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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n 24. 2022

올해 첫 수박 , 1인 가구에 수박이란

난 올해 첫 수박을 샀다. 많은 고민을 했다. 1인 가구에 수박이란 사치다. 나에게는 그렇다. 곧 죽어도 청소는 해야 하고 그러자니 수박은 껍질이 많은 과일 그래서 늘 "수박은 고향에서 먹어야지"라고 하고 사 먹는 것에 두려움을 가졌다. 하지만 내 본능과 욕망을 폭발하게 한건 수박주스 사건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이제 막 오픈한 한 프렌차이저에서 수박주스를 절반 가격으로 준다는 홍보물을 보여주고 있었다.


안 그래도 목은 마르고 이건 완전 땡큐다, 하고 난 날름 돈을 지불하고 받았다. 그리고 한입 하는데 이런 사기다, 아니 이건 말이 안 된다. 난 자고로 먹는 것에 장난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신조는 우리 집안에서 들어서 아니 할머니가 내게 가르친 교훈이다.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말아라" 그렇다. 그래서 난 라면을 끓여도 정성을 들이고 국그릇 하나에도 그냥 먹지 않는데 이런 수박주스는 색깔은 수박 색깔이다, 맛은 그냥 설탕이었다. 순간 따지고 싶었지만 내 성격에 따지는 건 아니고 '에잇 돈 버렸네' 순간 기분이 너무 나빴다. 그리고 난 큰 중앙시장으로 가서 대형마트를 들렸다.


쾅쾅 울리는 마이크로 아저씨는 "자 사세요 수박 사세요, 배달해 드립니다" 연신 거품을 물어가며 홍보를 하는데 내 눈은 수박에 꽂혔다. 어쩌지? 내적 갈등이 심하게 될 때 즈음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들이 수박을 두드려 보시며 구매를 하셨다. 나도 아는 척하며 둘러보는데 아저씨는 "아가씨 볼 것 없어요, 우리 이거 현지에서 직접 공수했어요" 하시는데 난 "네" 하고 다 죽어가는 소리로 그렇게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살까 말까' 망설였다. 결국 구입을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도착한 수박, 난 앗싸를 외쳐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막상 도착을 하니 매장에서 보다 더 크게 보였다. 한숨이 났다. 일단 난 편의점으로 가서 음식물쓰레기봉투 가장 큰 것을 샀다. 그리고 해체작업을 하자라는 심정으로 수박에 칼집을 내며 열심히 갈랐다. 씨들은 후드득 떨어지고 난감한 나는 괜히 산 걸 후회할 때 즈음 전화가 왔다. 엄마다 

"응 엄마"

엄마는 "뭐해?"

난 "수박을 샀는데 썰기가 힘드네"

엄마는"그거 다이소에 가면 팔아"

난"그래?'

엄마는"요즘 누가 그렇게 써니?ㅋㅋ"

난"어..."

하고 일단 급해서 "엄마 일단 수박을 다 자르고 정리하면 전화드릴게" 하고 급히 끊었다.

그렇게 수박과의 사투는 30여분이 걸리고 다 자른 단면들은 봉투로 직행, 깔끔하게 잘린 수박들은 락앤락 통에 들어가 냉장고로 직행 , 후련함과 뭔지 모를 승부욕에 난 기분이 들떴다.

올해 나의 첫 수박과의 만남이었다.





맛을 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힘들게 열었으니 목이 마를 때 먹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엄마와 다시 통화를 했다.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엄마는 "저녁은?"

난 "그냥 도시락"

엄마는"그러지 말고 엄마가 떡을 보낼 테니 그걸 먹어라"

난 "아냐"

엄마는 "쉰다고 하더니 영 아니네"

한숨이 꺼져라 쉬시더니 "수박은 먹어 봤어?"

난 "아직"

엄마는"그래 알겠다, 잘 자고 "

그렇게 전화는 마무리했다.


사실 수박은 내게 굉장히 친근한 과일이고 고마운 과일이다. 가난했던 시절에 수박은 우리 집에서는 떨이로 수박을 사 먹었다. 시골이기에 트럭에서 확성기를 튼 아저씨가 "세 덩이에 만원입니다" 하면 엄마는 날렵하게 가셔서 두드려 보고 맛보기를 드신 다음에 흥정을 하셔서 사 오셨다. 그럼 붉은색 목욕간에 물을 가득 채우시고는 수박을 넣으셨다. 그럼 수박은 둥둥 떠있고 아빠는 거기에 얼음을 부으셔서 "저녁 먹고 수박 먹으면 딱 좋겠다" 하셨다.

난 그렇게 3 덩이나 산 수박을 누가 다 먹어? 했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수박이라는 것이 껍질이 두꺼워 금방 먹었고 밥 대신 먹으라고 하면 먹을 수 있는 게 수박이었으니 결국은 엄마와 아빠는 장마 전과 후를 따져 수박을 고르셨다. 우리는 그렇게 야금야금 수박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생각해보면 여름 모기에 나방에 불을 쫓아다니는 벌레들 때문에 피부가 성할 날이 없었지만 그래도 들마루에서 수박을 먹으며 별이 반짝이는 걸 보면서 아빠에게 "아빠 저 별들은 나이가 몇 살이야?"라고 물으면 아빠는 그 지겨운 질문에 한 번도 싫으신 표정 없이 "글쎄다, 아마 몇 억년이지" 하셨다. 엄마는 그럼 백과사전을 가져오셔서 "책 찾아봐 , 여기 있지. 별이라는 목록 찾아서" 그렇게 우리 손에 들어온 백과사전은 모깃불 앞에서 연기와 함께 글은 함께 사라지면서 잠이 오는 눈으로 눈꺼풀은 무거워졌다.


수박은 그래서 우리 집을 단결시켰다. 하지만 지금 내게 1인 가구를 사는 내게는 사치의 과일이 되었다.

내가 게으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그냥 날로 먹으려고 한다고 할머니는 한동안 잔소리를 하셨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시면서 내게 늘 말씀하셨는데 수박 한 조각 먹겠다고 나 나름은 움직인걸 이렇게 '사투'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니 우리 할머니 말씀이 맞는 것 같다.


겸손해지자, 그리고 수박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 아직은 자연이 준 수박이 있음에 감사하자. 벌이 많이 사라졌다. 환경에 경고음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하니 또 수양록에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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