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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Sep 26. 2022

너 가난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좋은 대학 갔어?

지난주 아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나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다. 사건은 이렇다. 원래 만나려고 한 친구가 아이 때문에 못 나온다고 해서 약속이 취소가 되었는데 남편이 아이를 봐준다고 하루 놀다 오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서울에 있는 동창생들을 긁어모았다. 긁어모은 게 맞다.


그래서 나도 기억에 가물가물한 친구 두 명도 같이 만났다. 난 문과였고 기억에 가물한 친구는 이과여서 살면서 고등학교 내리 3년 동안 한 번도 못 본 친구였지만 수학을 할 때 만난 친구여서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만나 서울의 수도라는 강남에서 만났다.


예약을 하고 식당에 들어서니 다들 가방에는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목에 힘을 주고 나왔다.

나는 그냥 나갔다. 화장도 안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로 내가 그렇지 뭔가를 하고 나간다는 건 나와 맞지 않다. 무슨 상견례도 아니고 그래서 편하게 나갔다. 이때부터 문제였다.


친구들은 다들 이야기하며 그간의 밀린 이야기를 조선왕조 실록처럼 이야기를 했다.

난 들으며 음료를 홀짝이며 있는데 그때 이과에 있던 친구 s가 내게 물었다.

"너 요즘 뭐해?"

난 "그냥 회사"

그 친구는 내게 관심을 보였다.

"혼자니?"

난"응"

친구는 "왜?"

난 쿨하게 "못 간 거지 뭐.."


너무 쿨했나, 친구는 안색이 변하며 "야 뭐 그렇게까지.."

난 "아니 진짜야"

그렇게 이야기가 주고받고 음식이 나왔다.

난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역시 난 혼자라 아이를 키우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동생의 육아를 봤기에 동감이 가는 부분도 있어서 살짝살짝 동의를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음식도 먹고 후식이 나왔다.

가벼운 차를 마시며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고 그렇게 이제 가려고 하는데 그 s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나 진짜 궁금한 건데 우리 같은 기숙사였는데 너 가난해서 장학금 , 그러니까 동문 장학금 받았잖아"

난 "응"

"그런데 너 어떻게 그렇게 좋은 학교 갔니?"

난 "공부해서"

친구는 "그러니까 어떻게 공부해서?"

난 "그냥 공부했는데?"

친구는"우리 기숙사 애들 주말에는 나가서 다들 과외받고 주말 학원 갔는데 너 둘 다 아니지 않았어?"

난 "그랬지, 우리 집 가난한데 턱도 없지, 그래서 공부했어. 할 수 있는 게 공부라서"

친구는" 대단하다, 난 그렇게는 못 살겠던데. 안 답답했니?"

난 "글쎄.. 원래 그렇게 살아서 혼자 공부하는 게 편해서 학원 다닌다고 뭐 다를까 싶어서 그런 생각 안 해봤는데?"

친구는"그렇구나"



난 속으로 나를 기죽이려고 하나?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궁금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내게 공부 비법을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한 문제집을 여러 번 보고 응용문제는 왜 그렇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라고 말을 해주는 게 전부였다. 어릴 때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사교육을 그리 반기지 않았던 우리 집 분위기에 딱 한 번 엄마가 중학교 3학년 때 수학이 어려우면 학원을 가도 된다고 하셨지만 나보다 2살 많았던 사촌오빠가 공부를 엄청 잘했다. 그 오빠에게 난 수학을 배웠고, 오빠는 나에게 수학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 줘서 덕분에 고비를 잘 넘겼다.


난 그냥 중학교 때도 학교 마치면 알아서 지역에서 공짜로 운영하는 도서관에 가서 마감시간까지 앉아서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오래 앉아 있는 게 어렵거나 그런 건 문제가 안 되는 학생이었다. 엄마는 일찍 일찍 다니라고 잔소리를 하셨지만 그게 싫지는 않으신지 가끔씩 도시락을 싸주시기도 했지만 중간에 밥을 먹거나 음료를 먹는 게 싫어서 그냥 나올 때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게 공부해서 기숙사 학교를 가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서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가난해서 대학을 못 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사촌오빠가 그랬다.

형편이 어렵다고 대학을 못 가면 이 세상에 그런 불평들은 없다고, 스스로 헤쳐 나가라고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공부라고 생각하고 즐기며 살았다. 그래서 덕분에 중학교 2학년 때 국문과로 정하고 공부를 하는데 좀 도움이 된 것 같다.


그 친구는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지금 내가 하는 연구직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럼 지금 하는 직업도 공부구나?"

난 "그런 경우지"

친구는"야  너 진짜 공부 즐기는구나"

난 "글쎄.. 즐기는지는 모르겠고,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

난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서려는데 친구는 나에게 "좋겠다, 즐기는 게 있어서"

난 "너도 있잖아, 수영한다며 그럼 된 거지, 난 운동 못해 알잖아. "


여고 동창 모임은 이런 건가 하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집에 와서 생각을 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뭐지?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정말 가난해서 늘 장학금으로 버틴 건 맞다. 조마조마해서 장학금 못 받으면 어쩌지 하고 살았던 게 대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늘 성적에 신경을 쓰고 그러면서도 문학을 좋아해서 다음날이 모의고사인데도 조정래 소설 붙잡고 읽었다. 선생님은 어이가 없으셔서 "이 놈아 내일이 시험이다" 하시면서 가셨다.

멀티가 안 되는 나인데 왜 그랬는지, 그래도 그때는 열정이 있었나 보다.

지금은 안된다.


그 말이 아직도 귀에 남는다.

"너 가난했잖아, 어떻게 좋은 대학 갔어?"

다시 만나면 이야기해줘야겠다.

"가난은 했는데 마음까지 가난하지는 않았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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