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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Sep 05. 2022

하늘에서 떨어진 돈벼락으로 울어보신 적 있나요?

정말 이건 단수한 우연이었다. 그냥 보이스피싱이려니 했다. 그런데 동료가 나에게 "자기도 해봐 혹시 알아?" 그렇다. 숨은 보험금 찾아주기라는 사이트가 있단다. 난 웃으며 "저 그런 거 없어요"라고 정확하게 2주 전에 말했다. 그리고 그 동료는 숨은 보험금 찾기를 통해서 500만 원을 찾았다며 그날 커피에 과자를 마구마구 날렸다. 


난 "좋겠다" 했다. 나에게 500만 원이면 얼마야, 하면서 야금야금 커피를 마시며 부러워하는데 옆자리 동료는 "아이고 돈복은 아무나 있는 게 아닌가 봐요, 전 이번에 시어머니 생신이라 돈 나가는 일만 생겼는데" 한숨을 쉬었다. 난 "그러게,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 따른다고 되나" 옆자리 동료는 "와우 명언인데?" 하면서 웃었다. 


난 웃으며 "꽁돈은 진짜 보물이다" 그러다가 꽁돈에 대해서 후끈한 이야기가 나왔다.

난 작년 세탁소에 옷을 맡기기 전 코트에서 1만 원이 나왔다. 그것도 좋아서 "어머 이거 무슨 횡재?" 하면서 엄청 좋아했다. 그런데 저런 액수라면 뭐 말할게 뭐가 있겠는가. 난 결국 부러워하는 사람으로 남아서 내 할 일을 했다.


다음 달 세미나가 큰 세미나라 정신이 없다. 갑자기 엄마 말씀이 떠올랐다. 급할 때는 어떨 때 돈이 붙을 때가 있더라, 하는 엄마의 말. 


그렇다, 우리 집은 늘 간당간당했다. 아빠의 빚보증에 엄마는 늘 어떻게 하면 한 달 꾸려가나 했는데 어디서 구세주 같은 돈이 들어오고 그래서 한 달을 그렇게 넘기고 넘기고 생활을 하셨단다. 생각해보면 구세주는 살아야 가야 한다는 의지에서 나오는 건데 엄마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어디서 돈 안 떨어지나 하고 하늘을 볼 때가 가끔 있으셨는데 당신도 그 생각이 너무 염치도 없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으셨단다.


 난 얼마나 힘드셨음 그러셨을까 싶어서 "엄마 힘들면 나도 그래"라고 했더니 엄마는 "많이 힘드니? 도와줘?"라고 말씀하셔서 손사래를 쳤다. 서울로 와서 이사를 정확하게 4번을 했다. 대학교 때 옥탑방. 대기업 때는 회사 본사에서 다닌다고 이사를 그만두고 또 이사를 지금은 또 이직한 회사와 이사를 그렇게 넓혀 가면서 그래도 부모님 손 안 빌리고 내가 이사를 했다. 주위에서는 대견하다 하지만 그렇게 컸다.


엄마도 아빠도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대학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라, 하셨는데 뭐 할 말은 없었다. 그게 사실이니까. 알바도 열심히 했고 회사도 열심히 다니면서 주식의 1도 모르니 그냥 저축하면서 살았고 남들 명품 살 때 난 명품이 원래 나랑 맞지도 않으니 그냥 적금에 금리 생각하고 살았고 지금껏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며칠 전 돼지꿈을 꿨다. 보통 돼지꿈 하면 복권을 생각하지 않나, 그래서 나도 로또를 살까? 고민을 잠시 했는데 내 인생에는 로또가 아니다 싶어서 그냥 회사로 왔다.

그리고 옆자리 동료가 다시 그 지나간 숨은 보험금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 잠시였다. "숨은 보험금으로 가방 샀데" 하면서 웃었다. 그렇다. 딱 봐도 명품이었다. 난 갑자기 돼지꿈이 생각이 났다.

난 맞은편 동료에게 사이트를 물었다. 그리고 정말 허위 사이트가 아닌지 몇 번이나 물었다.

이제 화가 날려는 동료에게 "보이스 피싱이면 나 남는 거 없어" 하면서 앓은 소리를 했다.

대망의 사이트 접속, 정말 1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런 남은 보험이 있었다.

00 생명 보험, 끝난 날이 무려 재작년이다. 난 헉했다. 금액이 1000만 원이다.

난 이 보험을 계약한 적이 없다. 


보통 보험을 계약을 하면 은행에서 하는데 절대 한 적이 없다.

난 결국 보험사에 전화를 했다.

가슴은 너무 뛰었고 거기서 말해주기를 돈을 매달 넣은 사람은 우리 엄마였고 내가 받는 사람으로 되어있었다.


순간 너무 눈물이 났다.

그때 난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했다" 돌아온 대답은 "아마 이메일이 갔을 텐데 스팸처리가 된 것 같단다" 이런... 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냐니 정확한 실명을 위해서 몇 가지 질문을 거치고 그날 바로 돈이 입금이 되었다.

이렇게 돈이 들어왔다.

거금 1000만 원, 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00 생명하고 계약을 헀어?"

엄마는 "응"

난 "그거 만료가 작년인데 왜 이야기를 안 하셨어?"

엄마는 "그래?"

난 "응"

엄마는 "아 그거 네 앞으로 한 건데 너 결혼이라도 하면 작게라도 쓸려고 아주 옛날에 부어서 얼마 안 될 거야"


난 "엄마!!"

엄마는 "왜!"

난 "아니..."

엄마는 "살면서 이런 돈이 필요해, 그래서 했다. 그리고 선물이다. 됐지?"


난 펑펑 울었다.

그걸 부으려면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 아주 힘들 때 부었을 텐데 자식을 걱정했던 엄마의 심정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반갑지 않은 이 꽁돈은 그냥 드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난 급하지도 않고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무리된 1000만 원은 엄마에게 드렸다.

나중에 내가 필요하면 그때 받겠다 하고 말이다.

엄마는 싫다고 하셨지만 요즘 손녀 손자에게 주는 돈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마음만으로도 난 충분하다.

살면서 이런 일을 몇 번 겪겠는가. 

참 사람일은 알 수 없다.


지금도 난 또렷하게 기억한다. 우리가 어려울 때 외할머니는 늘 쌈짓돈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 아빠 몰래 엄마에게 돈을 건네며 "얼마 안 되지만 쓰거라, 애들 고기도 좀 사 먹이고" 엄마는 "늘 죄송해요" 하며 그 돈을 받으셨다. 엄마가 받으시던 그 하늘에서 떨어지던 돈은 외할머니 돈이었다. 난 그걸 알고는 더 이상 용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많이 우셨고 자식으로 죄송한 마음만 남으셨다며 돈도 못 돌려 드렸다고 가슴을 치셨다. 난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마음으로 안아 드렸지만 그게 어디 쉽게 잊혀지겠는가, 엄마는 내내 말씀하셨고 난 그만 잊으라고 할 때 동생이 손자 손녀를 낳아서 엄마는 그 사랑을 쏟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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