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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Feb 21. 2023

마음이 힘들면 청소를 한다.

엄마를 이해했다.

난 마음이 힘들면 딱 두 가지를 한다. 하나는 멍을 하고 하나는 청소를 한다. 매우 극단적이다.

멍을 하는 경우는 거실에서 한없이 밖을 보다가 그대로 이불을 돌돌 감고 사람들을 구경한다. 내가 살고 있는 층수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많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난 한없이 여유 있는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난 그렇게 사람멍을 한다. 그러다 보면 눈물이 난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복구하고 집에서 일상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아주 극히 드물다. 두 번째는 매우 자주 하는 나의 루틴이다. 청소다. 


청소는 할 말이 많다. 난 청소 때문에 엄마와 많이 싸웠다. 조금이라도 먼지가 있으면 안 되는 엄마의 성품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 엄마를 이해하지 못해서 싸웠다. 한 번은 내 프린트물이 사라져서 엄마에게 내방 청소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때 엄마는 알았다고 하셨지만 고등학교의 삶이란 어디 그렇게 깨끗하게 살아지겠는가 결국 엄마가 하셨고 없다는 프린트는 책 사이에 끼어져 있었다.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하고 그다음부터는 아무 말 없이 살았다. 


엄마는 청소가 유전이라고 하셨다. 외할머니도 청소를 엄청 하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본 엄마는 극성스러울 정도로 하셨다. 문제는 엄마만 그러면 되는데 아빠도 그러셨다. 그래서 난 사는 게 피곤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난 행운아였다. 


나이가 들고 혼자 자취를 하면서 난 알았다. 절대로 더럽게는 못 산다는 걸 , 밥은 안 먹어도 청소는 해야 사는 사람이라는 걸 이건 내가 몸으로 익혔다는 걸 알았다. 이래서 사람은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난 마음이 힘들면 청소를 한다.

이불 빨래부터 작으면 책장까지 다 뒤집어서 청소를 한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책 정리이다.

없는 형편에 책은 많이 사서 어디 끼어 넣을 곳이 없나 하고 정리하다 보니 난 이제 수납의 달인이 되었다.

공간만 있으면 어디에 집어넣고 안 들어가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하면서 중얼거리면 나이가 든 거라 하는데 그건 모르겠고 책과 공간사이의 틈으로 싸움을 시작하면 대략 5분이 걸리면 이건 정말 혈투이다.

결국 내가 승리를 하면 "그래 이거지" 하면서 여기서 오는 쾌감에 절대적으로 행복하다.


극성스러울 만큼 정리를 다하고 나면 나머지 라스트는 화장실이다. 피날레라고 해두자. 아니 페스티벌이다. 그럼 난 바닥 한 칸 한 칸에 세정제를 뿌리고 칫솔을 이용해서 긁어 내린다. 그럼 빛바랜 색깔들이 흘러나올 때 쾌감을 느끼며 한 칸 한 칸을 씻어 내리며 그동안의 내 무거웠던 마음을 씻어 내린다는 생각으로 청소를 한다.


물론 그간의 근심이나 걱정이 청소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물로 스치면 사라지는 그 불순물 이상의 것들이 주는 묘한 쾌감이라면 엄마도 이 기분으로 청소를 하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다.


늘 빚이 있었고 자식은 키워야 하고 남편의 도시락을 싸며 같은 반찬을 싸기에는 미안하시니 늘 돌려서 반찬을 싸고 싶은 마음에 계란 프라이라도 넣었던 엄마의 고민 그리고 스트레스를 청소를 통해서 버티신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철없는 자식은 그것도 모르고 엄마는 결벽증이라 쏘아붙이며 청소 좀 줄이라고 했으니 엄마에게는 상처로 남았을 그 수많은 말들을 이제는 거두어들이며 죄송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어디 가서 누구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힘든 우리 엄마, 그래서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와서 중화제를 하고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와서 시간 되면 미장원에서 머리를 푸는 엄마의 성격에 다들 입 무겁다고 하는데 그렇게 사셨던 우리 엄마는 결국 청소를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고 가족을 지키셨던 것 같다.


마음이 힘들면 청소를 하는 내게서 엄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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