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몽접 Jun 21. 2022

명상을 하고 달라진 3가지

내가 명상을 한지는 꽤 되었다. 사실 명상이라고 명명을 할 수 있게 된 건 6개월이고 그 전에는 그냥 잡생각을 없애자라는 취지로 했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내가 사회에서 만난 인생 스승님께서 나에게 명상을 권하셨다. 내가 번잡한 질문을 하자, 선생님께서는 늘 이렇게 물어보신다. "그러니까 본질이 뭐지" 그렇다. 이분은 늘 "본질"이 가장 중요하시다. 그래서 "왜?"에 초점을 두시는데 내가 고민을 하면 그 "왜"가 중요하다. 결론이 중요하면 두고두고 생각하라고 하시고 아니다 싶으면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라고 하신다. 

그러다 이분과 주역 공부를 하게 되었다. 


점치는 주역이 아니라 그냥 정말 주역 공부를 하게 된다. 주역 시리즈 3권을 사서 야심 차게 공부를 하는데 이게 말이 쉽지 어렵다. 그래서 평일에 시간을 내서 같이 공부를 하는데 서로가 어려워서 헉헉 한다.

하지만 둘 다 끈기는 있어서 쉽게 포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공부가 끝나면 저녁 시간이다. 그러다 한 번은 선생님께서 "명상을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라고 하셨다.

난 "명상요?"

선생님은 "응"

난"그럼 저 잘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농담 아닌데"

난"아.. 네.."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져서 난 결국 퇴근을 하고 집에 가서 자기 전 명상을 하게 된다.

아무 소리도 켜지 않고 오롯하게 딱 30분의 명상을 하는데 처음에는 바깥 소음에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한 달이 조금 지나니 그 소리들이 들리지 않고 그냥 조용한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걸 체험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는 바르게 앉아서 제대로 해보자라는 심경으로 이리저리 리서치를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자기가 앉기 편한 자세로 하는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게 지금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엄마도 신기해 하셨지만 지금은 가족들 모두 나에게 잘 선택했다고 한다.


일단 내가 명상을 하면서 바뀐 게 크게 세 가지이다.

1. 말이 줄었다.

여기 브런치에 글을 적는데 이 글들은 말이 많은데 평소에는 말이 많이 줄었다. 예를 들면 미사여구가 줄었다. 그리고 할 말만 하고 더 이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아는 지인들은 "자기 요즘 말이 없어"라고 했었다. 남들은 어떻게 들릴지 몰라도 난 나름의 성과라고 생각했다. 처음 명상하면서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이 침묵이었다. 그럼 나름 소기의 성과를 누린 것이다. 명상을 하면 내 안의 나와 계속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통해서 계속하다 보면 맥이 끊기는 경우도 있고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그 경계가 있으니 말이 줄어든 것이다. 


2. 희로애락이 좀 줄었다.

예전에는 희로애락이 표정에 너무 표현이 그대로 여실했다면 이제는 그렇지는 않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그래서 기쁜 것도 슬픈 것도 그리 표정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명상을 하면서 속으로 '나를 숨기자' 했다. 평소에 나는 타인들에게 너무 드러난 카드였다. 어두운 날은 "자 친구 무슨 일 있네" 하는 얼굴로 다녔으니, 그게 싫었지만 나 자신을 다스릴 줄 몰랐으니 실패한 나이였다. 그래서 이것만큼은 바꾸고 싶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기쁘면 기쁘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오버액션은 없다.


3. 어떤 욕심이든 좀 줄었다.

글 욕심, 돈 욕심 , 먹고 싶은 욕심. 어떤 욕심이든 좀 줄었다. 그래서 난 나름 만족하고 있다. 명상하면서 난 나 자신을 내려놓기에 최대한 치중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집착이라는 단어에 해방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부처도 아니니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아직 얻지는 못했지만 노력 중이다.


명상을 왜 하냐고 물으면 결국 나를 위해서 하는 거다, 그래서 난 지금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 시간에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하겠지만 그냥 딱 30분 나를 위해 쏟는 그 이기적인 시간이 나를 많이 바꿔 놓았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할 생각이다.

명상이 명상으로 받아 들어지지 않고 일상이 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해 볼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24시간 심야식당은, 엄마의 식탁에 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