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접 Jan 05. 2023

기찻길 옆 내 작은 집

내가 살았던 고향에는 기차가 다니는 선로가 있었다. 그래서 항상 대로를 건너면 "댕댕댕" 울리면서 기차가 지나가고 그곳을 지키는 기관사님이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을 잘 지켜 주셨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그해 우리 동네에는 태풍으로 정말 어려운 집이 한 두 집이 아니었다. 태풍의 후유증은 컸고 집이 무너진 집은 한 손 한 손 거들며 그렇게 어렵게 복구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정리가 될 즈음 동네에 묘한 소문이 들렸다.


바로 그 철도길에 여자애가 철로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아주 컴컴한 밤이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마침 기차가 오기 직전에 걸어가서 기차에 부딪혀 죽었는데 산산조각이 났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동네 사람들은 아닐 거라고 이야기를 했고 나도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소름이 끼쳤다. 결국은 그 이야기는 소문으로 남았고 여자아이의 정체도 누군지 모르게 넘어갔다.

하지만 난 잔상에 남아 늘 건널 때는 그 이야기가 내 목구멍에 남은 사탕처럼 이물감이 남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잊으라고 하셨다.


난 버스보다 기차를 좋아한다. 이 영향은 어릴 때 기찻길이 다니는 집에서 살아서인 듯하다. 늘 부러웠다. 가방을 메고 집으로 가려면 "댕댕 부왕~~~" 하면서 가는 그 철로 위에 기차 안의 손님들이 부러웠다.

속으로 '저 손님들은 다들 돈이 많겠지? ' 혹은 '좋겠다.. 나도 가고 싶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

내가 기차를 이용할 때는 홍익회라는 글자를 두고 과자나 음료수를 간단하게 파시는 아저씨가 계셨다. 눈치껏 엄마에게 사인을 보내면 엄마는 아주 간단하게 사라고 하시면서 정말 간단하게 달걀과 음료수를 샀고 아빠가 더 사주시면 초콜릿을 사 먹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기차의 추억이라면 아마도 내가 대학을 처음 가서 집으로 돌아갈 때 청량리 역에서 먹었던 가락구수다. 볼 것 없는 국수이지만 그래도 칼칼한 국수가 내 몸까지 따뜻하게 해 줘서 먹었던 국수였는데 아이들은 역과 역사이에서 먹는 그 짧은 순간에 먹는 가락국수가 최고라며 내게 권했지만 난 뭐든 쫓기는 걸 싫어해서 그런 낭만은 없다.


그렇게 난 기찻길 옆 집에서 살았다. 그렇게 살고 이사를 가고 가끔 그리워지면 그 길을 걸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기차를 구경했고 사람들은 시끄러워서 어떻게 살았냐고 물었는데 난 그것도 적응이 되면 익숙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과 가끔 이야기를 했다. 우리 성공하면 저 기차를 타고 서울 가자고, 그렇게 우리는 대학을 갔고 서로 응원하며 같은 출구로 고향을 나왔을 때는 더 이상 그 기찻길 옆 우리 집은 없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그 기찻길 옆 우리 집은 따뜻하고 정겨운 집이었다.


가끔 드라마에 나오는 그림 같은 집들이 있다. 그러면 내 기억에는 이 집이 겹친다.

사람마다 잊지 못할 집이 있겠지 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뮤즈, 나의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