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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May 20. 2022

여름의 맛, 콩국수

할머니께서 어제 서울로 오셨다. 집안에 잔치가 있단다. 하긴 연세도 있으신데 오신걸 보니 오랜 인연이 있으신 듯했다.


하지만 난 참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다. 할머니는 고향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시다가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시며 모든 농사를 접으시고는 간단한 먹거리만 하시고 이제는 조금은 여유를 가지셨다.



그래도 늘 봄에는 바쁘시다. 딱 가족들 먹을 것은 직접 해야 한다, 라는 할머니의 철칙은 큰 아버지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할머니의 전화를 받은 건 아침 8시가 넘어서였다. 할머니는 폰 사용이 간단하다. 문자. 전화. 사진. 이 딱 세가지만 사용하신다.


처음에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집에 전화기가 있는데 이게 왜 필요하냐며 우기시다가 가족들이 걱정이 된다고 완강하게 하게 하자 결국은 얼떨결에 샀는데 이용방법이 까다롭자 할머니는 화를 내시면서 "나는 그냥 전화와 문자만 하면 된다" 하시면서 큰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방법을 메모지에 적어 두셨다가 외우셔서 겨우 쓰시고 계신다.



진동이 왔다, 할머니다.

"응 나다"

"어 할머니?"


할머니는 쾌청하신 목소리로 "여기 서울역이다. 마중 좀 와라"

난 "갑자기?"


할머니는 "뭐가 갑자기여, 할머니가 오라면 올 것이지"

난 "알겠어요"

참 난감하다. 결국 난 급하게 버스를 타고 갔다. 가는데만 40분이 걸렸다. 한복을 입고 오신 할머니, "할머니"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그래 여기다 "


난 "뭐하러 오신겨?"

할머니는 "뭐하러 오긴, 잔치가 있잖아. 그리고 겸해 놀러 온 것이지"

난 "그려"

할머니는 "밥은 먹었어?"

난"아니"


할머니는 "그래? 그럼 밥을 먹을까?"

난 식사도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에 "드시고 싶은 건 있고?"

할머니는 "이 여름 시작에는 콩국수지"

난 "갑자기 콩국수?"


할머니는 "갑자기는 무슨, 너 어렸을 때 할미가 얼마나 해줬는데 하여튼 그 공부 머리는 신기 혀. 잘 기억을 못 하는데 점수는 좋고."


깔깔 웃으시는 할머니를 두고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인데 갑자기 할머니는 "인사동이 멀어?"

난 "인사동은.. 지하철이면 좀 가야 하는데.. 왜?"


할머니는 "아니 앞집 용식이네가 갔다 왔는데 자랑을 그렇게 해, 내가 이것저것 물었거든 얼마나 잘난 척을 하던지 얼마나 샘이 나는가. 그래서 내가 한 번 갔다 오고 싶은 거지. 이때 아니면 또 언제 가봐. 나 가보고 싶은데. 나 구경시켜줘"


이런 할머니의 욕심이 나를 이끌었다. 난 결국 할머니를 모시고 택시를 타야 했다.

연세가 높으셔 지하철은 무리일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잔소리를 택시에서도 하셨다.


"아니 멀쩡한 지하철을 두고 왜 택시여?"

난 "힘들어 거기까지 가기는"


할머니는 "넌 참 가만히 보면 엄마 아빠는 성실하고 돈을 잘 모으는데 넌 아녀"

난 또 시작이라는 생각에 "할머니 여기 택시"


할머니는 바깥 풍경을 보시며 "아휴 사람 많다. 내가 이래서 서울이 싫은겨"

그렇게 어렵게 간 인사동에는 사람이 많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지도를 검색해서 들어 간 콩국수 전문점에서 음식을 기다렸다.



할머니는 가격을 보시고는 "아니 국수가 왜 이리 비싸?"

난 "서울 물가가 그렇지"


할머니는 "아니 그냥 밀면 국수인데 왜 비싼겨?"

