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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an 12. 2023

구멍 난 양말에 터진 울음.

몰랐다. 양말에 구멍이 났는지. 매일 갈아 신으면서도 내 양말에 구멍이 났는지 몰랐다.

때는 회식의 꽃이라는 저녁이 이었다. 다들 집으로 가고 싶어서 시계만 보는데 연구원장님의 호출이었다.

연말 연초의 분위기에 차가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다들 오늘 바쁜가?"

아무 말이 없었다. 정말 아무런 대꾸 없는 그 분위기는 차가운 정도를 넘어섰다.

말한 사람이 죄인이 되는 그 분위기를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였다면 말을 다 했다.

그랬다.


약간의 기침을 하시며 다시 언급하셨다.

"근처에서 짧게 밥을 하지. 내가 예약을 했어"

그때 손을 드는 직원 "저 오늘 약속을 미리 해서.."

이제는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 그럼 빠지고 " 이러다 거의 손을 들 분위기가 되자, "가급적이면 참여하자고" 하면서 돌아선 그 모습에서 내 목소리도 나가고 싶었다.

'전 잠을 자고 싶은데요' 하지만 늦었다.

그렇게 나가신 후 "아니 우리는 항상 이렇더라, 문제 꽝!, 선전포고야" 웅성해지는 분위기에서 난 소음을 정리하고 내 일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일들을 포스트잇에 정리하고 가방을 정리했다.


안 그래도 동기가 빠져서 마음이 안 좋은데 회식이라는 글자가 머리가 아팠다. 그렇게 간 곳은 일식집이었다.

요즘 고기를 굽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 선택한 회식자리 한 사람씩 자리에 앉게 된 좌식 의자에 내가 앉을 무렵 친한 동료가 "자기 양말에 구멍 났어" 웃으며 이야기했다.

난 "제가요?"


난 "몰랐어요.." 밀려오는 화끈함은 내 몫이었다.

친한 동료는 "아니 그 정도는 양반이야. 나 지난주에 스타킹 정말 나갔는데 그것도 모르고 잠만 잤었잖아" 

나를 위로하는 듯한 그 말이 내게는 비수처럼 꽂혔다.


동료가 미워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이 싫었다.

얼마나 번다고 이것도 모르고 다니는지 그냥 싫었다.

민망함 그냥 그걸 넘어서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자리에 다 앉고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음식을 먹는데 안 그래도 간장종지인 나는 더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물만 마셨다.

그리고 난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그때가 아마 중학교 때였을거다. 5일장 엄마 따라갔는데 엄마가 유심히 뭔가를 보시더니 "이번에는 그냥 이걸로 사야겠다. 뭐 이제 결혼도 했고" 하시면서 산건 5천 원짜리 속옷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교육하신 것은 정말 많은데 옷 잘 입는 사람은 속옷도 잘 챙겨 입는다는 교육이었는데 당신은 그러지 않으셨다. 물론 가난한 우리 형편에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게 난 싫어서 "엄마 이거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엄마는 "너는 커서 좋은 거 입어" 하시며 이야기를 끝내셨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내 양말을 하염없이 봤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근처 편의점을 찾고 찾아서 양말을 사서 바꿔 신었다.

참 사는 게 별것 없는데 뭘 얼마나 벌겠다고 이것 하나 확인하나 못하고 살았나 싶어서 눈물이 나는데 편의점 주인아저씨는 "아가씨 날이 많이 풀렸죠?" 하는 물음에 난 평소와 다르게 "네"라는 짧은 대답을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회식에 복귀를 하고 나니 다들 얼굴들이 불콰했다.

그리고 나에게 양말에 구멍이 났다는 사람은 더 술을 마셔야겠다며 그동안 밀린 육아와 곧 있을 명절 스트레스를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이야기하며 회식 다운 회식을 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각자 신발을 신고 나가려고 하는데 친한 동료는 "어, 그 양말 아니네?"라고 물었고 난 "주변에서 샀어요"라고 짧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어진 대답은 "그래 자기 너무 열심히 산다." 하며 내 등을 두드리는데 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얼마나 살았다고 이런 생각을 해야 할까.

결국 회식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남겨주고 떠났고 버스에서는 잔상에 남는 내 양말이 나에게 이제는 좀 천천히 살으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양말을 더 자주 봐야겠다는 웃지 못할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그러겠지. 실수 아니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난 그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냥 화가 났다.

그래서 구멍 난 양말인데 내 인생이 구멍이난 것 같아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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