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접 Jan 05. 2023

정동진 다시 가도 똑같을까?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늘 바빴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타야 했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집에서는 작은 음식점을 했다. 그래서 바쁜 손을 보태어서 나름 노력을 한다고 늘 바빴다. 나도 바쁘기는 매 한 가지였다. 그때가 아마도 23살이었을 것이다. 나도 기숙사를 정리하고 그러고도 2주 정도 더 있다가 고향으로 갔다. 기말고사를 다 치르고도 내려가지 않아서 친구는 언제 고향으로 오냐고 나에게 물었고 난 아직 스터디가 덜 끝나서 아마도 더 걸릴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고서 그렇게 내려갔다.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가게일을 도우니 오후 2시부터 새벽 12시까지는 늘 빠듯한 시간이었다. 어쩌다 만나면 오후 6시가 최선이었는데 그것도 눈치가 보인다고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가끔씩 만나면 수없이 이야기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공통된 주제가 하나가 있었다.


졸업을 하면 대학원을 갈지 아니면 직장을 잡을 것인지 늘 뜨거운 주제였다. 우리는 둘 다 공부가 좋아서 대학을 가서 공부를 지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가지원 프로그램을 찾아서 최대한 이용해보자고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결론을 보고서 어려운 숙제를 풀었을 때 친구는 "아 이 겨울에 바다만 보고 왔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나도 그 말이 맘에 남아서였을까 머릿속에서 바다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언제였을까, 길을 가는데 여행사라는 간판이 크게 보였다.

무작정 들어갔다.

들어가는데 "딩동" 하는 벨이 울렸다.

그리고 여행사 운영 관계자분이 인사를 해주셨다.

"안녕하세요" 난 순간 얼음이 돼서 "네" 하면 털썩 앉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어떻게 오셨어요?"

난 뭐라고 해야지 하는 순간의 생각에 "저기.. 바다.."

내 대답이 너무 엉뚱했을까, 여행사 직원분은 "그럼 멀리 아니면 1박 2행?"

난 "아니요, 정동진"


그랬다. 고등학교 때 정동진을 다 함께 가서 구경을 하고 온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라면 우르르 가서 우르르 내려서 그냥 여기가 바다다,라고 말씀하시는 담임 선생님을 뵙고 그렇게 맛없는 김밥을 먹으며 친구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니 이렇게 멋없는 곳은 처음이야" 하면서 투덜거렸던 곳. 마치 초등학교 졸업여행으로 경주를 가서 가긴 갔는데 기억에 없는 그런 여행이 정동진이었다. 그런데 왜 난 정동진을 왜 말을 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난 그렇게 지르고 나니 그때의 시간이 12월 27일이었다. 


아주 밝은 톤으로 직원분은 "정말 운이 좋으십니다. 딱 4 좌석이 남았어요, 어떻게 예약해 드릴까요?"

난 "네"

다시 물어보셨다. "그럼 혼자 아니면.."

순간"두 장 주세요"

그렇게 난 두장을 예매하고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순간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여동생과 가려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여동생은 서울을 갈 거라고 했다. 속으로 '이런 패스' 하면서 그러다 갑자기 친구가 생각이 났다.


나도 그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난 그렇게 친구집까지 갔다.

친구집에서 우리 집 까지는 5분 거리다. 

"저기요" 하면서 문을 두드렸다.

벨을 누르면 되는데 맘이 급했다.


그렇게 몇 번을 두드렸을까 친구가 나왔다.

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낼 테니 문자보고 약속을 지키라고 했다.


그렇게 보낸 문자는 오후 2시 동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난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몰라 난 늦을 것 같아 책을 보고 있는데 정말 왔다.

"야 나 좀 엉성하지?"

그렇다. 자고 일어난 티가 팍팍 났다.

"어제도 일했냐?"

친구는 "요즘 매일"

난 "그렇구나, 바쁘겠네?"

친구는"그렇지, 작아도 식당이니까"

난 "그렇구나"

난 속으로 건네지 말까를 수없이 고민했다.


