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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Nov 28. 2022

도자기 빛깔로 먹는 무밥, 그 신선의 세계

엄마가 오랜만에 서울에 오셨다. 가을에 오신다고 하셨는데 늦게 오셨다. 집에 일도 있고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서 할머니 댁을 자주 가셨다.


그렇게 주말에 오신 엄마는 역시 냉장고 문부터 열어보시고 한숨을 내쉬셨다.

늘 그렇지만 혼자 사는 사람이 뭘 먹겠는가. 내 냉장고에는 물밖에 없다. 이건 어쩌면 습관인데 다이어트를 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냉장고에 있으면 자꾸 먹게 되니 자연스럽게 과일 하나에 물만 가득 넣어두는 게 습관이 되어서 갑작스럽게 친구나 지인이 방문하면 내줄 것은 커피를 내려주는 것 밖에 없어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번외 편으로 난 가스요금도 아주 최저로 나오고 전기요금도 최저이다. 그래서 가끔 편의점에서 수납을 할 때 아저씨는 "아니 집에서 아주 안 드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러면 웃으면서 "밖에서 거의 외식이네요" 하면서 웃으며 낸다. 조금은 어색하지만 사실이니까.


엄마는 뭐가 먹고 싶냐고 하셔서 난 외식을 하자고 했는데 외식이라고 해봐야 둘이서 먹는 거라고는 비빔밥이니 엄마는 알겠다고 하시고는 나가셨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두 손에 가득 뭔가를 들고 오셨다.

"엄마"

엄마는 "이거 들어라"

그렇게 들고 오신 건 무와 기타 먹거리들이었다.

"전화를 하시지"

엄마는 "아니 구경도 하고 서울은 여전히 사람이 많네"

그렇게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는 "무밥 먹을래?"

갑자기 엄마의 제안으로 그렇게 무밥의 여정이 시작이 되었다.


할머니는 무가 소화제로 그만이다,라고 하시고는 늘 저녁이 되면 썰어 주셨고 아빠는 입이 심심하시면 무를 드셨다. 난 그런 아빠를 보며 "아빠 무가 맛있어?"라고 물으면 아빠는 "응, 그냥 시원해" 하고 웃으시며 드셨는데 어릴 때는 그게 이해가 안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장독에서 무를 가져오셔셔 아주 얇게 썰어서 강판에다 갈아 주셨는데 얼마나 달고 맛있었는지 정말 한 사발을 마셨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난 예전 기억을 이야기하며 "엄마 그때 맛있었는데 지금 그 맛이 나려나?"

엄마는 "무는 지금이 딱이지, 그리고 보자.." 하시며 무를 손질하시고 얇게 총총히 도 써시고 넓적하게 멋없이 썰어서 밥을 하셨다.  버섯과 나머지 재료들은 양념장으로도 쓰신다고 사 오셨다. 


난 "이럴 거면 고기도 사 오시지" 엄마는 "무밥은 그냥 먹어도 맛이야, 고기 없어도"

엄마와 난 부지런히 움직여 음식을 준비했고 기특한 밥솥은 씩씩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밥이 다 되고 하얀 빛깔에 도자기 색으로 나온 무밥을 마주하고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들고 직진, 엄마는 "어허 , 그릇으로" 그렇다.

엄마는 늘 눈으로 향으로 맛으로 이 세 가지를 강조하시는 분이라 절대로 헛으로 먹을 수 없다.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 엄마가 마련한 양념장으로 비벼서 먹었다.


아, 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맛있다면 반칙이다.

난 엄마에게 "엄마 무만으로도 맛있다니 이건 반칙이다" 하며 웃었더니 엄마는 "품이 얼마나 들어갔는데 무슨"

하시며 엄마도 많이 드셨다.

그렇게 모녀의 식사를 마치고 난 엄마가 좋아하시는 커피를 내려 드렸다.


엄마는 오랜만에 봐서 좋다고 하시며 하룻밤을 묵어 가셨고 난 남은 무밥이 먹고 싶어서 소분해 달라고 해서 엄마는 또 무밥을 해서 냉동고에 넣어 두셨다.


맛 표현에 무색한 난 이번엔 아무래도 해야겠다 싶어서 엄마에게 "엄마 무밥이 도자기 같아"라고 했더니 엄마는 웃으시며 "그래?" 하셨다.

난 "응" 

엄마는 "그렇게 보면 그렇지"

난 "아니 색깔도 그렇고 도자기가 오랜 시간 노동에 무색무취이지만 아주 고급이잖아, 이 밥도 다르지 않은걸"

엄마는 " 아주 좋은 평이네" 미소를 보이시며 엄마는 가을에는 무조건 생각을 많이 하고 쉬라며 딸 걱정을 하시는 엄마에게 난 "엄마 쉬면 일이 두배야" 라며 웃으며 또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오늘 아침에는 엄마 덕분에 무밥을 먹고 나왔다.

인생도 이렇게 살 수 없을까? 무색무취이지만 고급스럽게 향이 나는 사람으로. 난 연꽃처럼 살고 싶다고 자주 말한다. 그리고 다음 생이 있다면 바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불가의 연기설에 의하면 지은 죄가 많으면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태어나기 힘들다고 하니 늘 나는 생각한다.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업을 지우며 살자. 이렇게 말하지만 힘들다. 그래서 오늘도 산 넘어 산으로 가는 일들이 내  앞에 있지만 즐기며 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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