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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an 27. 2023

나보다 잘 나가는 후배를 만났다.

정확히 언제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후배를 만났다.

번호가 저장이 되어있지 않아서 난 몰랐다. 그러다 저 누구입니다,라고 말하니 아 그렇다. 후배였다.


난 사실 학교에서 발표 킬러였다. 학점을 잘 받으려면 나와 같이 하면 되는데 뭐든 득과 실이 있는 법, 나와 같이 하면 힘들다. 나 같은 경우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모든 페이퍼를 다 작성하고 미리 연습까지 하는 공부벌레형에 연습형이라서 같이 하는 조원들이 힘들다. 익히 들어온 후배들 같은 경우는 갈렸다.

아마 내가 3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날이 작가론 수업이었다.


교수님이 작가론 수업으로 4명을 한 팀으로 주제를 주셨는데 난 막상 팀이 없었다. 그때 후배 한 명이 나와 함께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난 누구지? 했더니 역시 나와 성격이 비슷한 여학생이었다. 처음 밥을 먹으면서 나온 후배의 말에 "선배님, 왜 그렇게 빡빡하게 공부하세요?" 갑자기 나온 물음에 난 당황해서 "내가?" 황당 그 자체에 후배는 큰 눈을 하며 물었다. 난 "그냥 스타일이지" 그리고 이어지는 후배는 "모르시죠, 우리 과에서 점수 나오려면 선배랑 하고 점수 포기하면 뭐..." 난 "그래?" 그렇다.


그렇게 시작된 조 편성은 우리 둘이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우리는 작가 이상을 시작으로 한 학기 세명의 작가를 통해서 풀로 보냈고 그렇게 마지막 졸업식에는 나를 찾아와 꽃다발을 선물로 우리는 헤어졌다. 이후 소식으로는 회사를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끊겼다. 난 그리고 폰 번호를 변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삭제가 되었던 것 같다.


지난주 낯선 번호가 여러 번 울렸다. 또 광고겠지 하고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문자가 왔다. 저 누구입니다 하면서 온 그 글은 후배였다. 이런 난 급히 화장실로 가서 전화를 했더니 후배가 반갑다며 어렵게 알아서 전화를 했다며 밥을 먹자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밥을 먹게 되었다.

알고 보니 후배는 대기업에서 잘 나가는 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멋진 케리우먼이었다.


"오 잘 나가는데?"

후배는 "다 선배님 덕분입니다"

난 "내가 한 게 뭐가 있나"

후배는 "생각 안 나세요? 제가 마지막에 졸업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었을 때 선배님이 자기 소신이라고 하셨잖아요"

난 나도 놀라서 "내가?"

후배는 "네, 영풍문고에서 밥 먹으면서 "

활짝 웃는 후배는 "그래서 자기 소신, 이라는 글자로 전 한 번도 안 갈아타고 지금껏 저 나가라고 두 눈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 보라고 열심히 다니고 있죠"

난 "결혼은?"

후배는"했죠"

난 "그렇구나. 난 아직"

후배는 "들었어요"

너무 놀라서"나 한 번도 안 나갔는데 어떻게 알았어?"

후배는 "그거 알아요, 졸업하고 가장 궁금한 선배 1위가 선배로 뽑힌 거, 그래서 우리가 그랬죠. 찾아보자 뭐 하고 있나. 그런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가까운 친구부터 찾아보니 지금 일하시더라고요. 우리나라 좁잖아요.ㅋㅋㅋ"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 세상 좁다.


그렇게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으면서 난 물었다.

"그래 일은 좋아?"

후배는 "그냥 나름 자부심"

난 "그렇구나"

그리고 후배는 연봉이 올랐다며 엄청 자랑을 했다. 이어진 자랑은 자신의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사랑에 대한 연이은 자랑. 난 사실 관심이 없어서 그런 자랑이 별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일궈 놓은 일들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후배를 보니 좋아 보였다.

수다는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하는 법칙이 있나 보다. 후루룩 수다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올해 연봉 삭감이 되었단다. 한쪽은 올라서 한쪽은 내려서. 참 어디에 춤을 춰야 할지.


나보다 잘 나가는 후배를 보자니 난 여태 뭐 하고 살았나 싶기도 한 게 솔직한 마음이기는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게 아니면 또 아니니까 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는 나는 응원을 해주며 돌아섰기에 지금의 내 자리를 난 차분히 지켜나가리라 맘을 먹고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잠깐 이 라면 부자라면이라고 부르는 라면인데, 순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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