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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Mar 31. 2022

물건을 돈으로 사나요, 정으로 사지?

내가 살았던 고향은 5일장이 열린다. 그래서 늘 5일장을 기다렸다. 중학교 시절 5일장이 열리면 학교를 마치치고 아이들과 장터에서 파는 국수를 많이 먹었다. 뭐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 없어도 허름한 의자가 역사를 말해주는 나무 의자에 앉아서 불어 터지기 직전의 국수를 먹으면서 우리는 여름에는 시원하게 동치미국수를 먹었고 겨울에는 따뜻한 가락국수를 먹었다. 5일장에 주는 재미는 쏠쏠했다. 자판에서 파는 머리핀을 사면 보통은 5000원이 넘는데 흥정을 해서 사면 3000원에도 살 수 있어서 나는 가끔 그렇게 구입을 해서 엄마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엄마가 많은 물건을 사셨고 늘 들리는 곳이 있어서 루틴을 따라가면 엄마의 손에 들려있는 장바구니에는 생선부터 나물까지 다양했다. 그래서 난 늘 "엄마 이게 우리 일주일 먹거리야?"라고 물으면 "그런데 어째 좀 부족하네" 하시고는 이래저래 몇 번을 보셨다. 그렇게 장을 몇 바퀴를 돌면 엄마는 덤으로 꽈배기를 사주셨다. 그날은 횡재다.


난 그 꽈배기를 먹으며 집으로 와서는 동생에게 남은 꽈배기를 주며 그날 장에서 본 신기한 아저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 약장수 아저씨도 있었다.

그 유명한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 하는 아저씨 말이다.


그 아저씨는 너무 유명해서 우리들 사이에서는 약장수 아저씨가 아니라 만능 의사 선생님이셨다.

뭐 못 고치는 병 없고 모르는 게 없는데 어찌 입소문이 안 나겠는가,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마이크를 셔츠에 달고서는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애들은 가주세요. 어머니들 저 이거 남기자고 파는 거 아닙니다. 아버님들 허기지고 기가 약해지면 이거 한 통이면 끝입니다. 저도 이 장사를 몇 년째 하는 거 아시죠? 저랑 얼굴 많이 보시잖아요. 이 장사를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자 제가 이 뚜껑을 따서 먹어 보는데 만약 제 얼굴에서 화색이 돌면 구입하세요" 하면서 이상한 뚜껑에서 뭔가를 꺼내긴 했다. 그리고 약을 먹는데 내가 보기엔 전혀 반응이 없는데 바람을 잡는 아주머니는 "어머 다르네" 하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나 진짜 약을 사는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 할머니들이셨다. 그렇게 흥정이 끝나면 아저씨는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엄마와 난 구경을 하며 즐겼다.



그리고 그다음 주 외할머니께서 오셨다. 외할머니도 5일장을 정말 좋아하신다. 어려운시기를 살아오신 할머니는 장터에서 사람 사는 삶이 정말 좋으시다며 손녀들을 앞세워 이것저것 사셨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외할머니는 흥정의 대마왕이었다. 아니 콩나물 대구포 뭐 하나 흥정을 안 하시는 게 없다. 너무 흥정을 해서, "할머니 그냥 가자" 하면 "무슨 소리 끝을 봐야 한다" 하시면서 한복을 끝까지 올려 입으시고는 끝까지 흥정을 해서 할머니가 원하는 값으로 사셨다.

난 엄마가 왜 흥정을 잘하는지 그때서야 알았다. 유전이었다. 


마지막 들은 곳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엿가락 집이었다. 하얀 엿을 파는 곳이었는데 풍물 장수가 소탈하게 옷을 입으며 엿을 파는 곳이었다.

흥겨운 음악소리에 찰칵찰칵 하는 소리에 맞춰서 엿을 잘라서 파는데 외할머니는 "맛있겠네" 하시며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꽤 크게 사셨다.



 문제는 또 흥정이다. 노랫소리에 엿가락 소리에 온통 정신이 없는데 "아이고 어머니 이렇게 깎으시면 저희 남는 게 없습니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나오자 할머니는 "물건은 돈으로 사나 정으로 사는 거지" 하시며 맛보기 엿을 드시면서 "좋아요" 하시면서 "정으로 팔아요"라고 다시 제시하시고 흥정을 다시 하셨다. 결국 2번의 흥정으로 어찌어찌 사셨다.


즐거운 외할머니는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향하셨다.

난 "할머니 물건은 가격으로 사는 게 아니야?"라고 물었고 할머니는 "물건은 가격으로 사는 게 맞지, 하지만 정으로 사는 게 더 많다" 

난 정으로?"

할머니는 "그렇지"

난 "정으로 따지자면 단골이어야 되는 건데 할머니는 단골이 아니잖아"

외할머니는 "그게 꼭 단골이 아니라도 한국인들에게는 정이라는 게 있잖아, 그러니까 그 정으로 파는 게야"


아리송한 말씀을 하시는 걸 듣고서 난 엄마에게 "엄마 할머니는 물건을 정으로 사신다는데 엄마는 어때?"

엄마는 몇 번을 고민하시더니 "맞네" 하셨다.

그렇게 정으로 시작된 논란은 지워지고 그날은 푸짐한 한 상을 두고 따뜻한 밥을 먹었다.


내내 잊히지 않는다. 외할머니의 말씀이 , "물건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정으로 사는 거다"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그게 통할까? 얼마나?



외할머니는 내가 중3 때 돌아가셨다. 평생 고운 한복을 입으셨고 비녀를 찌르고 다니셨다. 파마 한 번 하지 않으시고 긴 머리를 유지하셨다. 그리고 정갈한 성품에 채식주의자셨다. 그리고 누구보다 손녀를 아끼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골동 반지를 선물로 주셨다. 당신이 끼시던 걸 주셨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반지가 끼고 싶어 질 때 사용하라고 아끼시던 물건을 넘겨주신 거다.

돌아가셨을 때 난 많이 울었고 외할머니는 나에게 엄마처럼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러브레터가 많은 것도 외할머니의 유전인 듯하다. 외할머니가 편지를 많이 써주셨다.

흔치 않은 외할머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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