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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l 25. 2022

우리 집은 어버이날이 두 번이다, 특별한 어버이날.

내 생일이었다. 우리 집은 생일이라고 해서 뭐 더 챙겨 먹거나 받거나 하는 게 거의 없다. 어렸을 적부터 생일에 건넨다는 게 말이 안돼서 자그마한 개다리 소반에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에 작은 과자 하나 받으면 동생과 먹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생일이면 친구들이 "축하해" 인사를 하게 되면 학교는 방학이지만 골목길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없는 돈을 털어서 문구점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사서 놀러 와서 하루를 꼬박 같이 놀았다. 고마운 친구들, 그래서 난 외롭지 않고 쓸쓸하게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유년기가 지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면서 난 그냥 역시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며 살았다. 고등학교는 기숙사를 다니면서 생일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섭섭하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우리 집안 자체가 쿨하다. 그래서 난 "뭐 생일 대수인가" 하면서 살았다. 고마운 친구들은 과자나 약간의 돈을 보태서 선문을 사줬는데 기억에 남는 게 방석이다. 고등학교 생활은 거의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 방석을 선물로 자주 주고받았다. 뭐 방석이니 책상 위에서 잘 때도 아주 유용했다.


고등학교 때 아주 웃겼던 썰이 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는데 금요일이었다. 학교에서 짐을 싸고 집을 갔는데 저녁이었다. 내 생일이니 엄마가 미역국에 자그마한 반찬이라도 해 놓으셨겠지 하고 내심 기대를 했는데 이런 아무것도 없었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서프라이즈라고 생각을 하고 "엄마 장난치지 마시고 빨리"라고 했는데 저녁을 드시고 잠이 드신 엄마는 "뭘" 하시며 하품을 하시며 "얼른 자" 하시는 거다. 난 묘하게 돌아가는 그 기운에 "엄마 오늘 내 생일이야"라고 했다. 그때도 엄마는 "응 "이라고 하셔서 역시 엄마는 다 알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갔더니 엄마는 어렵게 추스르시고는 뭔가를 하고 계셨다. "엄마 뭐해?"

엄마는 당황하시며 "네 생일 깜빡했다" 난 순간 빵 터져서 "정말?"

이라고 물었고 엄마는 "그래 미안하다" 하시며 그날 우리 집은 정말 많이 웃었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사람이니 그럴 수 있고 매년 돌아오는 생일에 뭐 그리 무게를 두지 않은 내 성격에 섭섭하지는 않았다. 다만 얼마나 힘들어서 자식 생일도 깜빡하셨을까 싶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엄마는 훗날 이날을 두고두고 잊지 않으시려고 기록을 해 두셨다.


그리고 지나간 내 생일에는 엄마에게 갔다. 더 시골로 들어가서 불편한 게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딸 생일이라고 뭐 바리바리 음식을 하셨다. 최근 허리 디스크가 좋지 않아서 걱정을 한껏 했는데 그건 그렇고 하시며 또 자식을 챙기신 거다. 난 그날 엄마에게 드릴 요량으로 들어가기 전 장을 봐서 미역국을 끓여 드리기로 했다.

미역국 하니 예전 엉망진창으로 만든 미역국이 생각이 난다.

고3 시험이 끝나고 질긴 수험 생활의 대미에 엄마의 뒷바라지에 감사의 인사로 미역국을 처음 끓였을 때 미역이 그렇게 불어날 줄 모르고 끓였다가 정말.. 이 이후는 생략하겠다.








난 엄마가 주무시는 걸 확인하고 그다음 날 미역국을 끓였다. 엄마의 레시피로 끓였고 엄마는 간을 보시더니 "괜찮은데?" 라시며 한 그릇을 비워 주셨다.

우리 집은 각자의 생일에 어버이날이라고 하고 있다.

어렸을 때야 자기 생일이라고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부모님 생각이 나는 것이다.

죽은 효자는 있어도 산 효자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우리 집만 있는 어버이날은 특별한 어버이날이 있어서 두 번 있다.

덕분에 부모님은 얼굴 봐서 좋다고 하시고 난 그 덕에 엄마 음식을 또 먹고 이런 어버이 날이라면 또 만들고 싶지만 엄마는 무슨 데이 무슨 데이는 별로 안 좋아하셔서 그만 만들기로 했다.


마흔이 되어 받는 생일이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인생에 있어서 절반은 아니지만 거의 절반이 코 앞이다. 미역국만큼 진한 삶을 살았는가, 혹은 누군가에게 그런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았는가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늘 반성하며 그리고 계획을 세우며 살지만 그러지 못함에 또 일기를 쓰고 일기를 쓴다.

생일이란 그저 단순히 축하를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물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임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느낀다. 본질에 질문을 던져야 하는 나는 늘 숙제를 풀어내야 하는 기분으로 산다.

그래, 가끔 아니 일 년에 한 번은 이런 숙제를 받는다면 나쁘지 않다.


어렵게 나를 키워내신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집만 있는 특별한 어버이날 ,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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