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접 Nov 17. 2022

가장 색깔이 없는 곳, 서울

할머니는 일찍이 이야기하셨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사람도 말도 제주도로 가고 있다. 그래서 살짝 부러운 친구는 제주도가 고향이고 부산에서 일하는 친구이다. 이 친구는 태어나서 눈뜨고 본 게 바다이다. 부모님의 생계도 바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은 육지로 갈 것이라고 이를 물고 공부를 했단다. 결국은 제주도에서 가장 먼 서울로 왔다.

처음 선배들 앞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제주도에서 왔다고 하니 선배들은 잘 모르는 제주도 말로 소개를 한 번 해보라고 해서 친구는 당황하며 "저희 세대들은 그런 말 안 씁니다"라고 말해서 선배들은 "에이 제주도 사람 아니네" 하며 웃으며 사발식을 거하게 치렀던 기억이 있다.


친구는 서울에 합격을 하고 미련 없이 집에서 자신의 자취를 다 지우고 서울로 상경, 그 이후 집에서 보내는 택배물품은 우리와 엄청 달랐다. 우리는 비싸서 못 먹는 전복이며 해물들을 친구 어머니께서는 알뜰하게 포장해서 친구들과 먹으라고 했고 귤은 뭐 풍년이었다. 친구는 치를 떨며 아무렇지 않게 주위에 돌렸고 우리는 친구 덕분에 야금야금 잘도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을 졸업을 하고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난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갔지만 역사를 전공한 친구는 일본에 있는 대학에 대학원을 들어가서 이후 우리의 만남은 짧았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며 역사의식을 공감하며 더 깊은 친구로의 발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는 갈등을 한다. 서울에 취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제주도에서 가까운 부산에서 취업을 할 것인가. 집에서는 내심 부산에 있길 원했다. 식구들이 다 있는 곳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친구의 맘이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나 친구는 사람이라면 서울에 한 번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이면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나와 긴 이야기 끝에 부산에 살면서 재미가 없으면 서울에 오겠다고 했는데 재미는 개뿔 자기와 찰떡궁합이라며 지금도 부산에서 시민단체와 활동하며 아주 잘 지내고 있다.


가끔 친구는 서울은 어떤 곳이냐고 정의를 물어보는데 그때그때 내 대답은 다르다. 그럼 난 이렇게 말한다.

"참 색깔이 없는 곳"

친구는 "오호.. 국문과다워, 그런데 좀 디테일 있게"

난 "그냥 그 자체"

우리 할머니 말에 의하며 가만히 있으면 3등이라도 간다, 라는 늘 명언으로 하시는 말씀처럼 서울은 그런 곳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가만히 있으면 그냥 숨 쉬어지고 내가 누군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 내 정체성과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 고향과는 정반대인 곳.


고향은 남의 집 숟가락부터 집안일에 관심이 많아서 그날 저녁 반찬으로 올라가지만 여기는 절대 그럴 수 없어서 편한 곳. 육지에서 가장 외로운 곳.

난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긴 서울이 정이라는 단어 하고는 좀 거리가 멀지"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도 서울에 살았다면 답답함 이런 건 있었을 거야, 부산은 바다와 육지가 함께 있으니까 좋아"

난 "그게 제일 부러워"

친구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바다사람인가 봐, 어렸을 때는 되게 싫었거든 그런데 답답하면 나도 모르게 바다에 가, 그럼 좀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부산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런 게 있어"



아는 지인분이 내게 내 목소리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회색'이라고 했다. 가을과 겨울로 넘어가는 그런 느낌의 회색 말이다. 그래서 "그래요?"라고 다시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지인분은 "자기 좀 목소리가 쓸쓸해"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이 서울이 그렇다.

회색이다. 


색깔이 없는 도시 서울에서 얼마나 내가 버틸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그리고 늘 다짐을 한다. 버티자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자. 쉽지 않은 서울살이는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참 색깔이 없는 도시 나와는 안 맞다.

작가의 이전글 팥보다 정이 진한 게 붕어빵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