친구는 배가 고프다며 이것저것 주문했고 난 내가 사주겠다고 했다.

친구는 자기가 사주겠다며 미리 돈을 냈고 난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후식으로 커피를 다 마시고 가려고 할 때 난 아주 급한 용기를 내며 "저기 바다 보러 안 갈래?"

친구는 눈을 크게 뜨며 "갑자기?"

난 "응 갑자기"

친구는" 좋아, 그런데 표는?"

난 주머니에서 "여기"

그렇다 그건 첫 해를 볼 수 있는 시간대를 끊은 정동진 표였다. 새벽 2시 후반 대라 친구에게는 아마도 가장 빡빡한 시간대였다.

친구의 표정이 미묘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며 "언제 예매했어?"

난 "오늘"

난 "가기 싫으면 안 가도 괜찮아, 표 굳었다 생각할 테니 의무감 그런 거 가지지 마. 난 그 시간에 갈 거야 그러니 알아서 각자 생각하자"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난 그 시간대에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표를 확인해주시는 분에게 확인을 받고 기차 안으로 가니 연말은 연말이었다.

사람들로 꽉 찼고 출발하기 5분 전에 방송이 울렸다.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라는 내용과 짐을 잘 간직하라는 내용이었다.


내 옆자리 친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렇게 문이 닫힌다는 방송이 나오는데 난 거의 포기를 했다. 식당일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이해를 했다. 그런데 어디서 급히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야 나 안 늦었지" 하며 체육복을 입고 왔다.

그렇다, 일을 마치고 거의 그대로 온 티가 팍팍 났다.


난 웃으며 "야 뭐야" 하며 친구를 봤고 친구는 배가 고프다며 홍익회 아저씨에게서 과자를 여러 개 사서 먹으며 그동안의 손님들을 이야기하며 내 덕분에 바다를 봐서 좋다며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 줬다.

난 속으로 흐뭇했다.


그렇게 우리는 내려서 처음으로 넉넉한 시간을 두고서 해를 봤다.

처음에는 내려서 너무 추워서 "야 너무 길다 시간이.." 했는데 해가 뜬다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우리도 그렇게 해를 보는데 나는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친구도 소원을 빌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을 때는 친구는 비밀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 둘은 거의 떡실신으로 고향으로 복귀를 하고 다음에 갈 때는 낮에도 가보자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싶다. 훗날 그 친구는 그 정동진 표를 받고서 하루종일 기분이 날아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은 식당에서 일하는 시간이 그리 빨리 갈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는 고등학교에서 간 정동진은 기억에 없고 그 친구와 간 정동진이 기억에 남는다.

점심에 기차를 탔는데 다소 늦게 타서 근처 백반집에서 밥을 먹었다.


친구는 나에게 웃으며 "나 네가 흰 봉투에서 뭔가 꺼내길래 편지인 줄 알았어"라고 말했다.

난 웃으며 "그럴리는 없어. 문자 있잖아"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웃으며 그 이후는 정동진은 가지 않았지만 두고두고 정동진을 이야기했다.

참 여행은 알 수 없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갔는데 기억이 다르고 내용이 다르다.


같다면 같은 커피숍을 기억하고 같은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 이외에는 다르다는 것을 연애하면서 알았다. 웃으며 한참을 깔깔 웃으며 농담으로 "나 말고 다른 여자 아닐까?"라고 말하면 정색을 하고 농담이라도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추억을 망치지 말라며 근엄하게 이야기하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며칠 전 집을 정리하다가 그때의 사진이 나왔다. 헤어지면서 거의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야금야금 그때의 추억들이 나온다. 정동진을 검색하니 여전히 그때의 그 자리들이 있다.

내겐 정동진이 그렇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 곳, 그리고 내 나약한 용기를 강한 결심으로 만들어 준 곳. 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곳이다.

정동진, 조만간 가 볼 생각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정동진은 정동진으로 잊히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기찻길 옆 내 작은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