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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pr 08. 2022

배보다 마음을 채우는 식사

내가 자랄 때는 늘 밥상머리 교육이 있었다. 집안에서 가장 어르신이 밥 숟가락을 들면 그때부터 밥을 먹었다. 할머니 댁을 가면 늘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어린 시절 난 그게 너무 엄격해서 내 숟가락이 들려지는 순간, 아마 내가 찜한 반찬이 사라지는 광경을 보면서 속으론 맘이 급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어르신들은 절대로 맛있는 반찬은 먼저 드시지 않으셨다. 예를 들면 고등어자반이나 조기 한 마리도 손자나 손녀 먹으라고 절대로 손에 대지 않으셨다. 그렇게 밥상머리 교육이 끝나면 밥을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밥은 배보다 마음을 채우는 식사였던 것 같다.


한국적인 식사는 밥 먹을 때는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집과 밥을 먹으면서 말을 많이 하는 집이 있는데 우리 집은 후자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식사 때 늘 당신이 겪었던 어려운 일들을 이야기하셨고 그럼 제일 큰 아버지께서는 잠시 숟가락을 놓으시고 경청을 하셨다. 그럼 할머니는 "아이고 애들 밥도 못 먹게 왜 또 그런 이야기를 해요?" 하시면서 퉁을 주셨지만 할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도 다 교육이야"하시면서 꼭 한 자락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가며 먹는 밥은 늘 스토리가 있었고 시간은 금방 갔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지금 생각하면 밥이라는 것은 그저 한 끼를 때우는 게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날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묻는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그때가 그리운 것은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나도 본격적으로 할머니 댁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다. 나야 뭐 말단이니 설거지를 시작했는데 음식 맛을 보려는 단계에 가려면 멀었었다. 그래서 늘 음식 냄새를 맡고서는 먼저 허기를 느껴야 하는 고통이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서 밥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마 그때 정의를 내린 것 같다.


여자들만 밥을 하는 게 아니었다. 할머니는 5형제 남자만 내리 키우셨지만 아들들이 다 음식을 잘한다. 어느 순간이라도 뭐든 잘해야 한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철학이 있어서 아빠도 밥과 반찬을 곧잘 하신다. 오히려 엄마가 못하셨다. 막내 외동딸로 자라시면서 그냥 정말 그냥 시집을 오신 탓에 음식 시월드를 겪으셨다. 



지금은 나 혼자 서울 생활을 하고 있다. 엄마는 늘 똑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밥 챙겨 먹어라. 길 조심해라. 사람 조심해라. 뻔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절대로 뻔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 세 가지는 중요하다. 최근에 감기 몸살로 너무 힘들었다. 지금도 아프다. 내가 왜 이렇게 아플까 생각하니 집밥을 소홀하게 해서 그런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기가 걸렸을 때는 엄마가 해 준 잣죽이면 금세 회복이 되었었는데 지금은 귀찮으니 분식으로 때우고 음료로 배를 채우니 감기가 화가 났는지 분리가 되지 않는다.

난 그래서 결심을 했다.



이제는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맘을 채우는 식사를 해야지. 난 우울하거나 슬프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 허기를 먹는 것으로 채워서 힘들다고 하는데 난 입맛이 없어서 더 먹지를 못한다. 하지만 난 정반대이다. 그래서 더 먹는 것이 줄어든다.

허기가 지면 그냥 물만 먹는다. 물이 제일 맛있다. 최근 내 몸살과 감기는 마음의 허기짐 때문인듯하다.



그래서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비워내고 내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반찬을 들려놓고 다시 일상 회복을 꿈꾸었다.

엄마의 잣죽까지는 아니더라도 김치죽이라도 먹을 수 있게 말이다.

밥이란 그저 한 숟가락으로 때울 수 있지만 이제는 때우는 게 아니라 넣는 것으로 그것도 차곡차곡 넣는 것으로 살려고 한다. 마음의 허기짐을 제일 싫어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결국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식사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엄마는 결국 가족들의 식사에 마음을 채우는 식사를 준비하셨던 거다. 그래서 별 반찬이 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웃을 수 있었던 거다. 뒤늦은 깨달음에 엄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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