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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Sep 07. 2022

텔레비전 없이 20년을 살아봤다.

사실 난 텔레비전과 그리 친하지 않다. 우리 집안 자체가 텔레비전이 없었다. 가난하기도 했고 엄마 아빠는 읽기를 좋아하셔서 뭐든 읽고 비교 대조 분석을 하셨다. 예를 들어서 내가 별에 대해서 궁금해하면 엄마는 책을 찾아서 보라고 하시지 텔레비전을 보고서 뭔가를 보라고 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리고 난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태어날 때부터 서재에 거실 방 할 것 없이 책으로 둘려 싸여 있어서 집에 오면 엄마는 늘 독서를 하고 계셔서 "엄마 우리 왔어" 하면 엄마는 독서를 중지하시고 밥을 내어 오셨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우리에게 일기를 쓰라고 하셨고 당신은 가계부에 간단한 소회를 적으시고 그날의 지출비를 적으셨다. 그러니 당연히 난 그게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 생각했다.


친구들과 이야기가 잘 안 통했다. 친구들은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이야기를 하는데 난 누구인지 몰라서 "그게 누구인데?"라고 물으면 "야 요즘 제일 유행하는 만화 주인공" 하고 말해주면 난 또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렇게 저렇게 살다가 아마 6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둘리 영화를 보러 갈 일이 생겼다.

그날은 친한 친구의 생일이었는데 우리 때만 해도 비디오 세대이다. 친구가 초정을 해줘서 난 간단한 연필 몇 개를 챙기고 친구네 집으로 갔는데 세상에 텔레비전과 비디오라는 게 있었다. 넓적한 기계에 뭔가를 넣으니 바로 만화가 나오는데 난 음식이고 뭐고 혼이 빠져서 넋을 잃고 봤다.

그리고는 친구에게 "넌 매일 이렇게 봐?"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주말이면"이라고 말해서 한 번도 그 친구를 부러워해 본 적이 없는데 그때 부러워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 길은 다리가 무거웠다. 우리 집은 비디오는커녕 텔레비전도 없었다. 결국 그날 저녁 아빠와 엄마에게 "우리도 텔레비전 사자"라고 말했다. 옆에서 여동생은 "왜?"라고 물었고 난 친구네에서 겪은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신기했구나?" 하셨다.

난 "응"이라고 했고 엄마는 "그래 그럼 생각해보자" 하셨다.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을 줄 몰랐다.

그런데 엄마의 오케이 사인이 있고 두 달 뒤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던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처음 만져보는 리모컨에 난 너무 신이 나서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엄마는 "으이그 닳겠다" 하셨고 두분도 정말 재미있게 보셨다. 


하지만 재미는 잠시, 결국 우리는 다시 독서를 했고 그렇게 그 텔레비전은 장식용으로 뉴스를 볼 때만 켜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서는 잠깐씩 보고 고등학교를 가서는 부모님은 팔아 버리셨다. 아무도 보지 않아서. 결국 라디오가 중심이 되어서 밥을 먹을 때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밥을 먹었다. 


하나도 불편하지 않는 삶이 되어서 난 그 후부터 텔레비전과 굿바이를 했다. 그리고 대학교를 가서도 난 텔레비전 없이 살았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처음 원룸을 계약하고 방이 뭔가 허전해서 텔레비전을 설치할까도 생각을 했지만 뭔가를 보면 그만큼 독서를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아예 엑스를 그어서 설치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한 생각이다. 결국 난 그렇게 20년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이제는 텔레비전은 음식점에 가면 가끔 보는 기계 정도이다.


휴대폰에서 가끔 뉴스를 접하고 그 이상 필요성이 없어서 설치도 안 하지만 기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설치하지 않은 점도 인정을 한다.

삶에 있어서 내가 필요하다면 했겠지만 아직도 설치를 하지 않은 것은 매달 사는 책만으로도 벅차다.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나 하나라도 기계를 잠시 멈춘다고 잘못되는 일은 없으니까, 난 그래서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텔레비전 없이 살 생각이다.


모르겠다, 아주 파파 할머니가 되면 살지. 지금의 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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