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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n 03. 2022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혹시 이 노래 기억하시는 분 있으신가요? 저는 이 노래 초등학교 시절 많이 불렀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쉬는 시간이면 마루 바닥에 앉아서 친구들과 둘러앉아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캐릭터를 말하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다 같이 둘러앉아 박수를 치며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부르면 오른쪽부터 한 명씩 "나는 @@입니다" 이렇게요. 제가 불렀다면 "나는 딸기입니다" 이런 식이죠. 그런데 잠시 멈추거나 캐릭터가 겹치면 인디언밥을 하고 등을 내어주어야 했습니다.


요즘 전 이 노래가 이렇게 무서운 노래인지 몰랐습니다. 물론 늘 전 제가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하지만 답을 찾기가 어렵네요. 인간이란 늘 본성이란 있을까? 에 대해서 궁금해 왔고 아직 전 정의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책인 스테판 에셀 책을 읽고 있기는 하지만 동양에서 보는 시각과 서양에서 보는 인간의 본성은 다르니 답을 찾는 건 제 몫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 그 본성을 찾고 제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데 제가 누구인지 가끔은 헷갈립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예전부터 학기 초가 되면 선생님께서 이름을 호명하실 때마다 전 늘 작은 목소리로 답을 했습니다. 그럼 다시 제 이름이 호명이 됩니다. 그럼 속으로 '차라리 크게 네라고 할 것을' 하고 후회를 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늦은 거죠. 잘 모르겠습니다. 이름이 흔한 것도 아니고 창피한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어색했는지 대학원을 가서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어쭙잖은 시를 쓴다고 했을 때도 주제는 늘 제가 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저를 서술하고 형용을 했습니다. 뼈아픈 추억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추억인데 왜 저는 저를 사랑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게 있는 완벽주의가 저를 힘들게 한다고 말합니다.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완벽이라는 단어는 상대적이니까요.

하지만 아주 틀린 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해도 전 모든 게 제자리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 부정할 수 없습니다.


누가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으면 말문이 막힙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아직도 정체성에 대해서 한 줄을 말하기 힘들다면 이건 제 문제인 듯합니다. 그래서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책에도 답은 없고 언젠가 자신을 구원하는 건 책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라는 걸 알았을 때 전 책에 부고라는 글자를 쓰고 박스를 사서 창고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애증의 대상이 되어 인생의 답이 되어 주지 못한 그 무엇이 되어 있을 때 전 마음을 가라 앉히고 다시 책을 열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일기를 매일 쓰고 책을 적어도 이틀에 한 권은 보리라 하고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아직도 당신은 누구입니까에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전 그냥 아마 누구의 장녀이고 누구의 손녀이고 누구의 직책이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답에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제가 브런치에 작가를 신청했으니 조건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다시 더 꼼꼼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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