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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Mar 28. 2022

한 달 용돈 25만 원

대학 때 내 용돈은 25만 원이었다. 물론 아르바이트도 했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턱없었다. 기숙사를 나와 옥탑방을 살면서 나는 월세비에 각종 공과금과 기타 나가는 비용을 다 비우면 내게 남는 돈은 30만 원 정도,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살아졌다.



친구들은 내게 짠순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난 그게 싫었다.

가난하게 살았던 티를 내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남들에게는 최대한 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때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정말 남달랐다. 필사를 많이 했고 책을 다 살 수 없어서 복사를 했다. 복사 카드를 사서 한 번 하면 만원은 그냥 나갔다.



학교 도서관도 다녔지만 내가 가장 많이 다닌 곳은 국립 중앙 도서관이다. 논문을 보면서 공부를 하고 싶어서 나름 발품을 팔아서 공부를 했다. 대학 3년 차에 난 한중일을 관통하는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남들보다는 어렵게 공부를 하는 걸 스스로 선택했다. 아침 9시에 들어가면 오후 6시에 나오니 뭐 , 밥은 고사하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자동판매기 커피 한잔에 빵 하나로 버티며 공부를 하면서 내가 왜 고등학교 때 공부를 했는지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바빴다. 그렇게 25만 원으로 버티면서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돈 걱정 없이 책을 사보는 사람이었다.



내 친구는 돈이 많은 집 딸이었다. 금수저 집안이었다. 방학이면 국내에 없었다. 해외에서 머물다 오다 보니 늘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었고 난 속으로 '저걸 판다면 얼마나 받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진짜로 판 적은 없다. 그렇게 난 책을 다 사지 못해서 지금은 없는 동대문 헌책방에서 죽어라 하고 돌아다녔다.


2년을 돌아다니면서 대학 4년 차에는 복사지가 집을 가득 채웠다. 나름 든든했다. 그리고 난 더 열심히 살았다. 졸업 논문도 남들보다 더 빨리 쓸 수 있었다. 돈이 없다는 건 많은 걸 내게 가르쳐 줬다.

돈이 없어 불편했던 건 많았다. 그러나 없어서 운 적은 없었다. 하지만 돈 많은 친구를 부러워했던 적은 있었다.



한 번은 친구가 문자가 왔다. 도서관에 있었는데 동대문에 가자고 연락이 왔다. 옷 구경을 가자고 한 것이다. 사실 난 대학 때 화장도 옷도 잘하지 않았고 입고 다니지도 않았는데 친구는 그쪽에 정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같이 가자고 여러 번 문자가 와서 결국 가게 되었다. 동대문 플라자를 갔는데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는 가격을 묻지도 않고 마음에 들면 옷을 쓸었다. 난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니니?"라고 물으면 "적정한데"라고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난 다른 세상을 봤다.



그곳에서 열심히 사시는 분들을 봤다. 남들은 다 자는 시간에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봤다.

절친한 친구가 언젠가 "네가 왜 살아야 하는가 궁금해지면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난 "왜?라고 물었다. 친구는 "가보면 알아"라고 짧게 이야기를 했다. 그때 알았다.


삶이라는  현장이 치열했다. 친구는 옷을 샀고 난 거기서 인생의 시간을 샀다. 그래서 그럴까? 피곤함이 쓱 사라지고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밥을 나르시는 분, 옷감을 나르시는 분, 옷을 주문해서 옮기는 분, 정말 많은 분들을 봤다. 난 거기서 알았다. 내 용돈 25만 원이 결코 작지 않음을. 그리고 여태까지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그리고 감사함을 느꼈다.


친구와 그렇게 몇 바퀴를 돌고서 나올 때는 어묵 몇 개를 먹고 다시 학교를 돌아와서 친구는 마음에 드는 옷을 하나 가져가라고 했지만 난 괜찮다고 이야기를 했다. 난 옷보다는 그 시간을 샀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사고 온 기분이었다. 피곤한지 모르고 다시 도서관으로 가서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 이후 내 용돈이 25만 원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난 생각한다. 그때의 25만 원은 돈으로 셀 수없는 가치였다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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