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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ug 22. 2022

잘나가던 대치동 강사를 그만 둔 이유

난 대학교 2학년 때 잠깐 아주 잠깐 2년 동안 학원강사를 했다. 그때 아르바이트가 급했다. 편의점을 하다가 그 편의점이 망했다. 가족이 운영을 했는데 편의점의 속성이 돈을 벌지 못하는 구조였는지 폐점을 결정하고 나와 단짝이던 친구와 함께 그만두게 되었다. 우리 집은 돈을 벌어야 하는 구조였다. 결국 난 학교 안에 있는 편의점 공모를 보고 갔지만 만석에 거의 꽉 차서 별 이득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3학년 수업이 거의 끝날 시점에 선배가 내게 "너 알바 구하지?"라고 물었다. 그렇다. 곧 군대를 간다는 남자 선배님이셨다. "네" 선배는 내게 "그럼 내가 지금 학원 알바를 하는데 가서 국어 좀 가르칠래?" 난 "저 남 못 가르치는데요"라고 했다. 선배는 "급하다며?" 난 "그렇긴.. 한데" 그래서 결국은 그다음 주 학원을 갔다.


아무나 못 간다는 강남 8 학군의 학원을 갔다. 선생님만 20명이 넘는 곳이었다. 그리고 다들 명찰을 달고 계셨다. 난 인사를 하고 뻘쭘하게 있었다. 나에게 선배는 "인사 무조건 잘하고 무조건 잘할 수 있다고 해" 난 "저 자신 없는데요"라고 했더니 선배는 눈에 힘을 주며 "여기는 전쟁터야 그러니까 무조건" 난 어쩔 수 없이 "네"라고 했다.


그리고 마주친 부원장님" 아 그래요, 추천이라고 했지?"

선배는 "네, 이 친구 학점도 좋고 아주 열심히 할 겁니다"

부원장님은 "보자, 그래요 학점도 좋고 , 어때 이쪽 일은 하고 싶어요. 앞으로?"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 난 나도 모르게 "일단 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선배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리고 부원장님은 "그렇죠, 여기가 처음인가?"

난 "네"


그리고 시강을 보고 싶다고 하시며 문제집 한 권을 주셨다. 주어진 준비 시간은 30분 처음이라 많이 준 거라며 자리를 비워주셨다.

선배는 내게 특급으로 빨리 알려주었다.

난 "선배 이렇게 풀면 이건 국문과가 아닌데?"

선배는 "여긴 학원이야"

난 "알겠어"

그렇게 떨리는 시강 30분을 하고 천국인지 지옥인지를 경험하고 마지막 결정만 남았을 때 나보고 나가 있으라고 하고 선배와 부원장님만 자리를 가졌다.

나오는 선배의 표정에서는 웃음이 만연했다.

난 선배에게 "어때?"

선배는 "오케이다"

그렇게 시작했다.


난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그냥 우리 집은 방목이라 알아서 공부해라라는 주의라서 사주신 문제집에서 공부를 했다. 결국은 내가 알아가며 공부를 한 거라 이렇게 짜인 커리큘럼에 알려주는 방식은 생소했다.

그리고 부원장님은 내게 잠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하셨다.

"여기는 강남이에요, 처음이긴 하지만 전임자가 워낙 밀어주라고 해서 한 번 해보죠. 다음 주부터 출근하세요" 

난 "감사합니다" 하고 선배가 쓰던 교재들을 다 들고 그렇게 시작을 했다.


시작부터 험난한 여정이었다. 너 얼마나 가르치는지 좀 보자 하는 영화관 관람 구경부터 아예 자는 학생까지 정말 천차만별이었다. 열심히 하겠다는 학생은 눈을 크게 뜨며 일일이 적어가며 공부를 했고 만약 내가 틀리면 따질 것 같았다. 그렇게 지옥의 2주 코스가 지나갔다. 그리고 난 원생들의 이름을 외우고 친해졌다.

아이들은 정말 공부 아니면 죽을 것처럼 사는 건 아니었다. 그때가 가을이었으니 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쏠 테니 각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라며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알고 보니 여태 그런 선생님은 없었던 거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 그날은 아이들이 학교 시험이 다 끝나고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시험도 끝났으니 하루 쉴까?"라고 물었고 이 역시도 학원에서는 유례가 없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아이들에게 "그럼 전자기타는 M이 치면 될 것 같고 전자 건반은 B 싱어는 준비 중이잖아. S가" 그렇게 저렇게 해서 우리들만의 페스티벌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정말 좋아했고 그날 피자와 음료를 시켜서 먹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 터졌다.


부원장님은 내게 한 시간 일찍 오라는 문자를 보내셨고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갔는데 화를 내고 계셨다.

"아니 학원에서 페스티벌이 뭡니까?, 여기는 돈 받고 일하는 곳입니다" 

난 "아니 애들 학교 시험도 끝나서요"

부원장님은 "원장님 대노하시고 어쩔 겁니까?"

난 "죄송합니다"

부원장님은 "앞으로 이러시면 그만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 "학부모님들이 불평 전화를 제가 다 막았습니다."

난 "죄송합니다"

부원장님은 "여기는 전쟁터예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다. 그렇게 시험을 쳐서 점수가 오른 친구는 좋아했지만 떨어진 친구는 기분이 나빴다면서 부모님에게 고스란히 이야기를 하며 양념을 추가해 난 거의 죽을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난 결정적으로 수업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앞으로 그런 일은 없도록 합시다"라고 했는데 한 학생이 "아 이제 제대로 파악했네 "라는 이야기를 했다.

난 너무 당황스러워서 "뭐라고 했죠?"

다시 따져 물었다.

그때 그 학생은 "여기 돈 내고 다니거든요, 시간이 돈이에요. 그런데 노래 부르고 뭐예요."

이후 욕설은 생략하겠다.

그때가 딱 2년이 되었을 때다. 그만뒀다.


아이들은 같이 하자고 했지만 난 아니다,라고 그만두고 대신 연락처는 변경이 되면 알려주겠다고 하며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가방을 쌌다. 지금 생각하면 그 강남8 학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해를 한다. 하지만 내 꿈은 너무 컸고 인간적으로 살자, 라는 내 꿈은 맞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난 운이 정말 좋았다. 지금 그 친구들과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래서 그때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고맙다.

그 2년의 생활이 그리 좋았지만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슬프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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