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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Nov 03. 2022

버스 안에서 첫사랑을 만날 확률은

그렇다, 버스 안에서 첫사랑을 만났다. 좀 됐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난 요즘 거의 야근이다. 일도 일이지만 요즘 복잡한 일거리가 있어서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버스를 탔다. 그러고도 모자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노트북을 펼쳐 들고 일을 미친 듯이 한다. 멀미는 예전의 이야기, 이제는 베테랑이 되어서 굽이치는 커브길에서도 노트북을 떨어트리지 않고도 일을 한다. 이 정도면 나 스스로에게도 칭찬이다.


그날은 날이 좀 차가웠다. 이 정도 입으면 되겠지 하고 코트를 입고 나간 날이다. 집에 도착하기 마지막 정거장을 지나는데 버스가 멈췄다. 그리고 사람들이 타는데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남자가 올라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 남성이 탔다.


난 나도 모르게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렇다.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난 태어나서 연애를 딱 한 번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첫사랑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한참 싸이월드가 유행이었을 때 그때 연락을 해서 친구로만 13년을 지냈다. 난 남자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그냥 연애에 별로 로망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로맨스 계열의 소설을 읽지 않은 게 원흉이었는지 연애,라고 하면 그냥 인연이 있어야지 하는 그놈의 인연 타령이었다. 그랬으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내 인연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친구는 늘 연애를 했다. 그러고 나에게 여자 심리에 대해서 물어보고 그럼 난 글로 배운 로맨스를 글로 이야기해줬다. 잦은 연애를 하는 친구에게 농담처럼 "넌 대학을 여자 만나려고 갔니? "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면 "야 나 학점 좋아서 장학생이거든"이라고 받아쳤다. 정말 공부도 잘했다.

야금야금 나에게 자신을 남자 친구로는 어떻냐고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난 웃으며 "무슨 실없긴 , 간다" 하고 난 쿨하게 굿바이를 했다.


친구는 여자 애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난 그게 싫었는지도 모른다.

하얀 피부에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 피아노도 곧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는 그 나이 또래에는 인기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춘 그런 학생이었다. 그래서 옆 학교에서도 소문이 났었다. 그래서 난 나 아니라도 인기 많은 애가 왜 나에게?라는 의문이 늘 있었다. 그 의문이 풀린 건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대화가 잘 통했다. 가치관과 방향성이 같았다. 그래서 늘 만나면 시간이 부족했다. 오후 6시에 만나서 새벽 3시에 헤어지는 친구였다. 시골에 내려가면 공식적으로 엄마 아빠가 허락해주시는 친구였다. 원래 우리 집은 통근 시간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패스였다.

그래서 늘 이 친구를 만나면 엄마는 열쇠를 주셨다.

단골로 가는 주점 사장님도 열쇠를 주시면서 가셨다. 그렇게 헤어지면 그다음 날 오후에 만나서 다시 또 헤어지면서 결국은 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인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13년을 잘 지내다가 이 친구가 어느 날 결혼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정말 나에게는 소울 메이트인데 잃어버리기 싫어서 처음에는 거절을 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집요함에 난 단서를 걸었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을 수 있으면 이라는 단서였다. 친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생각해보자"라는 미묘한 말로 마감을 했다.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서 30살에 헤어졌다. 연애 3년을 하고 헤어졌다. 친구들은 우리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6학년 때는 매일 치고받고 싸우니 저러다 사귄다고 말들을 많이 했지만 우리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룰은 깼졌고 결국 결말은 헤어짐이다.


난 어이없는 헤어짐을 통보를 받고 1년을 거의 귀신처럼 살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렇게 사는데 어느 날 보 다보다 못한 친구가 집에 왔다.

그 친구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너 이렇게 사는 거 그 친구는 아니? 그 친구 지금 공부하고 있어"

순간 뒤통수를 크게 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몰골을 봤다. 형편없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그 친구의 원망이 나에 대한 원망임을.

그날 나는 제일 비싼 옷을 사 입었고 살던 집을 빼고 이사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모진 말을 많이 하고 간 친구는 내게 미안했는지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난 그게 고마워서 울었다. 훗날 그 친구를 만나서 고마웠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나와 첫사랑은 악연이 되었다. 반가울 리 없는 그 관계에서 버스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사람들로 북적였던 그날은 자리가 없었다. 내 옆 빈자리와 맨 앞자리. 난 나를 몰라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 친구도 나를 유심히 봤다. 난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아닌 척했다. 하지만 내 옆자리로 와서 아무 소리 없어 앉아버렸다.


그때부터 내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좋아서 뛰는 게 아니라 방어기제였다.

난 무조건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구간이 내가 사는 집인데 그럼 이 친구도 집이 근처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복잡한 그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내리려고 할 때 "몽접아 "라고 불렀다.

난 나도 모르게 "사람 잘 못 보셨어요"라고 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봤다.

그리고 내렸다.

그리고 난 재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다행히 더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버스에서 만난 내 첫사랑은 나를 어떻게 봤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난 사람을 잃은 게 아니라 인생을 잃었다고 자평을 했었다. 20대에 그 친구를 빼면 남은 게 없다. 늘 함께 했기에 뺀다면 나 혼자서 뭔가를 한 게 없다. 그래서 늘 허전했고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헤어진 이유를 물었다.

그때 딱 한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난 인생을 걸었고 그 친구는 자신을 걸었나 봐"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친구는 "길다 길어"

난 웃으며 "그래서 나 이제 인생 안 걸어, 걸어보니 힘들더라고"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시는 내게 친구는 "무섭다 무서워" 하며 웃었다.

그때는 그랬다. 정말 내 인생의 구원자라고 생각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언제든 사라진다고 해도 함께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인생을 걸었다. 그래야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헤어지고 보니 남은 게 없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걸었으니 남은 게 없다는 건 정확한 계산법인데.


이제는 인생을 건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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