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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Nov 15. 2022

팥보다 정이 진한 게 붕어빵이다.

썰은 이렇다. 내가 알게 모르게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친구는 대략 3명, 처음에는 알리지 않았다. 글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고 첫 번째 브런치 작가 합격 때에는 소문을 낼 만큼 다 내고 다녔다. 몇 없는 친구들은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난 어깨를 으쓱하며 다녔는데 1기를 마무리하고 탈퇴를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조언은 "힘들어도 계속 도전하는 게 너 아니었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다시 가입을 하고 지금은 야금야금 글을 쓰는데 다음에 노출되는 빈도가 없다 보니 친구는 "이젠 글 안 쓰니?"라는 농담을 한다.


가끔 다음 노출에 내 작가명이 뜨면 남일 같지 않아 주변에 동네방네 다 알리고 다닌다는 친구는 요즘 내 글에 힘이 빠진다고 힘을 내라며 부산에서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지난주 놀러를 왔다.


사실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번아웃이라고 집 밖을 나가기 싫었다.

하지만 오랜 친구의 방문에 내 표정을 들어내며 거절을 하기에는 미안해 "그래 와" 라며 짧은 메시지를 들고서 마중을 갔다.

친구는 환하게 웃으며 "서울은 뭣 하나 변한 게 없냐?" 하며 나를 반기는데 내 얼굴에서 숨길 수 없는 검은 그림자를 보며 "어째 얼굴 보소 , 나 죽겠네 하는 표정인데?" 하며 심각하게 나를 뜯어봤다.


나는 "그런 거 아니야" 라며 커피숍으로 갔고 친구는 커피를 마시며 "그러지 말고 좀 쉬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미 휴직을 한 번 한 상태에서 반납을 하고 나 스스로 이 짐을 지겠소이다 했는데 어찌 그러냐며 내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난 물릴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이 애매모한 상황은 오로지 나의 판단이라고 했다.


묵직한 분위기가 흐르고 친구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자신도 최근 자선활동에 문제가 생겼다며 모 아니면 도라며 내게 상담을 했다.

난 평소 친구의 성격이라면 아마 그냥 진행했을 거라며 조언을 해주고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친구는 "잠깐만 나 화장실" 그렇게 친구를 기다렸다.


10여분이 지났을까? 친구가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전화 룰 했지만 받지를 않았다. 알고 보니 그냥 테이블에 놓고 간 폰은 혼자서 진동으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뛰어 오며 친구는 "야 찾았다" 무슨 큰 행운을 얻은 사람처럼 헉헉 거리며 올라오는데 손에 무언가를 들고 왔다.

난 "이게 뭔데?"

친구는 "아니 우리 유리문에서 정화하게 45도 봐봐, 저기 붕어빵 팔잖아, 이야기하면서 나 저기 보고 있었거든 먹고 싶잖아. 나 올해 첫 붕어빵. 먹자"

난 어이가 없어서 "지금 이거 사러 간 거야?"

친구는 "야 다 먹고살아야 해"

그렇게 친구는 붕어빵을 2천 원 치를 샀다며 4마리를 들고 왔다.


난 "아니 왜 이렇게 비싸"

친구는 "물가 "

난 웃으며 "맛은 있네"

친구는 꼬리를 먹으며 "야 기억나? 우리 대학 때 이 시즌에 리포트 마치면 학교 후문에서 붕어빵 사서 계단에서 붕어빵 먹으면서 졸업하면 어디 들어가서 뭐 하겠다고 노래 불렀던 거, 그러고 너 그때 철학과 수업 교양 수업 대신 전공으로 들어서 나한테 인생수업 노래 불렀잖아. 내가 이제야 말인데 나 그때 좀 졸렸어.ㅋㅋ"

난 잠시 그때가 생각이 났다.

"야 나 그때 엄청 바빴어, 알바에 수업에 리포트에 장난 아니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번아웃이야"

친구는 "늘 넌 번아웃으로 살잖아. 누가 봐도 그런데 그거 알아?"

난 "뭘"

친구는"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누가 봐도 후회는 없겠다고 넌 살아, 그게 너 매력이야"

난 "칭찬을 이제는 그렇게 하냐?"


뜨거운 붕어빵을 먹으며 "이게 팥이 맛있네"

친구는 "아니지 , 팥보다 우정이 우정보다 정이 있지"

그렇게 4마리를 먹고서 우리는 사이좋게 밥집에서 백반을 먹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더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난 붕어 뻥 집 딸이다. 아빠의 연대보증으로 엄마는 평일 오후 6시 이후에 그리고 주말에 붕어빵을 파셨다.

동네 크게 붕어빵을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도움으로 엄마는 말도 안 되는 붕어빵을 파시겠다고 뛰어드셨다. 숫기도 없는 사람이 뭔가를 판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고 그렇게 내리 3년을 파셨다. 처음에는 태워먹은 붕어빵을 그렇게 먹었다. 동네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동네 사람이라면 다 아는 시장 사거리에서 "붕어빵 드세요" 모기 목소리를 내시며 파셨는데 시간이 흘러서 라디오를 틀어 놓고 장사를 하셨다.


겨울 방학이면 더 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엄마를 돕겠다고 아침부터 움직여서 수래를 끌어서 가면 아침 7시 그렇게 아침밥상에 국을 말아서 후루룩 먹고 가면 어찌어찌 준비하고 나면 8시에 오픈을 해서 오늘은 몇 마리를 팔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정신이 없으면서도 제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중에는 반 친구들이 많이 와서 많이 팔아주었다. 엄마보다 더 잘 뒤집어서 농담으로 "엄마 나 붕어빵 장사할까?" 하고 웃었던 기억도 있다.


사람들은 붕어빵은 팥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그 말도 맞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정이 팥을 이기는 것 같다. 한 마리 더 드리는 그 정, 그 정 때문에 오고 정 때문에 더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친구가 전해 준 붕어빵도 팥보다 진한 정으로 받은 붕어빵 올해 처음 받은 붕어빵은 정으로 받은 붕어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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