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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pr 27. 2022

로또 같은 엄마

사람들마다 로또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르다. 난 내 인생에 로또라면 아마도 엄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사연 없는 사람 없고 눈물 없는 사람 없듯이 내겐 좀 특별한 엄마가 로또이다.


엄마가 이 글을 보신다면 "아이고 무슨 글을 이렇게 쓰니?" 하시겠지만 사실이다.

난 태어날 때부터 장협착증으로 태어났고 시골의사들은 그냥 장염이라고 6개월을 전전하게 했다. 그러다 엄마는 서울대학교 병원에 가서야 장협착증이라는 걸 아셨고 당신의 몸무게가 10킬로가 감량이 될 정도로 내가 엄마를 괴롭혔다. 그래 이제 엄마가 왜 로또인지 써야겠다.



너무 왜소해서 수술을 할 수 없어서 난 그 비싼 영양제를 맞아가며 몸집을 키워서 수술을 했어야 했다. 그때는 의료 보험도 안되고 해서 결국은 엄마는 결혼 때 받은 반지며 목걸이 다 팔아서 나를 살리셨고 문제는 수술 당일에 터졌다고 한다. 내 수술에 수혈이 당장 필요했는데 난 엄마와 같은 혈액형이다. 그래서 엄마는 내 수술대 바로 옆에서 1.5리터 4병을 수혈을 해 주셨다.



아찔한 현기증을 참아가며 무조건 아이는 살려야 한 다시며 엄마는 실신 직전까지 나를 살리셨고 외할머니는 "손녀도 중요하지만 사돈 내 딸도 중요합니다" 하시며 외할머니의 한숨은 땅이 꺼져라 내쉬셨다고 한다. 어쨌든 난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서 살았고 그 후로도 난 많은 수술을 해서 결국은 엄마는 미신을 믿는 사람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시어머니가 용한 무당이 있다고 가자고 부추긴 곳에서 엄마는 "제 딸이 너무 아프고 수술이 많이 하는데 어쩌죠?"라고 물으니 용한 무당은 "부적을 태워서 물에 담갔다가 드세요"라는 말을 들으셨단다. 그래서 결국 엄마는 날을 잡아 부적을 태워서 그 물을 다 드시고 매일 물을 떠서 기도를 하셨다. 물론 할머니도, 내가 퇴원한 날은 할머니 댁에서 소를 잡아서 동네잔치를 하셨다.



엄마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하셨다. "네가 퇴원하고 특히 할아버지가 우리 큰 소녀 퇴원했다. 집에 가자 하시면서 얼마나 우셨는지 몰라, 알지? 손녀 사랑 특별하신 거" 그렇다. 내리 손자만 8명인 집에서 달랑 우리 집만 손녀라 늘 손녀사랑이 각별하시다.



그래서 늘 내가 어렸을 때는 "우리 손녀 왔나" 하시며 주머니는 빵빵하게 뭔가를 넣으셨고 하나씩 하나씩 꺼내 주셨는데 사탕에 과자에 요술주머니였다.

할머니는 "아니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요?"라고 물으시면 "이 아까운걸 어떻게 먹어, 손녀 줘야지" 하시며 받아치시면 할머니는 "아이고 손녀가 아니라 공주네"라고 약간 서운해하셨다.



그렇게 엄마는 나를 키우시고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위암판정을 받으셨다. 자식들 모르게 입원하려고 했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가, 결국 난 엄마라는 존재는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했고 그때서야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화가 났다.



그 화는 아빠에 대한 화가 아니라 나에 대한 화였다. 단순히 효도를 못했다는 화가 아니라, 왜 이제야 알았지?라는 화였다.

엄마는 자식이 아니라면 받지 않아도 될 여러 가지 의술을 받으셨고 결국은 우울증도 앓으셨다. 하지만 역시나 자식 때문에 견디셨다.



이러니 어찌 내겐 로또가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로또가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는 것은 전생에 원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 갚으며 살라고 부모와 자식으로 만난다는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동 대, 아동문제가 나오면 옛말이 틀리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난  내 부모님에 대해서 존경을 표한다. 사람들은 그럼 묻겠지? 아빠는 로또 아니야? 아빠는 엄마와 부부 일심동체이니 물어서 뭣 하겠는가?



하지만 난 아직도 아빠를 이해 못 하는 게 있다. 무뚝뚝한 성격에서 밝은 성격으로 바뀐 아빠는 엄마를 위해 산다고 하시면서 때로는 엄마를 외롭게 하는 것 같아서 싫다. 엄마는 부부가 다 좋을 순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난 그럴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지만 의무가 되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난 두 분에게 늘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살라고 말한다.



그럼 아빠는 그러신다. "사람이 처음처럼 살면 좋은데 매번 어떻게 그러냐?"라고 퉁을 주시면 아빠도 그냥 남자구나 한다.



누가 내게 다음 생에 태어나면 뭐로 태어나고 싶어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바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고 또 한 번은 "아니 환생은 싫어"라고 했다. 그냥 쌓은 화와 실이 많아서 아마 환생이 될 것 같은데 글쎄, 내가 엄마의 딸로 다시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으니 장담은 못하겠는데 만약 엄마가 내 딸이고 내가 엄마라면 엄마처럼 나를 이렇게 키워낼 수 있을까?



자신 없다. 로또 같은 엄마, 정말 자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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