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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pr 28. 2022

월급 54만 원

통닭집 아르바이트하면서 느낀 점

중학교는 집에서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철저한 기숙사였다. 그냥 난 공부를 열심히 한 그냥 평범한 스트레이트 타입의 학생이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무리 없으면 제일 좋은 대학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난 대학이 문제가 아니라 문학이 너무 하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 내가 꿈을 문학으로 정한 건 중학교 2학년 국문학자라는 단어를 보고서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남들은 영어사전을 들고 다니는데 난 국어사전도 들고 다녔다. 물론 그렇다고 문법이나 어휘가 정확했느냐 아니다. 전혀, 그래서 친구들은 사서 고생한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 박완서 선생님을 보기 위해서 주말에는 수업을 빼기도 했고 각종 대학에서 주체하는 문예 경시대회에 참여하느라 토요일 수업은 거의 빠졌다. 어떤 학교는 수상을 하기도 했고 어떤 학교는 떨어졌다. 담임 선생님은 내게 뜨거운 집념을 가지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신 분이었다.



감사하다, 그래서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 번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어떤 작품을 읽게 되면 그 작품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 작품의 시대를 살 수 없다면 비슷한 경험을 해 봐라,라고 말씀을 하셨다. 난 처음에는 흘려들었다. 뭐 뻔한 이야기 아니야?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직격탄으로 맞은 건 대학을 가서였다.


그날 <현진건, 운수 좋은 날> 작품을 하는데 교수님의 열강이 있었다. 난 비운의 작품이다라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교수님이 내게 질문을 했다.

"자네는 뭘 깨달았는가?"

난 너무 당황스러워서 "슬펐습니다"

교수님은 연이어" 설렁탕 한 그릇 팔아봤는가?"

난"아니요"

교수님은"이 간절함이 뭔지 알겠는가?"

난 "조금은.."


교수님은 "자.. 문학이란 그 간절함을 붙들고 살아야 하고 여러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집안 사정으로 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을 밑천으로 해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만약 시장에서 국밥 한 그릇도 팔아보지 않았다면 현진건의 작품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본다. 문학은 이론이 전부가 아니다."

정말 명언이었다.


그래서 난 결심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학교 근처에는 통닭집이 많았다. 다른 학교와는 달리 컨츄리 하다.

그래서 결국 어렵게 합격을 하고 열심히 통닭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 나름대로 그때그때 느낌을 적어가면서 6개월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기를 마쳤다.



통닭집 아르바이트하면서 난 기름 냄새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고 벨소리만 들어도 기겁을 했다. 밀려드는 주문에 다 암기가 안되었고 잘못 적어서 꼬이는 스텝을 잡아서 헤매는 걸 잡아서 하느라, 거의 1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주인도 아마 나를 채용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나와 함께한 베테랑 아르바이트생은 통닭집만 했다는데 정말 능수능란했다. 그 친구 덕분에 난 많은 것을 배웠고 나중에는 뒤처리까지 빨리 마칠 수 있었다.



가장 어려웠던 건 테이블마다 부르는 맥주인데 맥주를 잔에 거품을 맞춰서 나가야 하는데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어서 이 점이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난 늘 옆에서 눈치껏 배웠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세상 쉬운 게 어디 있겠는가.



결국은 난 여러 번의 실패를 하고 주인은 내게 옆 친구를 보고 배우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연습을 물로 했다. 쉬는 날도 있었지만 집에서 연습을 하고 맥주를 마시며 세상 참 어렵다며 예전 외할머니의 말씀이 명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지갑에서 돈 빼오는 게 그리 쉽나" 난 외할머니의 이런 직설적인 이야기가 싫었다. 알고는 있는데 이런 직설적인 것이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할머니 그냥 순화해서 말씀하시면 안 될까?"라고 다시 물으면 외할머니는 "뭐든 알 것은 바로 알고 똑똑히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라고 다시 이야기를 하셨다.



나도 안다, 돈을 벌기 어렵다는 걸, 참 그래도 그렇지. 하지만 그 귀한 말씀을 그때 다시 생각하니 참 틀린 말은 아니네, 라는 생각을 하고 난 어쩌다 친구들이 오면 잠시 인사를 나누고 "많이 먹어, 매출 좀" 하면서 웃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너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냐?"라고 물었고 난 "할 수 있는 시간까지"라고 했다. 그랬다. 내게는 시간이 많은 아르바이트였다. 공부와 같이 하느라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한도전이었다. 으니 했지 지금 하라고 하면 글쎄..라고 망설여지는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관찰했고 치킨집의 빌런들도 많이 만났다.


빌런들은 다양한 모습이었다. 최악의 빌런은 치킨 한 마리를 시키고 몇 조각 안 남기고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돈을 내지 않은 빌런이었다. 사람 하는 일에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처음이 아니고 두 번째에서 그렇게 했다. 결국 cctv를 돌려 봐야 하는 상황까지 , 자기가 실수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촌극이 벌어졌고 다시는 우리 통닭집에 오지 않았다.


그다음 빌런은 좀 웃겼는데 돈을 다 지불했다. 그런데 자기가 먹은 게 그림판과 달랐다고 깎아 달라는 사람이었다. 처음에 난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다시 물어봤고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아니 저기 그림이랑 닭의 크기가 달랐어요"라고 하는데 난 순간 멍해서 이를 어쩌지 하고 당황하는데 베테랑 아르바이트생이 주인을 불러서 해결을 했다. 결국 갑인 손님에게 돈을 깎아주고 마무리를 했지만 그 이후 소문이 나서 자꾸 깎아 달라는 사람이 생겨서 <상기 이미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계산대에 적어 놓아야 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었다.



자, 그럼 내가 그 설렁탕을 이해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아주 조금은 이해했다. 돈의 가치를 조금은 알았다. 벌기는 힘들고 쓰기는 쉬운 돈이라는 걸 알았고 원래 돈이라는 것이 벌기는 힘들다는 건 알았지만 빌런들을 상대하면서 내 안에서 유혹이 많았다,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 하지만 난 끝까지 이겨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유명한 대사 < 왜 먹질 못하니!>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렇게 마친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는 한 달 월급은 54만 원, 난 아끼고 아껴서 내가 보고 싶은 책도 사고 원고지도 사고 연필도 사서 쓰면서 설렁탕은 아니었지만 학교 후문에서 파는 오징어 볶음을 사 먹으며 그렇게 살았다. 나중에 그만둘 때는 절대로 통닭은 먹지 않겠다고 했지만 무슨 지금도 먹고 있는 게 통닭이다.

인생은 버릴 게 없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난 그 이후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했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경험이 곧 돈이고 내가 더 문학을 사랑할 수 있다,라고 어설픈 결론을 내렸다.

친구들은 내게 "너 일했던 곳 지금도 맛있더라" 하면서 축하를 해줬고 난 그 이후로 가끔 학교를 가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치킨집이 고맙다.

뭐든 버릴 것이 없는 경험은 내게 보이지 않은 돈이 되고 자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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