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일찍이 이야기하셨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사람도 말도 제주도로 가고 있다. 그래서 살짝 부러운 친구는 제주도가 고향이고 부산에서 일하는 친구이다. 이 친구는 태어나서 눈뜨고 본 게 바다이다. 부모님의 생계도 바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은 육지로 갈 것이라고 이를 물고 공부를 했단다. 결국은 제주도에서 가장 먼 서울로 왔다.
처음 선배들 앞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제주도에서 왔다고 하니 선배들은 잘 모르는 제주도 말로 소개를 한 번 해보라고 해서 친구는 당황하며 "저희 세대들은 그런 말 안 씁니다"라고 말해서 선배들은 "에이 제주도 사람 아니네" 하며 웃으며 사발식을 거하게 치렀던 기억이 있다.
친구는 서울에 합격을 하고 미련 없이 집에서 자신의 자취를 다 지우고 서울로 상경, 그 이후 집에서 보내는 택배물품은 우리와 엄청 달랐다. 우리는 비싸서 못 먹는 전복이며 해물들을 친구 어머니께서는 알뜰하게 포장해서 친구들과 먹으라고 했고 귤은 뭐 풍년이었다. 친구는 치를 떨며 아무렇지 않게 주위에 돌렸고 우리는 친구 덕분에 야금야금 잘도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을 졸업을 하고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난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갔지만 역사를 전공한 친구는 일본에 있는 대학에 대학원을 들어가서 이후 우리의 만남은 짧았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며 역사의식을 공감하며 더 깊은 친구로의 발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는 갈등을 한다. 서울에 취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제주도에서 가까운 부산에서 취업을 할 것인가. 집에서는 내심 부산에 있길 원했다. 식구들이 다 있는 곳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친구의 맘이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나 친구는 사람이라면 서울에 한 번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이면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나와 긴 이야기 끝에 부산에 살면서 재미가 없으면 서울에 오겠다고 했는데 재미는 개뿔 자기와 찰떡궁합이라며 지금도 부산에서 시민단체와 활동하며 아주 잘 지내고 있다.
가끔 친구는 서울은 어떤 곳이냐고 정의를 물어보는데 그때그때 내 대답은 다르다. 그럼 난 이렇게 말한다.
"참 색깔이 없는 곳"
친구는 "오호.. 국문과다워, 그런데 좀 디테일 있게"
난 "그냥 그 자체"
우리 할머니 말에 의하며 가만히 있으면 3등이라도 간다, 라는 늘 명언으로 하시는 말씀처럼 서울은 그런 곳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가만히 있으면 그냥 숨 쉬어지고 내가 누군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 내 정체성과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 고향과는 정반대인 곳.
고향은 남의 집 숟가락부터 집안일에 관심이 많아서 그날 저녁 반찬으로 올라가지만 여기는 절대 그럴 수 없어서 편한 곳. 육지에서 가장 외로운 곳.
난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긴 서울이 정이라는 단어 하고는 좀 거리가 멀지"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도 서울에 살았다면 답답함 이런 건 있었을 거야, 부산은 바다와 육지가 함께 있으니까 좋아"
난 "그게 제일 부러워"
친구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바다사람인가 봐, 어렸을 때는 되게 싫었거든 그런데 답답하면 나도 모르게 바다에 가, 그럼 좀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부산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런 게 있어"
아는 지인분이 내게 내 목소리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회색'이라고 했다. 가을과 겨울로 넘어가는 그런 느낌의 회색 말이다. 그래서 "그래요?"라고 다시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지인분은 "자기 좀 목소리가 쓸쓸해"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이 서울이 그렇다.
회색이다.
색깔이 없는 도시 서울에서 얼마나 내가 버틸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그리고 늘 다짐을 한다. 버티자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자. 쉽지 않은 서울살이는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참 색깔이 없는 도시 나와는 안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