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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Feb 18. 2023

신경림/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되어서.




커피를 내리며 책을 정리하다가 오랜만에 신경림 시인의 책을 읽었다. 최근 불면증과 여러 가지 이력으로 난 6년째 먹고 있는 약을 좀 줄이려고 했으나 결국은 다시 약을 늘여야 한다는 판단을 하신 의사 선생님은 내게 수면 전 책을 금하셨다. 하지만 어쩌면 활자 중독자일지도 모르는 내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노력은 하지만 힘들다. 그래서 간단한 시집을 들어서 요즘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신경림 시인은 내게 고등학교 시절 늘 뜨거운 화두였다. 김춘수 시인과 정반대에서 글을 쓰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국어 교육이 그랬다. 신경림 시인의 문제는 쉬웠고 김춘수 시인의 문제는 어려웠다. 그래서 난 생각을 했다. 시는 어려워야 하는가, 그렇게 고민을 하고 대학을 갔을 때 김춘수 시인은 아포리즘으로 여러 편의 시를 써내리셨고 신경림 시인은 잠시 시를 쓰지 않으셨다. 그리고 난 소설가 박상륭 작가를 읽으면서 문학이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정말 토하다는 동사를 이렇게 쓰는구나를 배웠다.


그리고 아포리즘에 한참 빠져 있을 때 다시 신경림 시인의 책을 읽고서 난 생각했다. 어느 단어 하나 어느 모음 자음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있으랴, 그래서 대척점에 두지 않고 다시 읽어보자고.

그러다 몇 년 전 이 책을 다시 보고서 난 엄청 울었다.


낙타는 동물원에서 봤고 사막은 가 본 적이 없다. 다만 이렇게 인생을 써 내릴 수 있는 시인이라면 이제는 그 경지가 어디까지일까를 감탄하고서 숨이 막혔다. 그리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담담하면서 차근차근 다 할 말을 다 포함하고 있는 이 글들이 내게는 "너도 그리 아등바등하게 살 필요 없어"라는 이 서울살이에 대한 위로 같았다.

난 서울이 사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가방에 꽤 오래도록 이 시집을 들고 다녔고 인문 교양 수업을 들었던 지인분들에게 돌렸다.


나도 이렇게 담담하게 인생을 말하고 싶다. 그러려면 많은 내공이 필요하겠지 한다.

그건 시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겠지, 노력 그 이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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