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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Nov 09. 2022

번아웃이 신의 한 수라고요?

처음 난 내가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기업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이런 증상을 겪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다시 신발을 끈을 묶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심포지엄과 콘퍼런스 3개를 하고 앞으로도 3개 정도 더 있을 하반기 일을 앞두고 눈코 뜰새 없어서 하루에도 몇 번을 확인을 하고 확인을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실수가 있는 법, 결국은 앞 콘퍼런스는 실수가 있어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못했다.


나는 어느 정도 완벽주의자다. 그날은 다리도 풀리고 맘도 풀려서 몰래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쳐야 했다.

장기간 프로젝트와 함께 한다는 것이 발목을 잡았는지는 몰라도 앞으로 적어도 5년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울기만 할 수 없어서 경험을 한 동기들에게 의견을 듣고서는 주말에도 나가서 일을 했다.

결국 올 것이 왔다.

번아웃이다.


정신과 상담 날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말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더 이상 약을 올리면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경고를 주셨다.

내가 처음 정신과를 다니게 된 건 공황장애와 광장 공포증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대학 다니겠다고 서울 왔을 때 난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식은땀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결국은 도착 지점까지 몇 번의 지하철 역을 내리면서 도착을 해야 했고 엄마는 단순히 장이나 내부 문제를 생각하시고 시간을 내서 내시경을 하자고 하셨다. 결국은 내시경을 했는데 결과는 내가 너무 예민해서 위염이라는 결과지를 받고서 식은땀을 내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판정을 받고서는 내 병원은 정신과를 가야 한다는 시간까지는 3개월이 더 걸려서였다.


그날은 친구와 신촌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내렸는데 갑자기 어지럽고 숨을 쉬기 힘들었다. 친구는 나를 기다린다고 무심히 앉아서 기다렸다. 난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에 내 상황을 말하고 화장실에서 토악질을 하고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을 본 친구는 너무 상황이 심각하다고 녹색창을 검색하고서야 내가 정신과를 가야 한다며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난 거기서 정밀 검사를 받고서 공황장애와 광장 공포증을 진단받았다.


약을 먹고 많이 호전되었다. 그리고 대기업을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다가 말미에는 가면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았다. 그래서 또 약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내 병명은 늘어서 불면증이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일주일에 단 30분도 잘 수 없었다. 약을 줄여 버텨보겠다고 이를 악 물었지만 결국 지고 난 병원 문을 두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약에 의존도를 줄이며 처방을 주셨고 그날은 정말 푹 잤다.

그렇게 난 지금도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다. 결국 이렇게 약과는 뗄 수 없는 사람이다.


지난주 콘퍼런스를 망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약을 먹어도 잠을 잘 수 없어서 내내 고민을 하다가 병원 예약 날 다시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한 결과 난 번아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일이 많아서 혹은 마음이 힘들어서 번아웃이 오죠.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잠시 쉬어가자, 라는 마음의 신호이니 천천히 무슨 일이든 천천히 하시죠"

미소를 보이시며 최대한 환자에게 안심을 보여주시는 의사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그런가요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저도 이 일 하면서 번아웃 옵니다. 의사는 뭐 신인가요?"

껄껄 웃으시며 "하지만 어떤 일이든 양면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좋게 생각하고 편하게 너무 예민한 성격이라는 건 아시죠?"

난 "네"

그렇게 난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 것 같다. 내가 주체가 되는 심포지엄은 나 자신을 들들 볶았다. 그래서 몇 번의 리허설을 했는지도 모른다. 옷의 핏감 때문에 다이어트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뭘 했나 모르겠다.


언젠가 엄마가 그러셨던 거 같다. 아빠가 빚보증으로 줄줄이 이자가 너무 많아 봉급이 들어와도 술술 돈이 나가니 손에 쥐는 것은 쥐꼬리라 엄마는 어이가 없으셨단다. 그래서 이건 뭐지? 했는데 나중에 돌아서 보면 이것도 돈에 소중함을 알려고 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어떻게든 또 살아지는 이건 뭐지? 하고 헛웃음이 나셨단다. 생각하면 우리 식구는 살 수 없었는데 못 살겠다 하면 또 어디서 살아지고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불을 끄고 자식들 얼굴 보면서 엄마는 늘 감사하셨단다. 그리고 처음에 있었던 아빠의 원망을 지우시고 더 열심히 사셨다고 회고하셨다.


번아웃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이제는 신발의 끈을 조금 풀고 시작하려고 한다. 배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는 어쩌면 이 시대의 속도에 적응 못하는 사람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 몫의 일 , 내 방식으로 최대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설혹 그 속도를 따라간다고 해도 난 분명 넘어질 것이다. 그러니 정답 없는 이 인생을 내 속도로 부지런히 걸을 수밖에, 병원을 나오면서 말했다.

고마워 번아웃  내가 잘 보면서 살게. 주변을 살펴 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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