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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pr 19. 2022

내 영혼의 수프 닭죽

요즘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가 지금은 거의 다 낳았다. 하지만 또 아프다. 이번에 목감기다. 나이 탓을 하고 있다. 병원에 갔더니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음성이면 진료를 해주겠다고 해서 검사를 하고 음성 판정을 받고서 여태 아팠던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가벼운 증상이 아니었다. 심하게 부었단다. 



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원래 열을 동반하는 감기 증상이긴 한데 고열이면 응급실이라도 가라고 약을 많이 주셨다. 입맛도 없고 뭘 먹어야 잘 먹었다 할까 하다가 갑자기 닭죽이 먹고 싶었다. 내 손으로 먹기는 귀찮아서 근처 본죽에 가서 닭죽을 먹었다. 난 본죽에 나오는 죽은 다 먹지 못한다. 그래서 늘 절반은 포장을 한다. 사실 거기에서도 절반을 남긴다. 어쩌겠는가. 혹독한 다이어트의 결과인 것을. 



고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죽을 먹으라면 야채죽도 있고 잣죽도 있는데 고기가 들어가는 죽이라면 닭죽을 먹는 편이다. 내가 사는 고향에는 수탉을 풀어 키워서 꽤 비싼 값에 파는 집이 있다. 그래서 집안에 누가 아프면 부모님은 특별히 그 집에 전화를 해서 보러 가겠다고 말씀을 하시고 자리를 비우셨다.


한 번은 엄마와 아빠 따라갔는데 닭이 타조인 줄 알았다. 얼마나 큰지 "저게 닭이라고?" 물으니 엄마는 "응, 풀어놓고 키우고 하니 저렇게 크지, 그리고 먹기에도 좋고 비싸서 그렇지" 난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얼마나 큰지 난 하늘 높이 나는 것을 보고 "엄마 담장을 넘겠어"라고 말하자 엄마는 "그렇게는 못하지만 일반 닭들보다는 높이 날지 그렇지?" 난 "응 엄청" 한참을 보고 있는데 주인아저씨는 "여기 닭들 건강하고 아마 못해도 너보다 세배는 높이 날 거다" 하시며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셨다. 난 "그러게요, 진짜 좋은데요"라고 나도 웃었다.

난 그렇게 닭을 보고 아저씨는 우리가 사겠다고 한 닭을 손을 봐서 먹기 좋게 주셨다.



엄마는 집에 있는 작은 가마솥에 넣어서 죽을 끓여 주셨다. 그날은 닭죽을 먹는 날이었다. 엄마는 마늘도 참 많이 넣으셨다. 알싸한 마늘도 그렇게 먹으면 그리 맵지 않았다. 맹탕인 듯해도 닭죽은 약간의 맛소금만 넣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아빠는"역시 값을 하네 여보, 닭이 실해, 값이 나가서 그렇지"

엄마는 "애들이 아파서 그렇지, 시장에 가면 싼데" 하고 말씀을 이어나가시다가 "하긴 이럴 때 먹는 거지"하시며 당신도 한 그릇에 더 한 그릇을 드셨다.


우리는 둘러앉아 아무 소리 없이 먹고 엄마와 아빠는 닭다리를 자식들에게 양보하고 그 뜨거운 다리를 엄마는 손으로 뜯어가며 우리에게 주시고는 "아프지 말아" 하시고 우리가 먹으면 므흣한 미소를 보이셨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겠지 한다. 


후후 불어가면서 먹는 닭죽은 엄마의 정성과 아빠의 노력으로 그렇게 한 그릇을 땀과 함께 쏟아 내면 감기도 쑥 들어갔다. 그렇게 먹는 닭은 많이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엄마는 다 먹지 못한 닭죽을 다시 끓여서 그다음 날도 주셨고 아빠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시며 마지막에는 누룽지로 피날레를 장식하면 우리들에게 왕년에 숟가락을 어떻게 쓰셨는지 자랑을 하셨다. 


우리는 깔깔 웃으며 "아빠 이러다 가마솥 구멍 나겠어" 하면서 웃었고 여동생은 "아빠 숟가락 굽었어.ㅋ" 하면서 웃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웃음과 감동을 준 닭죽은 따뜻했다.



죽집에 가면 늘 그 생각이 난다. 같이 먹었던 그 생각. 그래서 난 닭죽을 시켰다. 그리고 한 술 한 술 뜨면서 기억에 먹은 그 맛은 아니지만 먹어야 또 내일이 있고 아니 당장 오늘을 버티는 거니 먹자, 하고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으며 먹는다.


아프면 귀신같이 해주시던 엄마의 닭죽은 내 영혼의 수프이다.

집에 가면 엄마에게 귀여운 애교로 해 달라고 해야지, "엄마 닭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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