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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pr 22. 2022

보증금 200만원

대학교 2학년 때 옥탑방 보증금 200만 원이었다. 이 돈을 모으려고 엄청 노력했다. 중간에 한 번의 휴학이 있어서 난 기숙사를 나와야 했다. 그래서 결국은 주거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 집은 완전 방목이다. 그런데 심한 방목이다. 그래서 난 가끔 우리 엄마 아빠가 진짜 맞을까를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이 부모들은 방을 구하게 되면 돈을 먼저 물어보는 게 맞지 않은가, 그런데 답은 "알았다"였다.

이런 난 하는 수 없이 대학 수업을 마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했다. 친구들은 과외를 해서 바짝 벌어야 한다고 했지만 내 스타일이 남의 집에 가서 뭔가를 가르치는 건 아니라서 그냥 편의점을 선택했다.


앞선 브런치에서도 적었지만 각종 진상들을 만나면서 정말 돈을 버는 게 장난이 아니다, 를 경험하고서 언젠가는 그만두어야지가 내 목표 보증금 이백에 내 용돈이 모이면이었다. 난 정말 바쁘게 살았다. 학교 조별과제도 친구들에게 미안했지만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미안하다고 편의를 부탁했고 그렇게 어떻게 끝난지도 모르는 숙제를 마치고 새벽 2시까지 일하고 겨우 눈을 붙이고 나면 고시원에서 좀비처럼 나와서 다시 학교로 가고 그렇게 돈을 모으는데 약 5개월이 걸렸다.



처음 집을 구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집을 전혀 구한 경험도 없었고. 결국은 신촌에서 작은 월세를 살고 있는 친구에게 부탁했다. 친구는 잘 생각했다며 여자 혼자 구한다고 하면 돈을 웃돈을 부를 수 있다며 같이 다니자고 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다녔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그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난 원망스러웠다. 아무 곳이나 들어간 부동산에서는 우리 둘의 관계를 물었다.


친구는 "네 저희 남매입니다"라고 거짓말로 에둘러 말했다. 난 속으로 '왜 그러지?' 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빨리 집을 구해야지 하는데 중개인은 보증금이 얼마 있냐고 물었다.

난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이백만 원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뭐 따질겄도 없이 "옥탑이나 지하네요"라고 말해주셨다.

난 "그럼 옥탑으로 할게요"

그렇게 우리는 주야장천 옥탑만 보러 다녔다.



친구는 여자 혼자 옥탑 살면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어차피 잠만 잘 것 같다며 난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어떻게 구해진 집, 난 세간살이 용품을 사서 시작했다.

먼저 월세를 산 친구는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뭐가 필요한지 적어서 사는데 도움을 주었고 나에게 혼자 살면 불편한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난 알겠다 하고는 "괜히 밤에는 무서울까?"하고 물었더니 친구는 "그런 생각 들면 집에 못 있어" 하면서 단칼에 끝냈다.

결국 우리는 하루 종일 밤이 어둑 해질 때까지 방에 뭔가를 채워 넣고 그래도 입주라고 집 근처 짜장면 집에서 간단하게 짜장면 두 그릇에 탕수육을 먹었다.



그렇게 집을 구하고 그해 여름에 엄마는 서울에 오셨고, 집을 보시더니 생각보다 괜찮다 하시며 내게 잘 구했다며 칭찬을 하셨다. 난 물었다.

"아니 엄마 왜 돈을 안 물어보셨어?"

엄마의 답은 심플했다."이렇게 구했잖아"

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강하게 키우는 게 우리 집 스타일이니 더는 묻지 않았다.


오신 날부터 엄마는 정말 단잠을 주무셨다. 항상 서울에 오면 친척집에서 주무시거나 아니면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셨는데 딸 집이라고 편하게 잤다시며 주무시고는 근처 재래시장에서 뭔가를 한껏 사셔서 냉장고를 채워놓고 가셨다. 엄마는 가시면서 "미안하다 엄마가 때로는 너무 강하게 키워서"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보면서 나도 따라 눈물이 났지만 "아니 괜찮아 지금 이렇게 살잖아" 라며 웃었다.

엄마는 지금도 서울행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꼽으라면 그때를 꼽으신다.

옥탑에 번거로운 집이었지만 딸이 장만해서 살았던 그 집에서 단잠을 자며 하루를 보냈던 그 시간을 기억에 고이 간직하고 계신다. 그래서 늘 말씀하신다. "그때 말이야, 꿈이 생각나지 않고 그냥 그 분위기가 아주 따뜻했어"라고 말씀하신다. 난 "더웠어"라고 말하면 엄마는 "아니야 아니야, 따뜻했어"라고 말씀하신다.



보증금 이백만 원으로 난 10개월을 살고 다시 기숙사로 들어갔다. 친구들은 옥탑방에 살아서 좋았겠다와 난 죽어도 못 산다와 갈렸지만 난 상관없었다. 모든 것은 다 경험이니 , 결국은 난 또 하나의 지혜를 얻은 셈이었다. 뭐든 경험은 버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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