방앗간 아주머니는 그날을 디데이로 잡고서 정말 하루 종일 허리 꺾이도록 꺾어 오시면 그날은 집안에 쑥향이 가득해서 쑥차도 마시고 쑥을 말린다고 엄마는 포대자루에 쑥을 마루에 널려 놓고 다 말리면 가루를 내려서 나에게 따뜻한 차로 마시라고 하셨다. 몸이 찬 여성에게 좋다고 하시며 자신을 닮아서 몸이 차게 태어난 게 아쉽다고 하시며 정말 나를 많이 챙기셨다. 어린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겨우 마시면 엄마는 몸에 쓴 게 보약이다 하시며 당신도 드시고 나도 마시고 그렇게 마시면 아빠는 "딸 좋다" 하시며 그렇게 나를 키우셨다.
그리고 남은 쑥은 떡을 하셨는데 꿀이나 참기름을 찍어먹으면 정말 꿀맛이었다.
그날은 우리 집 잔칫날이다. 동생과 나는 떡을 얼마나 먹었는지 잘 때는 무거운 배를 잡고서 다음날 또 떡을 먹고 엄마는 떡은 밥 먹고 먹어라 하셨지만 포기가 안 돼서 우리는 정말 떡 킬러로 살았다. 그때 기억이 나서 불현듯 눈물이 났다. 엄마는 이번에도 동네 뒷산에 가셔서 쑥을 캐셨다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고 당신 몸도 좀 챙기시라고 했는데 엄마는 이렇게 사는 게 부모 노릇이라고 웃으시는데 싫었다. 그러다 산에서 미끄러지거나 손목이 안 그래도 힘든데 그러지 말라고 그냥 사 먹으면 좋은 거 많다고 했어도 아빠까지 그럼 이제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되는걸, 하시며 추임새를 넣어서 고개를 저었다.
그다음은 반찬이었다.
냉이반찬이었는데 난 냉이를 이용한 반찬을 정말 좋아한다.
냉이 된장국도 좋아하는데 냉이 반찬을 정말 많이 해 주셔서 김치 다음으로 먹는데 어김없이 엄마 솜씨로 해주셔서 보자마자 요즘 입이 써서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는데 침이 고였다. 집에 있는 햇반을 돌려서 한 숟가락을 퍼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엄마 최근에 밥을 못 먹었는데 이제 먹네"라고 했더니 엄마는 한숨을 쉬시며 "다 먹자고 사는데 왜 그리 못 먹어" 하셔서 나도 모르게 한 말을 주어 담지 못해서 후회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엄마의 사랑, 양말이었다.
난 갑상선 저하증이기도 하지만 손발이 차서 아직은 양말을 두꺼운 걸 신는다. 엄마는 잊지 않고 시장에서 파는 두툼한 양말을 사 오셨다. 나는 그 양말을 보면서 감동이라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멍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5일장에서 샀어?"라고 물으니 엄마는 "응, 좋더라. 너 아직은 신어야지"라고 그냥 말씀은 하시지만 아직도 딸을 10대로 생각하는 엄마에게 내가 챙길게 라는 말을 하니 돌아온 답은 네가 60살이 되어도 나는 늘 너를 10대로 생각할 거야,라고 웃으셨는데 그런 것 같다.
아빠는 집에 도착하시자마자 뭐 손 볼 것 없는지 돌아보셨고 나는 없다고 했더니 괜히 식탁을 원목으로 더 좋은 것으로 사라고 용돈을 주셨다.
난 돈 있다고 하면서 물려 드렸지만 끝내 받으라고 하시며 가셨다.
3시간 30분 기다린 봄 선물을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까? 건강하시면 좋겠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가난한 집안을 이끄신다고 몸을 많이 혹사하셨고 아빠도 다르지 않으시다. 그래서 두 분을 뵈면 꼭 오래 사세요,라는 말을 한다. 그럼 엄마 아빠는 사는 게 우리 마음 같지 않지, 딸 그냥 편하게 생각해라고 쿨하게 말씀하시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
그래 3시간 30분 이 거리는 내가 아는 거리 중 가장 아프고 사랑하고 애정하는 하지만 누구나 받을 수 없는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