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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n 23. 2022

지하상가 싸구려 립스틱  꼭 그래야 했어?

지하상가 싸구려 립스틱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난 지하상가를 자주 가지 않았지만 가끔 갔었다. 고향에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타려면 가야 했기에 버스 시간이 좀 남으면 눈 구경을 했다. 지하상가는 늘 그랬다. 천 원짜리 옷부터 비싸면 오천 원짜리 옷까지 , 사실 가볍다면 가볍고 어렵다면 어려원 돈으로 난 유혹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 지옥의 굴로 들어가지 않은 적이 더 많았다. 그 구멍은 아래로는 싸지만 위로는 백화점과 연결되어 있어서 철저한 자본주의의 굴이었다. 친구들과 어쩌다 가면 돈이 있는 친구는 백화점에서 그라탕을 먹었지만 난 그냥 빵을 사서 먹었다.


그런 나를 보는 친구는 "정말 돈이 없는 거야 입맛이 없는 거야?"라고 물었고 난 "둘 다"라고 쿨하게 말했다. 사실이니까. 그렇게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했다. 나도 집에 가야 했다. 짐을 다 고향으로 택배로 보내고 내 몸만 가면 되는 상황에 친구들과 같이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시간이 남아서 친구들은 지하상가 구경을 가자고 유혹을 했다. 난 남아서 책을 보겠다고 했지만 수적으로 난 밀려서 결국 가게 되었다.


여름이라 후끈한 지하상가에는 정말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난 그게 싫어서 "나 먼저 정류장으로 갈게" 하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친구들은 "야 이때 아니면 언제 보냐?" 하면서 나를 끌었다.

그리고 한 바퀴를 돌았을까? 그때 내 눈에 띈 건 립스틱이었다.


난 예뻐 보여 보는데 주인아주머니는 "어 학생?" 난 "네"

아주머니는 "이거 오천 원"

난 "네"

친구들은 "야 뭐해, 가자"

난 그래도 눈에 계속 들어오는 그 립스틱에 빠져서 "이거 깎아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이거 명품인데 여기서 팔아서 헐값이지"

난 "그래도.."라고 하고 흥정을 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시더니 "그래 좋아 그럼 오천 원에서 천 원 빼서... 사천 원"

난 "여기요" 하고 그렇게 립스틱을 샀다.

이유는 엄마를 드리고 싶었다.

평생 화장이라고는 안 하시는 엄마에게 드리고 싶었다.


친구들은 각자의 물품을 고르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계절에 맞지 않는 스카프를 샀고 어떤 친구는 먹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류장에 도착을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나에게 친구들은 뭘 샀냐고 물었다.

난 "립스틱"

친구들은 "너 화장 안 하잖아"

난"엄마 선물"

친구들은 "야 그건 백화점 가서 사야지"

난 "우리 엄마 그런 거 안 따져"

친구들은"하긴.. 그럼  뭐.." 하며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친구들과 헤어지고 버스를 탔다.


난 집에 도착을 하고 엄마는 마당을 나와 계셨다.

어렸을 때처럼 "엄마" 하고 뛰어갔고 엄마는 "왔어 딸" 하며 안아주셨다.

엄마는 내가 간다고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한광주리 사 두셨다.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엄마는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대학생활은 금방 지나가니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난 알겠다고 하고 엄마에게 선물이라며 꺼냈다.

엄마는 한껏 기대를 하셨다.

"짠"

그렇다. 엄마에게 드릴 립스틱이 모양은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돌리면 나와야 할 립스틱이 나오지 않았다. 딱 절반이었다. 난 이상해서 "엄마 잠깐만" 하면서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몰랐다.

아무리 다시 해도 립스틱이 온전하지 못했다.

그렇다, 그 립스틱은 딱 절반만 있는 어찌 보면 그냥 사기 립스틱이었다.


난 눈물이 났다. "엄마 미안해"

엄마는 "딸 좋은데?"

난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지하상가에서 산 이야기를 털어놨다.

엄마는 애써 눈물을 닦으시면서 자신이 쓰시는 립스틱을 보여주셨다.

"딸 이거 얼마인 줄 알아?"

난 눈물을 닦으며 "이거?"

엄마는 "응"

난 "몰라"

엄마는 "우리 5일장 하잖아 거기서 샀어., 5천 원. 그래도 잘만쓰는데 뭐 , 엄마가 우리 딸 산거 잘 쓸게"

엄마는 내가 마음을 다칠까 봐 환하게 웃어주셨고 난 죄송한 마음에 많이 울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으니 아빠는 집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고 상황을 들으신 아빠는 말없이 집 밖을 나갔다 오셨고 여동생은 "언니 좋은 거 샀네" 하며 나를 애써 위로해줬다.

그렇게 난 그 이후 절대 지하상가에서 립스틱을 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시간이 흘러 내가 돈을 벌고 사고할 수 있어서 엄마 화장품을 바꿔 드렸다. 여자라면 민감한 주름살 화장품과 립스틱도 좋다는 색감도 생각해서 사드렸다. 백화점은 비싸서 싫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난 그 옛날의 기억에 아픔을 벗어버리고 싶어서 더 챙겨 드리고 싶었다.

요즘 엄마는 어떤 화장품을 더 기억하고 계실까 싶다.

하지만 언제나 엄마는 자식이 사주는 것이라면 아끼신다. 그래서 나와 가끔 마찰이 있기는 하지만 선물이라고 드리면 늘 안 쓰거나 아끼셔서 내 잔소리가 들어가면 마지못해 쓰는 엄마를 보며 ,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곧 있으면 엄마가 좋아하는 7월이다. 엄마를 모시고 산에 가려고 한다. 엄마의 립스틱을 한 번 봐야겠다. 혹시 다 썼는데 싹싹 긁어 쓴다고 여전히 아끼고 계신 건 아닌지, 지난날의 기억은 아픔이지만 지금은 그 기억으로 더 챙겨드린다. 엄마와 난 친구처럼 같은 색상에 같은 브랜드를 좋아한다.

딸이 엄마를 닮은 건지 엄마가 딸을 생각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동지애를 가지는 건 우리 엄마와 나와의 의리이다.


@ 사진과 싸구려 립스틱과는 하등 관계가 없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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