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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an 26. 2023

나침반을 선물로 받다.

나만큼 너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언제였을까. 아마도 중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아. 1등은 첫 번째 자리 꼴등은 마지막 43번 자리. 난 처음에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서 내가 살아남는다는 동사를 거기에서 배웠던 것 같아.


그리고 난 생각했어. '아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이렇게 경쟁사회를 살아야 한다면 살고 싶은 만큼만 살아야겠다' 그랬어. 그래서 난 더 열심히 책을 읽었고 문학에 빠졌는지도 몰라. 내가 희극인이 아니니 문학을 읽으면 그 주인공처럼 살 수 있으니 그때만큼은 그 주인공으로 살아서 아무도 모르는 그 세계에서 난 몰입형 인간으로 살았어.


그리고 고등학교를 가고 더 치열하게 살아야 했어. 잠깐 적당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내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수학을 붙잡고 있었을 때 누군가 그랬어 "몽접아 넌 왜 공부하니?" 그때 난 그랬지. "국문과 가려고" 그 친구는 미안하지만 전교 꼴찌였지. 아무도 그 친구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는데 그 친구는 내 앞자리에 앉았어. 그건 담임 선생님의 뜻이기도 했지. 왜냐면 유일하게 말하는 사람이 나였거든. 난 상관없었어.


그리고 난 대학을 가고 깊은 갈등과 고민을 했지. 정체성이었어.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시작을 해야 할까. 그래서 미친 듯이 책을 찾아서 읽고 또 읽었지만 찾을 수 없었어. 허무함. 좌절감. 이루 말할 수 없는 쓴 맛을 알아 버리고 책을 창고에 감금하고 난 훌쩍 떠났지. 그리고 여행을 다녔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 가난했고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어. 아무 말 없이 살았어. 내 안의 분노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면 믿을까? 그건 누구의 원망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어.


스스로를 구원하는 건 자신이 하는 건데 애초부터 시작하지 말아야 할 싸움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시작한 셈이지. 언제부터였을까. 친구들은 나에게 좀비라고 불렀어.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 6시에 도서관에 앉아서 또 공부하는 나를 보고 좀비라고 부르는 나에게 무표정하게 대꾸하면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어. 세상 모든 게 귀찮아서 그냥 공부를 했던 것 같아.


그날이었어. 옥탑방에서 학교를 가는데 문구점을 지나쳤지. 갑자기 들어가고 싶은 거야. 뭔지 모를 기대감이라고 해두자. 아주 어릴 때 먹었던 군것질도 보였고 감성적인 물건들이 보였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나침반, 그래 나침반이었어. 속으로 생각했어. '그래 저걸 사자' 난 생각했지. 저걸 사면 내가 사는데 방향을 알려 줄지도 몰라, 그리고 난 길치니까 이 복잡하게 살아가는 서울생활에 낫겠지. 우리 할머니의 지론에 따르면 눈뜨고 코베인다는 서울에서 저 정도의 물건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지.


그래서 난 자세히 봤어. 세상에 그런데 말이야. 나침반도 다 가격이 다르고 무게가 다르더라고. 그래서 난 흥정을 했지. 아주머니는 나에게 왜 사냐고 물어보셔서 난 웃으며 "그냥요"라고 했거든 그게 더 이상했는지 더는 묻지 않고 가격만 이야기하셨어.

처음 산 나침반은 정말 초등학생용 나침반을 샀어. 그리고 난 그 이후로 3년에 한 번씩 나침반을 구입해.


아주 공을 들여서, 왜냐고? 그럼 뭔가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내 삶의 자세가 흐트러질 때 말해 줄 것 같거든.

일종의 호신용이라고 해두자. 그래서 고가의 재품을 사는 편이야. 우리 할머니가 아시면 돈 함부로 쓴다고 혀를 차시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누구든 하나씩은 이런 물건들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사 모은 나침반은 내가 퇴직을 하면 여행을 갈때 다 들고 다닐 생각이야. 어떤 놈이 사기를 치는지 아니면 어떤 놈이 내게 길잡이가 되어줄지, 나는 알아보려고 해.


아주 어렸을 때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2학년 정도였을 거야. 아빠가 오목을 가르쳐주셨어. 정말 재미있었지. 한 달은 내내 지는 판을 했는데 난 승부욕이 있어서 아빠를 이기기고 싶었어. 그래서 엄마에게 장기판을 사달라고 해서 나 스스로 오목을 뒀지. 그리고 마침내 아빠를 처음으로 이기고 나서 아빠에게 "아빠 나 이겼어"라고 했을 때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너 자신을 이겨라"라고 말이야.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난 아빠를 이겼다는 사실에 기뻐서 흥이 났는데 아빠는 내게 바둑을 해보라고 하셨지. 기찻길 옆 우리 집 옆에는 그냥 바둑을 하는 할아버지들이 많으셨는데 난 고수 중에 고수인 할아버지께 배웠어. 아무것도 모르는 얼치기인 나에게 웃으시며 한 집 한 집 알려주셨는데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 하지만 한 번도 화를 내시거나 고함을 치신적은 없어. 지금 생각하면 내가 포기를 할까 하고 유혹에 빠질 때즈음 져주셨던 것 같아.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를 가고 다시 찾아뵈었을 때는 이미 치매로 고생을 하고 계셨지. 그런데 무서운 건 말이야. 그분이 그 치매에도 바둑판이 옆에 있었던 거야. 난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사람은 참 자기만의 무언가가 있구나를 그때 알았지 뭐야. 난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늙어간다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어.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내 옆에는 무엇이 있을까? 책일까 나침반일까


내 꿈이라면 말이야. 내가 죽을 때 난 그냥 흔들의자에서 내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펜을 그렇게  마무리를 했으면 해, 하지만 이건 너무 로망이지. 그래서 난 정리했어. 여전히 그 나침반 말이야. 그 나침반을 손에 쥐기로. 도착했다. 펼쳐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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