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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l 08. 2022

엄마와 난 손가락이 닮았다.

태어나서 엄마가 업고 다닐 때 가장 많은 오해를 받은 부분이 "미국인이에요?"라는 질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뽀얀 피부에 눈은 크고 쌍꺼풀이 진하고 눈코 입이 워낙 뚜렷해서 외국 아이로 오해를 너무 많이 받아서 엄마는 스트레스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동네에서는 "남편이 혹시 미국인?"이라는 질문도 받으셨다. 하지만 우리 엄마 아빠는 토종 경상도 분이시다. 내 여동생은 또 아니다. 그래서 여동생은 좋은 유전자는 언니에게 다 갔다며 늘 툴툴거렸지만 그도 또 아니다. 어쨌든 난 가끔 내 얼굴을 보면 요즘 엄마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서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동네 장을 다녀도 우리가 모녀인 건 다 안다. 워낙 유명하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와 엄마를 사랑하는 딸의 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리고 엄마의 습관인데 엄마는 늘 뭔가를 적으시는 분이다. 그래서 엄마 손을 잡고 있으면 엄마는 엄마도 모르게 내 손바닥에 자신도 모르게 필기를 하신다. 그리고 암기를 하신다. 처음에는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일종의 엄마의 루틴이었다.

그런데 이게 참 무서운 게 내가 그러고 있다. 


어느 날 친구와 같이 손잡고 가는데 친구가 "야 간지러워" 하는데 난 "왜?'

친구는 "너 방금 내 손바닥에 뭐라고 적었잖아"

난 그때 알았다. 엄마의 습관을 내가 따라 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미안 " 하고 손가락을 접고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엄마와 닮은 외모가 뭐지?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내가 남자이길 바라셨다. 욕심 많은 우리 할머니는 남아선호 사상에 심취하셔서 무조건 집에 맏이는 남자여야 한다고 하시며 엄마에게 손자를 노래 부르셨다. 오 형제에서 네 명이 다 아들을 내리 출산하며 손자 부자라는 명칭과 타이틀을 가지셨으면서도 그러고도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딱 한 명 둘째에게도 아들을 노래 부르셨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내가 태어났을 때 외할머니와 할머니가 함께 계셨는데 난 집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는 정성스럽게 가위로 탯줄을 자르시고 딸의 산후조리까지 맡으셨고 손녀라는 이야기에 뒤도 안 돌아보시고는 고향으로 가시는 시어머니를 보시며 엄마는 몰래 우셔야 하셨다.


난 그때부터 할머니가 미웠다. 그래서 엄마에게 "엄마 할머니 때문에 속 끓이지 마 어차피 내가 손녀라서 뭐 그런 거 없어"라고 말을 했다. 엄마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서 사셨지만 지금은 나 같은 딸이 없는 게 한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할머니 앞에서 난 엄마를 더 챙기며 응원하고 있다.


난 엄마와 뭐가 닮았을까? 며칠 전 거울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성격은 내가 아빠를 좀 닮았다. 그리고 반은 또 엄마 성격이다. 그럼 후라이드에 양념 반 그런 걸로 보면 된다. 그럼 외모는? 하는데 할머니는 나중에 엄마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며느라 딸은 아빠 얼굴을 닮으면 팔자가 편하다. 그러니 맘 놓거라. 그리고 씩씩하고 야무지게 키워라"라고 말없이 엄마와 화해를 하셨는데 그렇다. 난 완전 아빠 판박이다. 어딜 가도 "야 너 아빠 얼굴이다" 한다.


아빠가 미남인 건 인정한다. 당시로는 큰 키다. 175센티 넘고 쌍꺼풀도 있고 눈코 입이 뚜렷하고 뭐 그래서 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요즘 내가 생각하는 외모는 내가 엄마를 어디를 닮았지 하는데 생각해보니 난 엄마의 손가락을 닮았다.


이걸 알게 된 건, 엄마 반지를 할 때였다.

생신 선물로 가끔 반지를 선물해드린다. 반지 치수를 가끔 몰라서 대충 눈대중으로 살 때가 있는데 한 번은 내가 껴보고 산 적이 있다. 혹시나 해서 교환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샀는데 찰떡같이 맞아서 "엄마 맞아?"

라고 물어봤더니 엄마는 "우리 딸 어떻게 반지 치수까지" 하며 엄마는 신기해하셨다.

그리고 그 주에 고향을 갔는데 엄마와 내가 손바닥을 마주하니 세상에 엄마와 난 손가락이 닮았다.

길이까지 똑같이.

순간 난 "엄마 이것 봐 신기해"

엄마는 "그러게"

둘 다 호호 웃으며 이리저리 맞춰보는데 난 아빠에게 "아빠 우리 모녀는 손가락이 닮았어"

아빠는 "그래?" 하시며 웃으셨고 난 "응 진짜 신기해"

아빠는 "자식이 부모 닮는 게 당연하지" 하시면서 내심 흐뭇해하셨다.

그렇게 그날은 손가락이 닮은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엄마는 손가락이 얇고 길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둘 다 반지를 살 때 좀 예쁜 것을 고르는 편이다. 호수가 작은 편이라 좀 유리한 면도 있다. 그런 엄마지만 우리를 키우면서 손가락이 굵어진 부분도 있다.

다 '고생'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우리 딸은 아프지 말고 손가락 예쁘게 간직해" 하시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그래서 난 "응 엄마'라고 했지만 자식은 늘 부모에게 맘이 좋지 않다.


손가락이 닮은 우리 모녀, 엄마에게 늘 감사드린다.

더 늦기 전에 반지를 하나 사드려야겠다. 작은 반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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