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오랜만에 서울에 오셨다. 가을에 오신다고 하셨는데 늦게 오셨다. 집에 일도 있고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서 할머니 댁을 자주 가셨다.
그렇게 주말에 오신 엄마는 역시 냉장고 문부터 열어보시고 한숨을 내쉬셨다.
늘 그렇지만 혼자 사는 사람이 뭘 먹겠는가. 내 냉장고에는 물밖에 없다. 이건 어쩌면 습관인데 다이어트를 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냉장고에 있으면 자꾸 먹게 되니 자연스럽게 과일 하나에 물만 가득 넣어두는 게 습관이 되어서 갑작스럽게 친구나 지인이 방문하면 내줄 것은 커피를 내려주는 것 밖에 없어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번외 편으로 난 가스요금도 아주 최저로 나오고 전기요금도 최저이다. 그래서 가끔 편의점에서 수납을 할 때 아저씨는 "아니 집에서 아주 안 드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러면 웃으면서 "밖에서 거의 외식이네요" 하면서 웃으며 낸다. 조금은 어색하지만 사실이니까.
엄마는 뭐가 먹고 싶냐고 하셔서 난 외식을 하자고 했는데 외식이라고 해봐야 둘이서 먹는 거라고는 비빔밥이니 엄마는 알겠다고 하시고는 나가셨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두 손에 가득 뭔가를 들고 오셨다.
"엄마"
엄마는 "이거 들어라"
그렇게 들고 오신 건 무와 기타 먹거리들이었다.
"전화를 하시지"
엄마는 "아니 구경도 하고 서울은 여전히 사람이 많네"
그렇게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는 "무밥 먹을래?"
갑자기 엄마의 제안으로 그렇게 무밥의 여정이 시작이 되었다.
할머니는 무가 소화제로 그만이다,라고 하시고는 늘 저녁이 되면 썰어 주셨고 아빠는 입이 심심하시면 무를 드셨다. 난 그런 아빠를 보며 "아빠 무가 맛있어?"라고 물으면 아빠는 "응, 그냥 시원해" 하고 웃으시며 드셨는데 어릴 때는 그게 이해가 안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장독에서 무를 가져오셔셔 아주 얇게 썰어서 강판에다 갈아 주셨는데 얼마나 달고 맛있었는지 정말 한 사발을 마셨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난 예전 기억을 이야기하며 "엄마 그때 맛있었는데 지금 그 맛이 나려나?"
엄마는 "무는 지금이 딱이지, 그리고 보자.." 하시며 무를 손질하시고 얇게 총총히 도 써시고 넓적하게 멋없이 썰어서 밥을 하셨다. 버섯과 나머지 재료들은 양념장으로도 쓰신다고 사 오셨다.
난 "이럴 거면 고기도 사 오시지" 엄마는 "무밥은 그냥 먹어도 맛이야, 고기 없어도"
엄마와 난 부지런히 움직여 음식을 준비했고 기특한 밥솥은 씩씩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밥이 다 되고 하얀 빛깔에 도자기 색으로 나온 무밥을 마주하고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들고 직진, 엄마는 "어허 , 그릇으로" 그렇다.
엄마는 늘 눈으로 향으로 맛으로 이 세 가지를 강조하시는 분이라 절대로 헛으로 먹을 수 없다.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 엄마가 마련한 양념장으로 비벼서 먹었다.
아, 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맛있다면 반칙이다.
난 엄마에게 "엄마 무만으로도 맛있다니 이건 반칙이다" 하며 웃었더니 엄마는 "품이 얼마나 들어갔는데 무슨"
하시며 엄마도 많이 드셨다.
그렇게 모녀의 식사를 마치고 난 엄마가 좋아하시는 커피를 내려 드렸다.
엄마는 오랜만에 봐서 좋다고 하시며 하룻밤을 묵어 가셨고 난 남은 무밥이 먹고 싶어서 소분해 달라고 해서 엄마는 또 무밥을 해서 냉동고에 넣어 두셨다.
맛 표현에 무색한 난 이번엔 아무래도 해야겠다 싶어서 엄마에게 "엄마 무밥이 도자기 같아"라고 했더니 엄마는 웃으시며 "그래?" 하셨다.
난 "응"
엄마는 "그렇게 보면 그렇지"
난 "아니 색깔도 그렇고 도자기가 오랜 시간 노동에 무색무취이지만 아주 고급이잖아, 이 밥도 다르지 않은걸"
엄마는 " 아주 좋은 평이네" 미소를 보이시며 엄마는 가을에는 무조건 생각을 많이 하고 쉬라며 딸 걱정을 하시는 엄마에게 난 "엄마 쉬면 일이 두배야" 라며 웃으며 또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오늘 아침에는 엄마 덕분에 무밥을 먹고 나왔다.
인생도 이렇게 살 수 없을까? 무색무취이지만 고급스럽게 향이 나는 사람으로. 난 연꽃처럼 살고 싶다고 자주 말한다. 그리고 다음 생이 있다면 바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불가의 연기설에 의하면 지은 죄가 많으면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태어나기 힘들다고 하니 늘 나는 생각한다.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업을 지우며 살자. 이렇게 말하지만 힘들다. 그래서 오늘도 산 넘어 산으로 가는 일들이 내 앞에 있지만 즐기며 일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