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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Sep 28. 2022

엄마와 생강차

난 수족냉증자. 엄마의 유전이다. 그래서 늘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우리 엄마는 이 무렵이면 늘 생강을 사신다. 그것도 많이. 그래서 나름 5일장에서 생강을 판매하시는 분들에게는 큰 손이다. 일명 단골에서 생강을 사셔서 집이 단독주택이라 쓰지 않는 창고 위에다 생강을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빻아서 나에게 병으로 혹은 플라스틱으로 해서 보내주신다. 그런 수고로움은 아마 엄마라는 단어가 아니면 누구도 못할 것이다.


난 편도염도 심해서 고등학교 때 수술도 했다. 편도염이 심하면 극한의 열을 동반해서 나 스스로 열을 다스리지 못해서 학교도 못 가서 편도염에 좋다는 가루는 거의 다 먹어 본 것 같다.


하루는 아빠가 단골 이발소에 가셨는데 무슨 정체모를 가루를 가져오셨다.

그리고는 "딸 이거 먹어봐라 이게 은어 가루인데 이게 목에 그렇게 좋데"

난 쓴 표정을 지으며 "아빠 이게 미신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니 날아오는 등짝 스매싱, "딸 이건 미신이 아니라 정성이라고 하지"


그렇게 아빠의 요청에 따라 은어 가루를 털어 넣었는데 반응이 없었다.

"아빠 반응이 없는데?"

아빠는 "당연하지 지금은 아픈 게 아니잖아, 아프지 말라고 미리 먹는 건데"

그렇게 어떻게 구하신 건지 룰루랄라 그날 하루 기분 좋게 보내셨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겠거니 했다. 알고 보니 그 이발관 아저씨가 어부의 생활을 사시고 계셨다.

늘 가면 낚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그래서 속으로 '저 아저씨는 왜 저렇게 재미없는 걸 보고 계시지?" 했는데 알고 보니 낚시 전문인이셨던 거다. 그래서 아빠는 특별히 은어를 부탁하셨고 난 주말만 집에 가니 평소에 말려 놓으셨다가 또 빻아서 나에게 주신 거다.


참 부모는 바쁘시다.


몇 주 전 집에 갔다 왔다. 이사를 가서 뚜벅이는 나로서는 불편하지만 두 분의 꿈을 이룬 그곳은 정말 낙원이다.

가을이라 곤충과 꽃으로 가득한 집은 가을임을 확실히 보여주었고 엄마의 정성과 아빠의 노력으로 정원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얼마나 노력을 하셨을까 싶어서 맘 같아서는 그냥 다시 아파트로 가시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손자 손녀 그네를 만들어 놓으신  두 분에게는 공염불인 것 같아 참았다.


집에 도착하여  난 엄마를 찾았다.

"엄마 나 왔어"

그렇게 몇 번 불렀는데 결국 아무도 계시지 않았다.

보통 내가 간다고 하면 댁에 계시는데 부재중.



결국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에 걸린 엄마의 음성은 쾌청하셨다.

"엄마"

"응 딸"

난 "어디셔?"

엄마"방앗간"

난 또 떡을 하나 싶어서 "떡해?"

엄마"아니, 그보다 더 좋은 거"

난 "뭐?"

엄마는 "있어 집에서 보자, 바쁘다"



그렇게 끊어지고 3시간이 흘렀나? 집으로 오시면서 "딸" 하고 부르셨다.

난 엄마다 싶어서 뛰어갔다. 두 손에 묵직하게 뭔가를 들고 오셨다.

"아빠는?"

엄마는 "응 동네분들이랑 산에 가셨어"

난 "그렇구나"

난"엄마 이게 뭐야?"

엄마"응 생강"

난"뜬금없이 생강?"

엄마는"이게 몸이 찬 사람에게 좋잖아. 작년에도 너한테 줬잖아. 네가 잘 안 해 먹어서 그렇지."

맞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꿀이랑 같이 주셨다.

"그럼 이것 때문에 방앗간에 가신 거야?"

엄마는 "그럼"


그렇게 엄마와 나는 플라스틱 병에 담아서 생강가루를 옮겼다.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모른다.

난 이걸 언제 다 먹냐고 했는데 엄마는 이제 가을 시작에 겨울 내내 먹어야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셨다.

부모가 아니라면 부담스러웠을 이 모든 세심함에 감사했다.

엄마는 내게 "물려받을 게 없어서 수족냉증을.." 말끝을 흐리셨다.

난 "괜찮아 요즘 핫팩 좋아" 하면서 웃었다.



엄마는 "나도 그렇지만 내 딸이 그렇다니 늘 맘에 걸린다. 나중에 결혼해서 애는 낳을 수 있을지 그것도 그렇고. 자식 앞에서는 늘 을이야, 을"

엄마는 생강가루를 옮기시면서 어깨를 만지셨다. 오십견인가 싶어서 여쭤봤지만 아니라고는 하셨는데 맘에 쓰여 나머지는 내가 다 옮겼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아빠도 오시고 다 같이 밥을 먹었다.

아빠는 산행에서 가을바람이 달랐다고 말씀하시며 다음에 같이 가자고 날 맞춰서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날 빻은 생강가루에 생강차를 마셨다.

개다리소반에 생강차 한 잔 마시면서 밖을 보는데 참 세월은 그냥 흐르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자식으로서 난 이만큼 못하는데 늘 나보다 한 발짝 앞서시는 두 분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결혼을 못하는 건 이 두 분만큼 자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가을이라 확실하게 바람이 다르네, 참 요물이다" 호로록하며 마시는 생강차에 그 향에 그렇게 가을바람을 맞이하며 부모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늘 시계는 돌아가고 난 부모님의 등을 보며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만 부모의 삶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서 서울을 올라오면 마음이 무겁다.



버스 정류장까지 차를 태워주시면서 "생강차 꼭 타 먹어, 몸이 찬 사람에게 이것만 한 게 없어"라는 엄마의 백번의 당부에 예전 같으면 "엄마 제발"이라고 하겠지만 이번에는 아무 말하지 않고 웃었다.



엄마는 두 손을 꽉 잡아주셨다. 그리고 서울에서 살기 싫으면 언제든 내려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 두 손이 찼다. 엄마도 수족냉증이 심하다. 그런 분이 자식 먹이겠다고 하신 생강을 말리고 갈아서 주신 그 여정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어서 "엄마 열심히 타 먹을게"라고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하고 멀어져 가는 버스 안에서 괜히 눈물이 나는 건 나도 엄마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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