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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an 16. 2023

내가 소개팅을 하지 않는 이유.

"자기 한 번만 나가봐" 이 이야기를 올해만 3번은 들은 것 같다. 참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관심도 많고 관대하다. 그리고 어떨 때는 왜라는 단어를 쓰게 한다. 하지만 이것도 난 나에 대한 관심이라는 단어로 호환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단어에 "접어주세요"라는 격한 단어로 받아쳐야 할 것 같아서다.


좀 웃긴데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소개팅과 미팅을 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대학 때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는 꿈이 커서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에 공부가 바빴고 대학 때는 원하는 과를 갔으니 공부를 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내가 막상 공부를 하고 싶은 분야가 '비평'이라는 분야라는 걸 알고서는 내 얕은 지식에 허우적하느라 시간은 없고 배우고는 싶고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난 남들은 새 학기 봄꽃에서 사진촬영을 할 때 국립도서관에 논문 예약제를 걸어두고 열심히 부지런히 다녔다.


친구들은 "야 우리 학교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거든"이라며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면 난 "그래봤자 에세이 뭐 잘 나가는 책 여러권이잖아"라고 펙트를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어.. 그렇긴 하지"라고 또 말을 줄였다. 그래서 난 아예 논문 예약을 하고 가서 책을 봤다. 그래도 시간은 없었다.


아, 한 번은 웃지 못할 강제 소개팅이 있었다. 한 번은 그날은 가을이었다. 여름의 끝머리에 가을이라 다들 노곤해 있을 때 나도 잠을 잤다. 너무 깊이 잤는지 진동이 오는지도 모르게 자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저기요 폰"이라고 나에게 부탁을 했다. 난 죄송하다고 했고 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가 10통이 넘게 왔다. 이런 난 급히 나가서 전화를 하니 친구는 알고 보니 기숙사 단짝이었다.

"몽접아, 지금 도서관이지?"

난 "응"

친구는 "우리 밥 먹자, 내가 사줄게 , 학교 후문 우리 가끔 먹는 경양식 알지?"

난 "나 그냥 기숙사 갈게 , 귀찮아"

친구는 계속 "그러지 말고 먹자, 나 혼자 먹기 그래서 그래"

난 "알겠어" 그렇게 난 그날도 어김없이 체육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런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몽접아 여기"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는 벌써 6대 6의 소개팅 자리에 주인으로 있었다.

난 순간 헉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도착은 했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여기 앉으면 되는 거야?" 라며 앉았다.

문제는 바로 터졌다.

다들 웃었다.

난 순간 놀라서 "왜 웃어?"

친구는 "몽접아 너 잤어?"

난 "어.. 피곤해서 자다가 왔어"

친구는 큰 거울을 주며 "얼굴 봐"

그렇다. 난 평소에도 국어사전을 들고 다녔는데 그날도 국어사전을 밑으로 하고 이마에 붙이고 잠을 잤다. 그동안 이마에 국어사전이 그대로 복사가 되어서 선명하게 국어사전이라는 글씨가 붙여져 있었던 거다.

난 "어..." 급히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자리에 돌아왔다.

그리고 음식을 먹고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친구는 "그럼 우리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각자 폰 번호 교환하죠"

난 이건 또 뭐야 하는 생각에 심드렁하게 있는데 상대편 남자 대표가 "그럼 이렇게 하죠, 저희들은 각자 선물을 가져왔어요.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 폰 번호 교환하죠"

결국은 그렇게 선물과 번호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시간은 흘렀고 어처구니없게도 난 6명 중 4명에게 선물을 받았다.


난 "저 왜 주세요?"라고 난 말했고 남자는 "아니.." 하며 당황해했다.

그래서 난 "저 폰 번호 드릴 의향이 없는데. 연애 관심도 없고 친구가 밥 먹자 해서 왔어요. 죄송합니다" 하고 그 자리를 나왔다.

기숙사 친구는 친구들에게 "몽접이 그날 인기 최고였어" 하며 그 이야기만 한 학기 사골로 먹었다.


이후는 소개팅을 하지 않았다.

난 운명론자이다. 물론 그 운명타령 하다가 남자친구를 만나 3년의 연애를 하고 지금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다. 난 그 운명의 남자가 내 인생을 바꿨고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정말 그 순간이 지나고 나니 남는 건 없었고 그 유명한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대사는 내 나름의 답은 사람이 변한다였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한 달을 고민해서 만난 사람도 이렇게 변하는데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 운명이 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앞서니 난 누굴 만나도 비관적이다. 그래서 괜히 상대에게 미안함이 들어서 이미 내가 짜놓은 결말에 주인공으로 살게는 하기 싫어서 소개팅을 하지 않는다. 괜찮다. 이렇게 혼자 살아도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만나겠지 한다. 혹 못 만나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짜인 극본에 나갈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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