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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n 20. 2022

나의 24시간 심야식당은, 엄마의 식탁에 있다.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은 뭘까? 하고 생각해보니 그냥 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작은 생각을 했다. 행동 변경에 대한 범주를 좀 넓히기로 했다. 더위에 난 쥐약이지만 그래도 좀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넓은 반경으로 도서관을 다니고 책을 읽고 나름대로의 계획을 짰다.


그리고 지난주 난 집을 다녀왔다. 역시 집은 언제나 아늑하다.

엄마와 아빠는 더 시골로 들어가셨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분의 로망이었다. 가난하게 살 때는 그게 싫으셨는데 아들딸 결혼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할 때는 내 땅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밭을 일구시며 살고 싶다시며 아빠는 1년을 돌아보시며 작은 집을 지으셨고 엄마는 거기에 응수하시며 열심히 도우셨다.

아빠는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으셨다. 집을 설계하신 분은 아빠의 아시는 분이 하셨는데 평생 살 거라는 말을 여러 번 하셨어서 건설을 하신 분은 이번에 우리 집을 지으시면서 가장 어려웠다고 나중에 말씀을 하셨다.

그렇다, 아빠는 손자 손녀의 놀이터도 만드셨고 작은 시소도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두 분은 노후를 준비하셨다.


우리는 연세가 있으면 병원이 제일 가까워야 하는데 거기서는 병원까지 40분이 넘는다, 제일 빠른 속력으로 달려도 그래서 반대를 했지만 아빠와 엄마는 그 수많은 땅을 봤지만 한눈에 쏙 드는 땅이었다며 절대로 물리시질 않으셔서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두 분은 들어가셨고 거짓말처럼 아빠는 잦은 호흡기 질환이 좀 치료가 되셨고 엄마는 기분이 더 좋아지셨다.

덕분에 우리는 공기 좋은 곳으로 여행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올해 여름휴가는 본가에서 보내기로 우리는 마음을 먹었다. 돈 주고 시골로 캠핑을 간다는데 우리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집에 갔더니 조용했다. 그리고 바람소리에 풀 소리에 정말 자연 그 자체였다.

엄마는 단잠에 빠져 계셨다. 가급적 조용히 문을 닫는다고 닫았지만 예민한 엄마가 일어나셨다.

시간이 저녁 8시가 넘었다. 

"아니 언제 왔어?"

난 "지금"

엄마는 "왜 무슨 일 있어?"

난"아니 그냥 보고 싶어서"

엄마는 "그래, 밥은?"

난 잠시 망설이며 "있어?"

엄마는 "그럼"

엄마는 늘 엄마의 모습으로 반찬에 국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에 차려 주셨다.




난 "엄마 내가 오는 걸 아시고 차리신 것 같아"

엄마는 "늘 집밥이 그렇지, 그거 벌써 일주일이야"

난 "아빠는?"

엄마는 "아빠 어르신들이랑 장기 두시러"

난 "응"

그렇게 밥을 먹는데 일본 영화 심야식당이 생각이 났다.

난"엄마 엄마, 심야식당이라는 영화 알아?"

엄마는 "응"

난 놀라서 "엄마가?"

엄마는 "응"

엄마는"여동생이랑 봤지"


난"여기가 심야식당 같아"

엄마는 "그래?"

난"응, 내가 먹고 싶은 반찬에 뭐 다 있잖아"

엄마"생각하기 나름이지"


난 밥을 먹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시골살이에 매우 만족하고 계셨다.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하셨다. 휴직하니 불편한 건 없냐고, 그래서 난 없다고 했다. 있다면 다만 내가 지금 잘 쉬고 있는가를 묻게 되는데 거기에 "네"라고 바로 답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엄마는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알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예전의 나를 말씀하셨다. 난 달리기를 못했다. 단거리를 못해서 학교에서 하는 운동회에서 상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내가 달리기를 하면 "우리 딸 달려" 하면서 목소리를 내셨다. 그렇지만 늘 6명이 뛰면 4등을 하니 내 손등에는 상이라는 글자가 없었다. 그러다 6학년에 난 엄마와 같이 달리는 달리기에 호명이 되었다.


그날 시큰둥해서 엄마에게 "엄마, 올해는 엄마랑 나랑 같이 달리기 하래" 했다.

엄마는 "그래?" 하시며 그날 저녁부터는 엄마는 연습을 그렇게 하셨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는 30분 거리였다.

그리고 보름 정도 지났을까, 엄마는 나를 깨우시더니 같이 뛰자고 연습을 하셨다.

난 사실하기 싫었다. 어차피 뛰어 봤자 또 4등일 텐데 뭐하러 뛰나 싶었다.

그래서 대충 뛰었는데 엄마는 그걸 아시고 "열심히"라는 단어로 나에게 강조를 하셨다. 그리고 당일 운동회 3조였다. 엄마와 난 열심히 뛰었다. 아직도 생각나는 건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무조건 뛰자"했던 그 말씀이 쟁쟁하다. 그렇게 우리는 3등으로 들어갔다. 나와 엄마는 "엄마 3등이야"엄마는 "기쁘냐?"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상을 받았다.


엄마는 이때 이야기를 하시며 "넌 좀 미리 걱정을 당겨 쓰는 게 있어"

난"그래?"

엄마는"응"

난"엄마 내가 지금 잘 사는 걸까?"

엄마"그럼"

난"엄마 그거 알아 심야식당은 음식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잖아, 엄마는 지금 몇 년째인가..."

엄마는"내 나이 나온다, 하지 말어.ㅋㅋㅋ"

난 "ㅋㅋㅋ응"

엄마는"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고 우리 집 심야식당은 내 맘이야"

난"그럼 우리 집 심야식당은 우리 집 식탁이네?"

엄마"그럼"

난"엄마 고마워"

엄마는"싱겁긴"

난"그냥.."

엄마"얼른 자, 이불 가져다"


그렇게 하늘을 봤다. 맞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심야식당이 있었다. 정말 저녁에 열어서 새벽에 끝나는 하지만 코로나를 이겨내지 못해서 닫았다. 난 그게 너무 아쉬웠다. 늘 올빼미 생활하는 나에게는 소중했는데 파는 건 라면에 볶음밥이었지만 그 맛에 멋이 있어서 좋았는데 그랬다. 


내 마음의 심야식당은 우리 집 식탁에 있다. 이제는 그리 아쉬워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엄마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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