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접 Sep 19. 2022

가을엔 김밥을 싸서 도서관을 가겠어요.

높디높은 가을, 난 가을 하면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있다. 좋은 기억은 친구들과 늦게까지 고무줄이나 공기를 하며 나의 재능을 널리 알리며 은근히 인기를 날렸던 기억이 있고 나쁜 기억이라고 해야 할지 아쉬운 기억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의 기억에 아픈 기억이라면 운동회이다.


운동회 하면 엄마가 주신 용돈으로 학교 정문에서 맛있는 불량품을 먹으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들어가는 그 입구까지 끝, 친구들은 가족들과 경양식을 갔는데 난 엄마가 싸 준 고구마와 땅콩을 쪄주셔서 정말 질리도록 먹었다. 그나마 김밥이라면 안에 들어가는 속이라면 당근과 우엉 그리고 운 좋으면 소시지 정도였던 김밥, 참기름 냄새만으로도 절반은 침이 고이는 김밥도 마음껏 먹지 못했던 가을이 기억이 난다.


그날이었다. 가을빛이 아직도 따가운 운동회를 준비한다고 남자아이들은 소고를 준비했고 여자 아이들은 부채춤을 준비했다. 그래서 우리 여자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여자 선생님이 교단에서 방송을 하시면서 마스게임처럼 하나하나 자리까지 알려주셔서 잘 익혀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을까 싶은데 난 부채춤이 어려웠다. 잘 모아서 마치 꽃이 올라가는 그 모양을 익혀야 했던 내 실수가 크게 눈에 띌 수 있는 부채춤이 꽤 어려웠던 나는 잘 때도 내 동작을 부단히 연습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운동회 전날 엄마는 늘 그렇듯 빠듯한 김밥을 싸서 우리 집 전체에 참기름 냄새가 났다.

아빠는 어렸을 적 할머니가 김밥을 싸시면 통으로 드셨단다. 5형제가 먹으려면 숟가락을 먼저 잡는 사람이 더 많이 먹는다라는 분위기라서 통으로 먹는 게 썰어서 먹는 게 더 맛있다며 "딸들 통으로 먹어봐" 하시며 직접 시연까지 하셨다. 엄마는 "자기는 애들 먹으라고 하는데 더 먹으면 어떡해?" 하시며 퉁을 주셨지만 엄마는 꼬다리 김밥을 드시며 "아이고 늘 이렇게 딱 떨어진다" 하시며 20줄을 싸면 그날 5줄은 기본이었다. 그리고 운동회날은 저녁까지 먹고 그렇게 아쉽게 지나갔다.


내가 대학을 가고 엄마는 처음 대학을 오실 때 김밥을 싸오셨다. 그리고 학교 구경을 하고 난 음식을 대접을 하려고 했더니 엄마는 보자기에 김밥을 꺼내 놓으셨다. 역시 엄마 김밥은 어디에도 없는 맛이다.

엄마는 학교 도서관이 궁금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도서관을 구경시켜드리고 겉으로만 보셨지만 엄마는 만족해하셨다. 그렇게 먹은 첫 번째 먹은 김밥은 도서관에서 먹었다.

그 이후 난 가을이 되면 김밥을 싸면 도서관을 간다.


국립 중앙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면 금방 간다. 논문을 보고 책을 대출하고 시간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결국은 나와서 버스를 타기 전에 한가한 구석에 앉아서 김밥을 먹으며 이런 사치는 없다고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도시락이라고 하면 3단 도시락까지 생각하겠지만 글쎄 난 그렇게 살아보지 않아서 생각은 못하겠고 난 그저 김밥 도시락이면 만족한다. 속이야 뻔하지만 추억이 서린 김밥을 들고 도서관에서 먹는 김밥이란 정말 사치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내게 도서관은 그냥 환상의 공간이다. 그래서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이제 시작인 가을에 가급적이면 가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 논문을 자주 봐야 하는 일이라 가야 하기도 하지만 핑계도 있겠다 가을 하늘 높다는데 그 높은 하늘에 엄마 마음까지 생각하며 난 김밥 먹으려고 한다.

인생 별 것 없다. 소박한 삶이 행복하다. 어릴 때와 다르다면 그때보다 소시지를 좀 더 넣고 밥은 줄이고 과일은 한두 가지 넣고 이렇게 넣고 도시락을 만든다.


손이 가는 도시락, 어떤 삶이 행복인가를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가을이 되면 김밥 싸서 도서관 간다면 난 분명 행복하다, 그럼 행복하다.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삼시세끼 증후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