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할머니 여기 서울이라서 할머니 댁 생각하면 대입이 아니야"

할머니는 "그래 일단 먹어보자, 얼마나 맛있으면 저 금액인지"


그렇게 할머니와 동네에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기다리던 콩국수가 나왔다.


할머니는 첫 입을 드시더니 "아이고 이거 무슨 물이여?"

난 "왜?"


할머니는 "이거 그냥 면이네, 수타가 아니네"

난 "어떻게 아셔?"

할머니는 " 육수가 엉망이여"


난 짙은 한숨을 하고 "할머니 다 따지면 못 드셔. 그리고 음식점이 다 그렇지. 여기 그래도 평점이 높아"

할머니는 "평점?, 그게 뭔데?"


난 "그러니까 사람들이 먹어보고 좋습니다. 해서 만점이 5점인데 여기가 4.5점이야"


할머니는 깔깔 웃으시며 "서울 사람들이 촌사람들 보다 인심이 좋네, 이게 어찌 4.5점이냐?"

그렇게 난 국수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었고 계산을 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전통 찻집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수정과 차를 드시며 "아니 그런데 너는 이렇게 놀 거야?"

난 "아니 노는 게 아니라 쉬는 거"


할머니는 "돈도 못 벌고 아이고 모르겠다. 내 자식도 아니고 하니 잔소리도 못하고"

난 "할머니 돈 나와"

할머니는 놀라시며"뭐 노는데 돈이 나온다고?"

난 "응"


할머니는 "공부를 그렇게 해가지고 들어가더구먼 좋긴 좋네"

난 갑자기 궁금했다. 그 콩국수가 왜 맘에 안 드셨는지


"할머니 콩국수가 왜 맘에 안 든겨?"

할머니는 "콩국수가 콩이 우리나라 콩이 아닌 것 같아."


"난 여태 우리나라 콩으로 했잖아. 그래서 그 향을 아는데 내가 아는 향이 아닌가. 그래서 난 알았지. 이게 아니구나.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맛있었다.역시 남이 사주는 음식이 맛있다고 하더만. 손녀가 사주니 맛은 좋더라. "

난 깔깔 웃었다.


할머니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여름의 시작은 콩국수지, 내가 네 나이 때만 해도 콩국수 먹겠다고 육수 우리고 옆에서 어머니 반죽 밀면 그날은 배 터지게 먹었다.


사람은 다 때가 있듯이 음식도 때가 있는 게야. 논다고 안 먹고 하지 말고 먹어"

난 "알겠어"



할머니와의 수다를 하고 할머니의 목적지까지 배웅을 하고 난 돌아설 수 있었다.

할머니의 부탁이 있으셨다.


"밥 굶지 말어. 그리고 다 때가 있어."


 "사람은 때에 맞게 먹고살아야 해, 괜히 살 뺀다고 먹지 않고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어 알겠지?"

난 "응"



할머니와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 길 , 글쎄.. 난 때에 맞게 살아 본 적이 있는가를 생각했다. 그냥 흘러가는구나 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길도 저길도 그렇게 가는 거지라고 살아서 일 년을 후루룩 국수 먹듯이 먹어서 늘 다이어리에는 또 이렇게 간다,라고 적었던 것 같다.


할머니 말씀처럼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 많은 할머니는 결국 인사동에서 사진을 마구마구 찍으셨다.


아마 용식이 할머니에게 자랑을 엄청 하실 거다. 난 알고 있다. 우리 할머니는 흥도 많지만 정도 많다는 걸, 그래서 그 용식이 할머니 때문에 떡도 샀다는 걸.


인사동에서 차도 팔았지만 떡도 팔았다. 할머니는 평소 떡을 정말 좋아하셔서 당신 스스로 만들어 드시는데 갑자기 떡을 사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언제는 떡은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더니?"

할머니는"내가 서울 온걸 이렇게 확인시켜야지"


난 깔깔 웃었다. 그렇게 서울 주소가 찍힌 떡을 들고서는 할머니는 한복을 입고 잔치에 가셨다.

아마 댁에 가시면 그러시겠지, "인사동 별것 없던데?"

우리 할머니는 쿨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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